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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밤의 까페 테라스>

백정원 |2008.03.17 22:25
조회 171 |추천 0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At Night, The Arles, 1888

 

 

 1888년 말. 고갱이 빈센트를 방문할 시기 즈음하여 그의 눈길을 끈 소재는 '밤'이였다. 당시의 그는, 주위의 모든 사물을 선명한 색을 이용한 극명한 대조로 표현하는데 주력했는데, 그런 빈센트의 관점에선 밤이 낮보다 더 풍부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까만 밤하늘에 노란 점 몇개의 별을 그려넣는 밤하늘이 아닌, 더 풍부한 색감을 지니고 있는 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밤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밤의 테라스>와 <별이 빛나는 밤>이다.

 

특히나 <밤의 테라스>는 이런 그의 생각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거라 여겨진다. 황금빛의 가스등으로 환히 밝혀진 까페와 그에 맞서듯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주위의 청보라빛의 공간은 강렬한 보색의 관계다. 그는 누이동생 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자신의 이런 의도를 설명한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자연의 풍부하고도 위대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야 말로 화가의 의무라는 것이 내 신념이다.

                                                                          ....(중략)

나는 점점 추하고 늙고 병들고 가난해 질 수록 더욱더 밝고 잘 정돈되고 광채나는 색을 창출하여 대항하련다. 보석 세공하는 사람도 늙고 추해진 후에야  보석을 잘 배열하는 방법을 알게 되지. 그림에 색깔을 잘 배열해서 생동감을 이끌어 내고, 색채의 대조를 통해 각자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일은 마치 보석을 잘 배열하는 일이나 옷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아.

                                                                             ...(중략)" 

 

                                                                                                           「'반고흐,사랑과 광기의 나날' 중」

 

 

 

 

 빈센트는 이같은 것을 얻기위해 일본 그림을 감상할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일본과 그들의 예술은, 극단적인 선명함과 생동감 그리고 단순미를 보여주는, 빈센트의 이상향 같은 존재였던듯 싶다. 실은 금전전 부족으로 인해 일본 대신하여 '아를'이란 프로방스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다. 그는 프랑스의 시골마을인 이곳을 일본의 작은 마을과도 비슷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아를'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감동을 느끼며 이에서 멀어지지 않기위해 바로 그곳에 '예술가들의 마을'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른다. 그 첫 시작으로 고갱을 자신이 있는 아를로 초청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고갱과의 두 달의 동거 후, 빈센트는 극한 정신착란으로 자살이란 결과로 생을 끝낸다. 허나, 일설에선 그의 자살이 고갱과의 헤어짐에서 오는 상실감이 아닌, 아를에의 유입 초, 이 시기에 이미 그의 정신이 이상과민성으로 기울어져가서 갔기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상태를 그대로 작품에 표현해내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전자가 됐건 후자가 됐건, 어찌되었든 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했던 이런 혼란스런 시각이 당대 최고의 작품들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였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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