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스의 망상
김도훈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저명한 과학자의 근거 없는 비판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신문의 책 소개란이었다. 「만들어진 신」이라니! 책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더구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종교를 증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학자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책에 응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사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논리적이지도 않고 엄밀하지 않았다. 감정적인 책이었다. 과연 도킨스의 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기독교나 종교에 대해서는 편견적이고 단견적이며 주류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늘어놓는 것을 보고 허무했다. 출판사의 부탁만 아니었으면 중도에서 그만두었으리라. 선동적이고 충동적인 글이 아니라 엄밀하고도 학문적인 비판이었다면 한 수 배울 자세도 가지고 있었는데….
도킨스는 기독교나 종교를 비판하면서 심층 연구보다는 표피적인 오류에 집중하고 있다. 각주나 찾아보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최근의 유명한 종교연구가나 신학자는 커녕 변변한 신학자의 이름 하나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13세기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을 비판하면서도 엄밀한 연구에 대한 반영이 없다. 도킨스보다 더 철저하게, 엄밀하게 비판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상사를 조금만 곁눈질 해보라. 무신론에 대한 사상적 응답, 신학과 과학의 대화, 심지어 진화론적 신학에 대한 책들이 근래 들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 모든 학문적 논쟁과 토론의 결과는 전혀 참고하지 않은 채 기독교나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한참 철지난 무신론자의 글을 인용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학문적 성실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다. 창조론을 철저히 믿으면서 과학에는 문외한인 필자가 책 한 두 권을 읽고 진화론을 마치 미신처럼 묘사한다면 그것이 정당하겠는가? 도킨스의 능력이나 열정으로 보아 최근의 연구들을 찾아 보지 않았을 리 없을 텐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책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거나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도킨스는 종교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종교 없는 세상은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하는 무신론적 혹은 무종교적 행복 전도사이다. 그런데 종교 비판은 단순히 종교 비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 비판이기도 하다. 특히 서구에서는 그렇다. 필자가 생각건대 유럽에서는 종교(기독교)가 곧 문화이다. 아랍권에서도 문화와 정치와 사회와 종교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비판하는 것, 즉 종교의 몇 가지 오류를 끄집어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종교 현상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자는 아주 단순한 현상을 가지고 아주 단순한 결론을 끄집어 낼 뿐이다.
편견에서 비롯된 냉소
도킨스는 자신의 이론과 맞지 않는 이론이나 학자들에게 그는 냉소를 퍼붓는다. 특히 신을 인정하거나 종교를 인정하는 듯 하면 냉소적인 비유와 수사가 냉정하고도 엄밀한 학문적 평가를 앞서버린다. 저자는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인 굴드 밑에서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했던 젊은이가 수많은 고민과 번뇌 끝에 진화론을 포기하고 신앙을 선택한 결단을 “자신의 경력과 인생의 행복에 스스로 피해를 자초한 것으로” 본다. 그 젊은이가 “과학과 증거와 이성을 자신의 모든 꿈과 함께 내던져 버린” 근본주의자가 된 것은 “정신에 대한 고문인 종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묘사한다. 결국 이 내용을 서술한 페이지는 감정적인 조롱조의 언사로 마감된다.
“하버드대학교 출신의 지질학자가 그렇게 당했다면, 재능이 덜하고 대항력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생각해보라. 근본주의 종교는 수많은 순진하고 선량하고 열의가 있는 젊은이들의 과학 교육을 망치려고 필사적이다.”
미국이 아닌 히틀러 치하의 독재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을 서술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한 인간의 결단을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는가. 짧은 지면에 이런 사소한 것들을 언급하는 것은 한 젊은이의 결단을 옹호하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다. 도킨스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끝 모를 적대감과 증오, 편견이 이 책을 쓰는데 얼마나 많이 영향을 주었는지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도킨스에 대한 비판들
이 책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정치적이며 수사적이다. 저자에게 종교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질 정도이다. 저자는 자신이 그렇게 몸서리치면서 비판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의 태도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과학적 “교조주의자”이며 “과학적 근본주의자”라는 것이 필자가 그에 대해 느낀 것이다. 인용 부호를 붙인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필자와 동일하게 평가하는 글을 여럿 발견했기 때문이다. 맥그라스 부부는 과학과 신학에 두루 혜안을 겸비한 기독교 신학자인데(맥그라스는 옥스퍼드에서 화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분자생물학을 연구했으며, 그의 책의 공저자이기도 한 부인 역시 옥스퍼드에서 실험심리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임상신경심리학을 연구했다) 도킨스의 책을 비판하는 책 제목을 「도킨스의 망상?」이라고 지었다. 그는 도킨스의 사상을 무신론적 근본주의로 규명한다. 도킨스의 글에 대한 맥그라스의 소회를 한 번 보자.
“도킨스는 그저 교묘하게 지옥 불의 형벌을 설교하는 것과 같은 무신론의 지옥불 설교를 행하고 있다. 사려 깊고 증거에 근거한 사고 대신 터보가 장착된 수사학을 사용하며, 사실들에 대해 대단히 선택적인 조작을 사용하고 있다. 놀랍게도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는 과학적인 분석이 거의 없다. 이상한 일이다. 많은 사이비 과학적 사색만 들어 있다. 그의 사색은 문화적 종교 비판과 연계되며 대부분 낡은 무신론 저작물로부터 빌려온 것들이다. 도킨스는 신을 미워하는 자기의 떼거리들에게 설교한다. 그들은 도킨스가 쏟아내는 수사적인 폭발을 맛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들은 손을 높이 들고 그를 찬양한다. 생물학적 진화가 종교와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멘! … 진짜 과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부합니다! 할렐루야!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정신병적인 아동학대자입니다! 아멘!”
이 책에 나타난 도킨스와 도킨스에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무리의 편집적인 행동을 맥그라스는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필자의 소회도 마찬가지다. “도킨스에게 종교는 투우장의 황소를 화나게 하는 붉은 천과 같다” 그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수사학, 비유, 냉소, 빈정거림 등은 논리적 오류로 가득할 뿐 아니라 저자의 주장의 고루함, 약점, 반복 등을 감추기 위한 수단들인 경우가 많다.
도킨스에게 실망하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비단 맥그라스 뿐만이 아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자와 평론가들이 비판 대열에 함께 서있다. 엔드류 브라운은 거시적으로는 도킨스의 논지에 동의하지만, 무신론자는 무신론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논지에 대해서는 스탈린을 덜어 비판한다. 비단 스탈린뿐이겠는가? 설마 종교만 없다면 9.11도, 전쟁도, 인종 차별도, 이 모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적집 언급은 없지만, 저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너무 낙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로버드 페이프 역시 종교적 열정이 자살폭탄테러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님을 언급하면서 이 책을 독단적 불신에서 나온 논증으로 가득 찬 책으로 규정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릴린 로빈슨은 도킨스의 논리를 뼈아프게 지적한다. 그녀는 도킨스가 과학사를 기억하지 못함을 통탄한다. 도킨스는 성경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을 뿐, 종교의 가장 나쁜 면과 과학의 가장 좋은 면을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묻는 진지한 질문, 즉 “종교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면 과학은 안 그런가?”라는 질문에 도킨스가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저자는 여전히 종교는 나쁘다고 답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 필자는 저자를 과학적 망상가나 과학적 교조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평론가 테리 이글턴은 도킨스가 종교적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글턴의 말을 빌려보자.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겨우 영국조류도감의 수준인 사람이 생물학에 대해 논하고 있다고 상생해보라. 도킨스의 신학에 대한 지식은 마치 이와 같다. … 그의 책은 진지한 철학 서적과는 거리가 멀다. 도킨스가 손쉬운 표적이라고 여기는 어떤 원수에 대한 공격이 매 페이지 마다 풍자적으로 등장하고 있은 것을 볼 때, 악으로 편집되고 장황하게 긴 풍자문장에는 그 작가의 정신을 관통하고 있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이외에도 기독교 신학자나 철학자들, 그리고 창조론자들의 비판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의 비판은 종교적, 창조 과학적 전제를 가진 비판이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도킨스의 논리적 오류들
이미 위에서 도킨스의 방법론적·논리적인 오류들을 일부 지적했지만 논리적인 오류를 중심으로 몇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사소한 것이지만 「만들어진 신」에는 ‘그럴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예상한다’, ‘추정한다’, ‘아마도’ 와 같은 추측성 언어가 많이 등장한다.
종교적 개념이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개념 또한 잘못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신을 자기 마음대로 힘을 행사하는 폭군처럼 그리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전능 개념이 아니다. 전능의 개념에 집중해 신의 속성에는 마치 전능만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도킨스가 생각하는 신이지 기독교의 신은 아니다. 저자의 비판은 다른 과녁이나 상상의 과녁을 맞히고 나서 의기양양해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비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당신이 말하는 신은 기독교의 신이 아니야, 수염이 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가은 신은 기독교의 신이 아닌데, 그런 신을 비판해놓고 기독교의 신을 비판했다고 우기지 마.”
그래서 그는 모든 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어디선가 날조되었거나 언젠가 날조될 초자연적인 모든 것, 모든 신들을 공격한다”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모순이다. 그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의 행복을 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잘못된 답을 유도하는 잘못된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들을 논증하고 있다. 그는 어느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의 중요한 학가들은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 한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지적해 보자. 우선 1,074명중 응답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77%에 이른다. 답변한 23%만 가지고 중요한 학자들이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고 판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론이다. 게다가 그 설문조사는 인격신의 개념을 잘못 설정했다. 설문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인격신 즉, 개인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자의 말을 듣고 응답하고 죄와 악행에 관심을 보이고 판결(심판)을 내리는 신을 믿는다.”이는 대단히 위험한 설문이다. 설문 내용이 “나는 인격신 즉, 개인에게 관심을 각고 기도를 들으시며, 죄와 악행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며 용서하시는 신을 믿는다” 이었다면 답변이 어땠을까? 이런 통계를 인용하는 것은 이 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이다.
또 다른 오류는 증거를 선별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법학자인 윌신이 진화론자들의 오류라고 열거한 것 중의 하나다. ‘진화는 사실이며 화석이 이를 증명한다. 몇 개의 예만 들어 보자. 시조새는 … 말의 진화과정을 보면 …“과 같은 서술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이런 예를 도킨스의 저작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더 많은 반대 증거는 애써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는 몇 가지 실험 결과를 예로 들어 기도의 효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자신의 이론을 입증할 수 있는 예만 가져온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모든 종교는 잘못된 것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 두 가지 예가 모든 종교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아니다.
저자는 권위에 호소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이나 제대로 교육을 받은 자들은 종교나 신을 믿지 않는다’ 라는 논리이다. 도킨스는 신을 믿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창조론자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무신론적인 전문가가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많다고 어느 한 주장이 옳은 것이 되거나, 권위자가 적다고 그런 것은 아니다.
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종교나 종교의 주장을 아주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고 나쁜 점들만 열거함으로써 마치 모든 종교가, 모든 종교행위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자신의 것은 좋은 점만 열거하는 논쟁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미 위에서 이런 식의 도킨스의 편견에 대한 로빈슨의 지적을 인용한 바 있다. 이것은 논쟁에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도킨스의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논리적 모순은 종교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저자는 진화심리학 연구에 기대어 종교를 진화의 부산물로 여긴다. 미국 빙햄턴대학의 생물학 및 인류학 교수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종교를 진화의 부산물로 여긴다. 미국 빙햄턴대학의 생물학 및 인류학 교수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종교를 진화의 관점에서 풀어낸 바 있다. 이는 종교는 유기체적 적응 현상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이면서 문화적인 진화의 산물임을 말하고자 한 것으로, 종교를 진화의 과정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도킨스는 다르다. 그는 철저한 진화론자이다. 진화론자가 진화의 부산물인 종교를 철저히 부정하며 증오한다. 왜 그렇게 부정하려 하는가. 그것은 자기모순 아니다. 자기 말대로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전략으로서 나타난 것이 종교라면 왜 그토록 그는 종교를 증오하고 저주를 퍼붓는단 말이가? 설사 그것이 종교의 잘못된 현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과학실증주의의 사로잡혀 있다. 저자의 믿음에 의하면 과학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며 과학적 증거가 없는 것은 미신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질문, 신의 질문까지도 진화론으로 혹은 자연선택으로 답변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의 신은 착가이거나 망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것을 전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신을 부정하고 유물론적 · 자연주의적 전제를 신봉한다면, 그리고 그 관점으로 학문을 한다면 언제나 진화론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화론은 지금까지 엄청나게 수정됐고 오류로 판정되기도 했으며, 지금도 많은 진화론의 형태들이 서로 논쟁하고 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하면서도 진화론에 매여 있는 것은 결국 신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앙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굴드의 말처럼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론도 나름의 신앙이다. 도킨스의 책은 진화론이라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는 책으로 보면 될 것이다.
종교인의 태도로 말하는 무신론적 과학자
이 글은 「만들어진 신」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과 논리적인 오류를 중심으로 지적했다. 지면 관계상 도킨스의 주장 중 중요한 부분을 다르지 못하고 남겨놓을 수밖에 없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언급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란 신 존재 증명, 종교에 대한 생각, 진화론이 정말로 과학적인가하는 문제, 과학과 이성, 과학과 신앙, 성서해석의 문제, 교육의 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전체적으로 자연선택, 진화라는 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메시아는 다윈이요, 그는 다윈의 복음을 전하는 진화론 전도사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진화론이라는 복음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무찔러야 할 사탄과도 같다. 그는 오늘도 이 책에서 종교라는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각성하라고 촉구한다. 이 책의 표지에 상징적으로 표현된 「만들어진 신」은 도킨스가 만든 신과 묘하게 겹쳐지는 뉘앙스를 준다. 필자가 느끼기에 도킨스는 저자 자신이 비판하는 종교근본주의자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믿는다. 단지 대상만 다른 뿐이다. 도킨스가 기존의 종교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의 종교인들은 자신이 종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도킨스는 자신을 과학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