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마지막으로 본 이후, 숨 쉰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호흡하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오늘 지하철 정거장에서 그의 뒷모습을 봤다. 정확히 말하면 봤다고, 착각했다.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를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젠 견딜만 한데, 그를 닮은 뒷모습을 보고 '아, 그 사람과 닮았다'라고 언어적 표현이 머릿 속에 떠오르기도 전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눈 앞에 그의 뒷 모습이, 손만 뻗으면 그의 등이, 그의 팔에 닿을 그 곳을 도망치듯 나와 건물 사이 어둠 속에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때만큼 태양이 잔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통계 수업은 2시 정각에 진행되었고 오랜만에 수학 공식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교수가 한 순간 지었던 미소에서 갑자기, 내 온몸에 힘이 빠졌다. '만약 내가 본 것이 정말 그 사람이라면?', '그게 환상이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여긴 그 사람의 학교이면서 나의 학교이기도 하니까. 자연스레 우리가 처음 만난 공간에서 그가 홀로 앉아있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속눈썹 사이에서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번 더 보고 싶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쓸쓸한 풍경이 날 덮쳤다. 봄이 이럴 순 없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옛 연인들의 얘기를 꺼내면서 그들을 모두 사랑했노라고 하는 그의 이야기가 십분 공감하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가 이제까지 했던 사랑 방식과 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난 한 사람을 잊기 위해 1년을 혼자 있어야 했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잊기 위해 6개월을 혼자 있어야 했다. 어떤 사람을 잊어가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존재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홀로 있는 것이 나의 사랑 방식이다. 그렇다고 그의 방식이 이기적이라든가, 틀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사랑이란 순전히 나의 것이지, 어쩔 때는 대상이란 매개체 역할로 끝나기 때문이다. 실현의 궁극적 대상이 아니라.
오늘 자정, 오로지 그에 대한 마음만을 담기 위해 채워갔던 노트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줄을 쓰면서 내가 깊은 한숨을 쉬었는지는 모르겠다. 깊은 피로감에 쌓인 것만 분명했다. 이걸 다 채우면 정말 '우리'의 끈이 다하는 것 같아, 일주일 넘게 미뤄뒀던 것을 이제야 완성했다. 다음날 일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건지(말하자면,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는 것을 거부), 눈이 건조해서 그런지는 구별이 가지 않는다. 다만 놀라운 건 이젠 눈을 뜨자마자 그를 자동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다가, 거울 속 내가 한 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일주일 전과 다른 나를 보면서 '당신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어볼 뻔했다.(MMPI2 검사 질문 항목중에 <최근 종종 이상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습니까?>에 대한 질문이 뭘 뜻하고 있는지 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정말 거울을 보면서 진지하게 누구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정신분열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안부 문자를 보낼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애써 참아냈다. 그리고 오전을 이리저리 시간에 휘둘리면서 보내다가 오후에 학교 지하철에서 그를 본 것이다.
수업 시간이 촉박해서 언덕을 빠르게 올라갔지만, 비단 수업 시간때문만은 아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의 정당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가슴을 다독이며 걷는 날 보며 지나가는 어떤 사람들은 왜 저토록 힘들게 이 언덕을 넘으려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리 지바고는 라라의 뒷모습을 쫓다가 심장이 멈춰버렸다는 걸 알까? (실제로 라라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라라를 닮은 여자의 뒷모습이었는지도.)
어제 한 친구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나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앞에 있는 이 친구와 키스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친구는 분명 꽤 '잘생긴' 남자였다.) 그리고 정작 그의 앞에선 단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서는. 내 살아있는 감각기관이 온통 '그'(여기선 존재론적 가치로서의 '그')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대화가 튄다'고 표현했지만, 그러기 전에 내 눈을 한번만 들여봤으면, 내 눈 속에서 스스로 불이 되어 타고 있는 작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사랑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 이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병적인 이 감정을 규정하면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랑 노래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