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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휩쓰는 팝페라의 열풍, 그 원조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 단어 "팝페라(Popera)"는 팝(pop)과 오페라(opera)를 합성한 단어이다. 안드레아 보첼리, 플립파 죠르다노, 사라 브라이트만 등의 스타들이 활동하고 있는 팝페라의 영역은 슈퍼스타(superstar)가 부재(不在)한 클래식 음반시장을 이끌며 인기를 높여가고 있다. 과연 '팝페라'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으며 '팝페라'라는 영역을 개척한 아티스트는 누구일까?
1997년에 워싱턴포스트지가 만들어낸 말이라는 이 '팝페라'라는 용어는 클래시컬 오페라를 팝 스타일로 부르거나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 또는 대중화한 오페라를 가리키는 말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매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음반사의 상업적인 기획과 한번쯤 외도하고픈 아티스트의 호기심이 맞아 떨어져 팝이 클래식처럼,클래식이 팝처럼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여성 보컬에 있어 팝과 오페라의 '크로스오버'를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굳혀 놓은 것은 사라 브라이트만이라는 견해도 있고, 시각 장애인으로 스타가 된 안드레아 보첼리가 이러한 역할의 중심에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이 두 스타는 팝페라 시장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는 거물이기도 하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조수미도 [온리 러브]라는 앨범을 통해 이러한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영역을 개척해낸 아티스트는 한국인이다. 386세대라면 한번쯤은 기억할만한 이름, 바로 "키메라(Kimera)"(사진)이다. 1984년에 그녀의 첫 앨범 [로스트 오페라:The lost opera]의 열풍이 유럽에서 불기 시작하여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을 때 '데일리 익스프레스'지(誌)의 칼럼 중 "'팝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한 한국에서 온 여왕"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파리로 유학하여 에꼴 노르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자비로 출반한 그녀의 음반에서는 오페라 아리아들을 다양한 팝스타일로 편곡하여 그녀를 "팝페라의 여왕"으로 불리게 했던 것이다.
"키메라(Kimera)"라는 이름도 그녀의 이름인 김홍희에서 따온 'Kim'과 '오페라(opera)'를 합성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음악스타일은 비록 시기가 매우 빠르긴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음악시장의 가능성을 미리 예측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키메라의 음반을 국내에서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팝페라의 창시자로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녀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그녀는 첫 앨범 [로스트 오페라:The lost opera]를 크게 히트시킨 이후 [오페라 익스프레스:Opera Express]라는 앨범을 통해 다시 한 번 많은 팬들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스스로 가수로서 활동하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았기에 조용히 가정으로 돌아가, 이러한 열풍은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고 10년이 더 지난 다음에야 '팝페라'라는 장르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가정의 아내로, 어머니로 조용히 살고있는 그녀가 계속해서 활동을 해왔다면 오늘날의 팝페라 시장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사뭇 궁금하다.
출처:뮤즈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