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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이와나미 소송 판결

조수미 |2008.03.29 17:06
조회 43 |추천 0


 

 


 

2년을 넘게 끌어온 오에/이와나미 소송 판결이

오늘 아침(28일)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오에란 노벨상 수상자 출신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

 이와나미는 일본의 유명한 출판사.)

 

언젠가 "세상은 가지가지"라는 시의 댓글에 소개했듯이

오키나와는 소수민족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

온갖 억울한 사건들을 (일부는 현재진행형인) 겪었는데,

 

2차대전 당시

일본 본토의 피해를 줄이고 연합군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고

오키나와에 연합군을 상륙시켜 인구1/4을 희생시킨 오키나와전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도 첨예한 것이 일본군에 의한 학살과 집단강제사 문제.

패색이 가까와 오자 궁지에 몰린 일본군들이

전투의 방해가 되고 식량을 낭비한다는 이유 등으로

주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죽어라" 자결을 강요한 것.

황민화교육으로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적"의 잔인함을 세뇌받은

주민들이 겁에 질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군이 직접 명령을 내리거나 수류탄을 나누어주는 등

직접 관여한 것이 증언이나 연구등을 통해 밝혀져 있다.

확인된 것만 10군데의 섬에서 대략 1000명정도가 이렇게 죽었는데,

무기가 없었던 곳에서는 농기구나 식칼 등으로

가족이 서로 죽이고 자살을 하는 등의 끔찍한 양상이었다.

 

문제는, (뭐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전후 군이 자신들의 개입을 부정하고 나선 것.

그래도 워낙 생존자들의 증언이나 증거가 압도적이니까

(그 말 많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

집단자결과 "군 개입"에 대한 기술이 달랑 한줄 정도는 들어있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이나 진보적인 사람들은

좀더 정황을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집단자결"조차도

"집단강제사"라는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쪽이지만)

 

문제는,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분위기에서

이 기술조차 없애기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는데,

 

위의 이란 것은

위의 집단강제사 피해지역 중에서도 가장 피해자가 많은 쪽인

자마미섬(234명), 도카시키섬(329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오에 겐자부로가 군의 명령에 의한 집단자결을 다룬

라는 픽션을 이와나미 출판에서 냈는데,

당시 주둔군 대장들이 (한명은 본인, 한명은 죽은 형 대신에 동생)

자신들이 명령을 내린 증거가 없다며

으로 저자와 출판사를 고소한 것이다.

 

이쪽은 생존자들의 증언이나 자료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

오에는 그 자료를 인용해가며 썼는데도  

우익들이 며

당사자들을 부추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재판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이 재판의 결과가 군개입의 여부를 증명하지 않는데도

(집단자결은 다른 곳에서도 수도 없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작년에 이 재판이 진행중인 것을 빌미로 문부성에서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삭제하도록 권고한 것.

(일본 교과서에서 왜곡된 것은 식민지사만은 아니다...  아니,

오키나와사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지배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일본의 '자국사'에 포함되어버린 식민지사라 보는 것이 정확할지도,

견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군(나아가서 일본국가)의 오명을 감추는 것도 있지만,

주민들의 죽음을 강제가 아닌 자발로 포장함으로써

맹목적인 민족주의, 애국심을 찬양하고 고양하는 것,

따라서 일본과

다시금 국민을 만드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당사자들인 오키나와인들과 전쟁에 비판적인 일본인들의 견해이다.

 

한국의 사건으로 비유하자면,  

광주민중항쟁에서 특정 계엄군 장교가 특정 시간, 장소에서 

자신이 발포명령을 내렸다는 증거가 없다고,

혹은 제주도 4/3 항쟁 중에 특정 장교가

자신이 주둔한 마을에서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없다는 증거도 없는데)

 

광주와 4/3을 기술한 저자와 출판사를 소송에 걸고,

그걸 빌미로 보수우익들이

광주와 제주도에서는 고 우기고,

그 재판을 빌미로 교육부에서

교과서의 광주항쟁과 4/3 항쟁 전체를

으로 바꾸거나 기술 자체를 삭제하도록 한다...

에 해당할 만한 사건이다.

 

(우울하게도 뭔가 굉장히 익숙한 시나리오 아닌가... )  

 

작년에 문부성에서 교과서 검정 발표가 나자

오키나와에서는 철회를 요구하는 현민대회에 11만 5000명이 모였고

젊은 우익들 사이에선 그 숫자가 날조라는 취지의 동영상을

유투브에 돌리고... 등등 온갖 난리가 났었다.

(난리가 났었지만 이런 일들은 거개가 그렇듯

 몇몇 신문을 제외하고는 보도가 거의 되지 않는다.)

 

재판의 분위기도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라서,

지금까지 재판이 열릴때마다 방청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오에/이와나미 지지자와 일본군출신/유족회/젊은 우익으로 나뉘어

우익들이 선전차를 동원하고, 일장기를 휘두르며 뛰어다니고

피고측(오에, 이와나미) 지지자들에게

"매국노!!" "비국민!!"등과 온갖 무시무시한 협박과 저주를 퍼붓고

뭐 그런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나의 일본인, 오키나와인 친구들과도 얘기하지만,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저 "매국노","애국심"이란 말을 들을때마다 궁금해진다...

 자신의 국가와 역사의 오점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아름답게 찬양하고 미화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인가...)

 

 

그래서 어제 오키나와인 운동가들의 연락을 받고

오늘 아침 오사카 지법으로 갈 때도 실은 약간 긴장했었다.

워낙 일본 우익들이 쌀벌하지 않은가...

설마 논문 원고마감을 앞두고 싸움에 휘말려 두들겨맞거나

"닭장차"(일본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를 타는 건 아니겠지...

간다는 소리를 듣고 서방님도 몇번이고 그러고,

 

(*참고로 글쓴 저는 여러해동안 일본의 민족적 소수자를 연구하고,

 현재는 오사카에서 오키나와 출신 이민자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최종 판결이라 그랬는지, 사람들은 조용했고,

긴장한 분위기 속에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놀랐던 것은 정말 다양하면서도 평범해보였던 방청객의 면면,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부터 7-80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누가 원고쪽 지지자이고 누가 피고쪽 지지자인지,

누가 일본은 절대선이며 태평양전쟁은 성전이었다고 믿는 이이며

누가 그 프로파간다의 이면을 파헤치려는 이들인지,

겉으로만 봐서는 전혀 짐작조차도 할 수 없는,

동네에서 만난다면 웃으며 인사를 건넬 듯한 평범한 얼굴들.

그 사이를 갈라놓는 심연과도 같은 기억의 차이.

 

7-800명이 모인 가운데 방청석에 들어갈 수 있는 건 90명,

같이 간 일행들(다들 오키나와 출신)은 모두 추첨에서 떨어지고

아는 기자를 통해 한 장 입수한 방청권을

오키나와의 소설가인 메도루마 슌씨에게 건네주고

밖에서 기다렸는데,

 

재판이 시작되고 약 15분도 걸리지 않아 판결은 나왔다.

방청석에 들어갔던 지지자 두세명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와

미리 만들어둔 듯한 플래카드를 펼쳐보인 것.

 

사방에서 플래쉬와 박수소리가 터지고,

울먹이는 소리로 란 말이 오고가고,

원고(주둔군 대장)쪽 지지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얌전히 돌아가고

(음 이겼으면 어땠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피고(오에 이와나미) 지지자들은 법정 뒤에서

변호사측의 간단한 보고를 들었다.

 

재판소의 경비원들은, 원래 아무한테나 그런건지,

아니면 내심 우익에 가까운 사람들인지

법정에서 집회를 하면 안 된다는 둥 카메라나 녹음은 안 된다는둥

하고 있지도 않은 일에 야쿠자 발성으로 시비를 걸고,

언짢아서 반발을 하는 이들한테 노골적으로 불쾌한 말을 퍼붓고,

(대들면 그 핑계로 끌어내려고 도발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와중에 변호사들은 판결의 요지를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하며 소리를 치거나 박수를 치거나,

그렇게 약 1시간도 되지 않아 상황 종료.

우리 패거리(?)들은 재판소 지하의 찻집에서

아침을 먹는 둥 수다를 떠는 둥 잠시 앉아있다가 헤어졌다.

 

판결의 요지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결인데,

아니, 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황당한 일인데

나의 인포먼트들이 이라고 부르는

그 황당한 재판에서 이기려고 2년 7개월이나 시간이 걸리고 

사람들이 사방 팔방으로 뛰어야 했던 것이  

우습다기에는 서글픈 현실.

 

최근에 뉴라이트에서 썼다는 교과서 얘길 들어보면

딱의 남의 나라 일이라고 할 수도 없어 더 씁쓸하고,

 

그나마 이 판결이 일본사회가 완전히 맛이 가진 않았다는

다행한 증거라고 봐야겠지...

 

오키나와전 당시에 주민들에게 자결명령을 내리고

그 직후에 자신은 미군에게 투항을 했다는,

이번 재판의 원고였던 우메사와는 항소를 한다고 한다...

 

어째 저럴 수 있을까...

당시 자마미에서 자신의 명령으로 죽은 사람은 234명.

아직 그 시절의 수많은 생존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그날을 증언하고 있는데,

(지난 가을 오키나와의 현민대회때 각지에서

 7,80이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위의 도움을 받으며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대회장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90이 넘은 노인.

남들이 뭐라고 믿고 떠들건 자신은 알고 있을 텐데,

그 오랜 세월동안 그 사건은, 자신의 명령은 자기에게 뭐였을까...

 

그저 불가해할 뿐.

 

 

 

世はさまざま(세상은 가지가지)

 

              山之口 貘(야마노구치 바쿠)*

 

 

人は米を食っている

僕の名と同じ名の

貘といふ獣は

夢を食ふという

羊は紙を食い

南京虫は血を吸ひにくる

人にはまた

人を食ひに来る人や人を食ひに出掛ける人もある

さうかとおもふと琉球には

うむまあ木といふ木がある

木として器量はよくないが詩人みたいな木なんだ

いつも墓場に立っていて

そこに来ては泣きくづれる

かなしい声や涙で育つといふ

うむまあ木といふ風変りな木もある

 

사람은 쌀은 먹는다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의

바쿠(貘,맥)란 짐승은

꿈을 먹는다 한다

빈대는 피를 빨러 온다

사람 중에는 또

사람을 먹으러 오거나 사람을 먹으러 나서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생각하면 류큐에는

우무마아라는 나무가 있다

나무로서 생김새는 보잘것 없으나 시인과 같은 나무

언제나 무덤가에 서서

거기에 와서는 엎디어 우는

슬픈 목소리나 눈물로 자란다 하는

우무마아라는 별난 나무도 있다

 

*야마노구치 바쿠(1903-1963): 오키나와 출신의 시인

 (번역: 조수미)

 

 

 

관련기사 : 첨부된 파일 혹은

http://www.okinawatimes.co.jp/day/200803291300_01.html

(일본어이므로 번역기 등을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 Iwanami hanketsu 1 AS.m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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