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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절 가난한 이민이야기..

김종선 |2008.04.09 14:09
조회 113 |추천 0

199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이민길에 올랐다.

친구들은 도피성 유학..이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 내성적을 아는 친구의 수근거림....^^; )

실은.. 이전부터 계획된 아버지의 취업이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AH다리?가 딱 맞아

떨어진거였다.. 아마도 1999년도에 IMF 때문에 이민길에 오르신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IMF 이전에 모회사의 이사를 역임하션던 아버지의 첫 미국 직장은.. 흔히 닭공장이라 불리우는

식품가공업체였다. 그리고 그때 같이 오신 주위 분들 또한.. 아버지 보다 적지 않은 위치에 계시던 분들이였다.. 소히 말하는 화이트 컬러...가.. 미국에서는 블루 컬러가 된 것이다.. ㅜㅜ

 

우리가족의 가난한 미국생활은.. 먼저 다른 주로 이민오신 친지가 선물해주신 1988년 일제자동차로 한대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발이라 불리는 자동차는 일을 다니시는 아버지가 주로 이용하셨고...  당시 학교가 개강하지 않아 집에만 있던 나는...

56k모뎀으로 인터넷을 연결해 가며 당시 약 300MB 가량으로 기억되는 리니지를... 약 5일에 걸쳐.. 다운 받았던게 기억난다..,, 그리고.. 아마도 약 이틀의 무료게임을 즐기면서 굉장히 기뻐했었다.. 그만큼 첫 이민 생활은 나에게 무료했다.. 그당시에도.. www.bada.us 같은.. 한국 TV보는 사이트가 있었더라면... 나의 이민 생활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당시 이런 나의 최고 기쁨은 동네 월마트에 가는 것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에서 너무 멀기에 아버지가 퇴근하시기를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어머니랑 함께 간 월마트에는.. 당시 20살 나이에 어울리지 않지만... 신기한 장난감이 가득했다..ㅋ 

 

우리가족이 이민온 미국 델라웨어주는 미국 사람들도 위치를 모를만큼 작고... 한인도 없는 그런 곳이였다. 그당시 월마트를 방문했을땐... 거의 모든 미국인이 우리가족을 일제히 쳐다 봤었을 정도로 동양인이 별루 없었기 때문에.. 먼저 말을 걸어주던 친절한 시골 미국사람도 많았다.. ㅎ

 

2부로..계속? 하지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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