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종 광장에도 이야기거리로 떠오르는 좌파/우파에 관한 내용에 오해를 가지는 분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제 나름대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다만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저는 아나키즘, 히피문화, 노장사상, 사회주의 등에 작은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굳이 하나로 묶어서 정치적으로 보자면 비교적 좌파에 가깝습니다. 또 저는 현실 정치에 대하여 큰 믿음은 없으며, 현재로는 노회찬과 심상정이 자주파와의 갈등으로 민노당을 떠나 만들고 있는 정당인 진보신당에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 주관적 견해를 굳이 숨기지 않고 글을 쓸 것입니다. 따라서 글을 읽으실 분은 이런 측면을 고려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2. 좌익과 좌파라는 단어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좌익/우익은 강렬한 이념적 대립의 뉘앙스를 가집니다. 그에 반해서 좌파/우파는 상대적으로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사용되며 보통 학술적인 글에서는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많은 매체에서는 좌파/우파라는 명칭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좌우의 개념은 봉건제를 타도하기 위한 부르주아 혁명 시절 프랑스의 의석배치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국민회의에서 좌측 의석에는 급진파가 우측 의석에는 왕당파가 착석했던 것이 지금 말하는 좌파/우파의 직접적인 어원입니다. 하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준을 따르더라도, 서구 이외의 다른 지역의 전통에도 좌파와 우파와 같은 비슷한 사상적 차이가 항상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좌파와 우파를 하나의 틀로 구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파는 국가와 민족를 강조하거나,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시장경제를 중시합니다. 반면 좌파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를 초월한 개인의 연대 강조하거나, 경제적 평등을 위한 계획경제를 강조합니다. 이런 이해방식은 대체적으로 현대 서구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입니다. 그리고 우파의 극단적인 모습으로는 보통 나치를 거론하고, 좌파의 극단적인 모습으로는 보통 아나키즘(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특히 트로츠키 방식)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과 미국 소련 등의 간섭을 받았고 좌우의 대립이 파괴적인 이념갈등으로만 치달았던 현대사의 모순 때문에 이런 구분이 제대로 통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라고 분류하는 자주파(민노당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파)의 경우도 사실 좌파라 부르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그들은 민족이란 이름으로 북한의 불합리한 독재체제까지도 감싸기도 합니다. 하나의 조국과 통일을 외치며 부당한 북한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거의 비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종종 종북(從北)주의자들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그리고 이들의 미국에 대한 비판은 동아시아 평화나 강대국 패권주의에서 자주성을 강화한다는 대의를 넘어 자신들의 세를 늘이기 위해 과도하게 감상적으로 나서며 대결구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생경제니, 획일적 문화에 대한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과 같은 문제들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김구의 정치적 지향점과 비슷한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우파라고 일컫는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 역시 사실은 우파라고 보기에 어려운 구석이 많습니다. 이명박의 경우는 앞서 확인한 우파의 두 측면 가운데 비교적 시장경제의 문제에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반면 박근혜와 이회창은 조금 더 보수적인 측면으로 국가권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하는 국가는 다분히 정통 우파에서 말하는 자주적인 국가의 뉘앙스보다 종미(從美)주의적 색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욱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한국정부를 미국의 괴뢰(허수아비)정권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자주파의 시각)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자신들의 사상적 정체를 상징할 때 늘상 '자유 민주주의'라고 문구를 내세웁니다. 물론 그들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라기보다 시장경제의 자유에 가깝고, 민주주의라는 것도 1인 1표의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그들 전통적인 색깔이라할 수 있는.. 심각한 수준의 비리와 경제사범에 대한 최소한의 공정성(미국과 비교해서도)도 만들어갈 의지가 없는 듯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국가나 시장경제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지 않은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때로는 우파라고 비판받고 또 때로는 좌파라고 비판받는 개혁세력이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지금의 통합 민주당이 바로 그들이죠. 이들은 최소한 복지시스템의 구축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좌파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운영 철학의 큰 축이 신자유주의라는 점에서는 시장경제주의 중심의 우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복지제도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소득 불균형과 재산 불균형에 대한 어떤 적극적인 노력도 펼치지 못하고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정치인도 그들의 지지자도 다소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측면이 있는 듯 합니다. 이것은 노무현이 초기에 강력한 개혁을 강조했다가 바로 부시 앞에서 꼬리를 내린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현실의 무서움을 몰랐던 것이고 그것을 알고 난 이후에 과거의 열정을 받쳐줄 탄탄한 정치철학이나 확고한 전략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양극화, 이라크전, FTA, 국가의 체질 개선에 대한 유보 등을 보았을 때는 개혁세력은 우파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시스템클럽의 지만원 박사는 극우파로 불리지만 보통 극우파의 상징격인 히틀러와는 달리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변호하는 듯한 모습과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 행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파가 아니라 안드로메다파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분을 이해해보려고 몇 번 클럽 싸이트에 들러 글을 읽어보았는데.. 글쎄요.. 논리 비약과 자의적인 추측성 글이 난무하고 약간 과대망상적인 견해도 보이더군요. 저의 착각이라면 다행입니다만..
노동자의 힘이라거나 민노당의 아주 소수파를 이루는 해방연대와 같은 정파를 보통 극좌파라고 부릅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들은 극히 획일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다원주의는 팽겨쳐버리고서 자기의 신념을 강압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극우파의 전형이라는 히틀러나 그리고 스탈린, 김일성, 후세인, 박정희(저는 후세인과 정치성향이 같다고 봅니다)를 은근히 닮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들더군요.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글쎄요..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그나마 건전한 우파로 보입니다. 다만 충분히 정치에 대한 제도적 또는 사상적 준비를 갖추고 나오는 것인지, 반노동자적 경영에 대한 의혹의 실체는 어떤지, 과연 작은 변화로 사회의 선진화가 가능할지 등 여러 문제에 의문이 듭니다. 또한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정치를 생각하고 있지 않는지 의문이 듭니다..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칼 포퍼의 정치관이랄 수 있는, 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곁가지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아가자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이 말로 포퍼의 정치관을 지향한다고 한 적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점진적으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래도 김대중보다는 문국현이 낫지 않겠나 싶습니다.
노회찬과 심상정 그리고 다소 억울하게 국회의원에서 짤린(이 문제도 제대로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조승수 등이 모여서 준비하고 있는 정당인 진보 신당이 있습니다. 이 세력에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사람도 있고, 자본주의 안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의미는 폭력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드러운 혁명이죠. 이 부분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포스트 모더니즘, 오스트리아의 합리적 사회주의(폰 노이만 등), 공상적 사회주의 등을 찾아보시면 대강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들 가운데 마르크스를 존경하는 사람은 있더라도, 마르크스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체로 다원주의적인 사회주의를 (약하게나마) 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4. 서로 정치적 이념이 달라 다투다보면 때론 감정적인 말이 오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념, 즉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방법이란 것을 잊지는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념은 현실에 대한 용이한 판단을 위해, 또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재빠른 대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방법이 아니라 목적이 될 때, 우리가 흔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쓰는 그 '이념'의 덫에 갇히게 됩니다. 참지 못해 설령 우발적으로 욕설을 하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하더라도, 직접적으로 테러나 사상적 자유를 짓밟는 식의 공안정치의 제도화는 절대 지양 되어야 겠습니다. 물론 욕설도 없어야겠죠. 하지만 적어도 공적이고 제도적인 선에서라도 그런 부당한 강압행위가 사라져야겠습니다. 어떤 정치적 파벌이라도 자기의 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숨통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허경영 마저도 우리에게 가벼운 웃음을 주었고, 또 우리들 자신도 과대망상에 빠져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했고, 또 우리가 지지하는 정치인 역시 허경영과 같은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닐까 의심할 수 있게 했다면.. 허경영도 존재의 가치는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