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3월, yes24를 유랑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이 책.
인간의 삶이 자연과 동화되어 그려낸 이 작가의 사진과 글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과 사람들을 시처럼 담아낸 세계적인 야생사진 작가. 열 아홉, 사진으로 시작한 그의 젊음에서부터 사진으로 마감한 그의 아름답고 광활한 바람 같은 이야기.
그 시절에 읽었던 순간순간의 감동들이, 1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로 전율이 되어 찾아온다.
이러한 명작, 정말 놓칠 수 없는 값지고 귀중한 선물이다.
기업PR광고를 너무나 좋아하는 내게 있어, 그 광고 이미지들과 BGM들은 내가 살아가는 날들의 여백을 채워준다.
지금 매체에 나오는 [대한항공 - 알래스카 편] 광고 BGM으로 사용되고 있는 flight Song를 처음 듣는 순간 내 귀가 그 영상과 소리에 멈춰버렸었다. 하여, 이 광고가 나오는 15초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곤한다. 이 광고 이전에 또 다른 [알래스카 편]이 있었는데, 그 광고 컨셉이 호시노 미치오의 생애를 그리고 있었다. 2006년에 제작된 광고이니, 이 책이 출간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작된 듯 싶다.
"열 아홉 첫 눈에 반하고 스물 여섯, 알래스카와 하나가 되어 평생을 바람이 되었다"는 광고 카피가 그의 생애를 말해준다.
나는 혼자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 광고를 보고 또 보았더랬다. 하여,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
#. 어떤 생명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도 카리부도, 별 조차도 무궁한 저쪽으로 시시각각 여행을 한다. [프롤로그]
#. 어느 날 툰드라 저쪽에서 나타나 툰드라 너머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카리부. 그 발굽소리는 알래스카 들판이 품은 생명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드는 소리와도 같다. p.51,54
#. 인간의 삶이 그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 p.67
#. 장대한 알래스카의 자연은 결국 인간도 언젠가는 그 질서 속으로 돌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해준다. 슬픔을 지워주지는 않지만, 그 사실을 알게 함으로써 어떤 힘을 선사해준다. p.124
#. 바로 저기 숲이 있다. 저 숲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강은 또 어떤가. 우리가 무스를 찾아서 여행하던 강물은 지금도 어둠 속을 흐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 점차 흥분의 도가니로 화하는 윤무를 지켜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품고 있는 들판이라는 세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p.166-167
#. 한겨울 알래스카 하이웨이에서 겪은 사건. 차를 몰고 달리다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 무스를 피하려고 깊은 눈 속으로 자동차를 처박은 적이 있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진 밤이었다. 하늘에는 엷은 오로라가 춤추고 있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트럭을 세우고 나를 도와주었다. 눈범벅이 되어 작업을 하면서 그 사람은 가끔 "아기가 태어난다네." 하고 몇 번을 중얼거렸다. 부인이 입원한 페어뱅크스 병원의 전화를 받고 밤중에 하이웨이를 달려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겨우 차를 끌어올려 놓고 나와 악수를 나눈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페어뱅크스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의 핏줄이 태어나려고 하는 그날밤, 그 사내는 오로라 빛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사람은 늘 무의식적으로 자기 마음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들려주는 무언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 풍경에 벌써부터 있었던 것이리라. p.224-225
#.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시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마저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름답고 잔혹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서 큰 상처를 받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강하고 연약하다.
사람들은 왜 자연으로 눈길을 돌리는 걸까. 알래스카 들판을 걷는 그리즐리 한 마리에서,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지저귀는 박새에서 우리는 왜 눈길을 떼지 못할까. 아마도 우리는 그 곰이나 작은 새의 생명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의 생명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다다르게 되는 종착점은 자기 생명, 살아 있다는 것의 신비일 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이리가 어슬렁거리는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의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상상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요를 가져다주고,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계속 가르쳐줄 것이다. p.246-247 [에필로그]
- 글.사진 호시노 미치오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청어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