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진용
- 출생, 그리고 방황, 불안한 미래
엄격한 군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 어릴 때부터 영특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왔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의 기대에 실망감을 안겨드리는 길을 가고만 있었다.
기억의 저편에는 어릴 적부터 함께 생활했던 미군들과의 추억, 무서운 스승님 하에 무술을 배웠던 추억, 죽마고우 기정이와 “우리 마고 꼭 가자”라고 다짐한 그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흥분과 기뻐하던 부모님 얼굴 등...
한 장면 한 장면씩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곤 한다.
뜬 구름 잡듯 막연한 꿈을 안은 채 그리운 마고 교정을 떠나온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학업에 충실하지 못하여 어느하나 내세울 것 없던 나는 분수에 맞게 대구카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생물학과의 과대표로서 즐거운 캠퍼스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와 그 어떤 능력이 없기에 미래에 대한 생각 역시 먹물처럼 그저 까맣게 가려져 있었다. 오로지 즐거움은 노래하는 것과 축제 공연과 각종 대회출전을 위한 춤연습이었다.
이런 날라리 같은 놈... 김진용.
- 칼잡이 백정, 그리고 보디가드...
1998년 여름, 나의 첫 사회생활인 진해의 한 도살장에서 가축을 잡는 일을 하던 중 군대에 대한 고민 등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퇴근 후 농협 앞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중 2명의 소매치기를 격투 끝에 제압하여 경찰서로 연행시키느라 정신없을 때 찰나에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강렬한 인상의 사나이가 굳은 얼굴속에서 미소를 띄며 명함을 건네는 것이었다. 절제되고 차분하면서도 포스가 느껴지는 목소리, 절도있는 걸음걸이, 모든 것이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비수처럼 날카롭고 빛이났다. 경호협회 지부장. 나를 차에 태운 뒤 차한잔 하고 가라며 마산의 사무실까지 데려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믿을 만한 인재가 없다는 말이었다. ‘왜 이사람이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할까’ ‘나에게 원하는게 뭘까’ 등 머릿속은 신기함과 의심으로 가득차려 하던 순간, 실전대련 및 테스트를 권하는 것이다.
여하튼, 얼떨결에 끌려가듯이 경호요원이 되었고 이것이 나의 인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경호원 특수훈련, 해병시절 등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1999년 8월 18일.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멸망을 예언한 날이다..
차라리 멸망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했다...
내발로 갔지만 너무나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훈련과정... 사람을
전투기계로만 만드는 해병대 훈련단 입소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기들.. 얼마나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싸웠던지. 젊은 혈기에. ..
하지만 함께 겪는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공유하기에
860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전우애가 생긴다..
연평해전이 있었던 무렵이라, 백령도 연평도 쪽으로 가게된다면
죽으러가는 줄 알았다...
"김진용! 백령도." 그때의 절망감.. 휴~ ^^;;
놀려대던 동기들이 줄줄이 백령도로 끌려가게 생겼다.
위로휴가의 즐거움도 잠시. 마산역에서 출발할 때 우리 3명을
배웅할 때 마산역은 통곡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엄마의 그 뜨거운눈물은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기차에서 우리도 울었다.
근데.. 백령도의 그 많은 부대중에... 뭐? 63대대? 헉...
나 정말 재수는 더럽게 없나보다. ㅎㅎ
인간도살장 63기습특공... 나를 포함해 11명이 끌려간다..
끌려가는 다찌 차안에서 풀이 죽은 채 우리는 중얼거린다.
우는놈도 있었다.
"우리 이제 진짜 좆됐다. ㅠㅠ"
(군시절 생략)
- 폭풍우, 생명의 탄생,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
군 제대 후 나의 직업은 세 개가 되었다. 학비마련 등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경호원, 백정, 그리고 속칭 ‘노가다’보조 잠시.
하지만 나는 생물학 교수가 되는것이 목표였지만, 인생은 럭비공과 같았다... 입대 전의 일은 단순히 내가 돈을 벌기위함이었지. 평생 나의 전부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해병전우회 중앙회에서 정보를 본 얼굴모르는 선배해병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고 진주로 달려간다. 얼떨결이다. 정말 모든것이... 생각할 틈도 없다.
H건설업체 경호사업부의 직원으로 입사하여 팀장 등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본래의 업무와는 성질이 다른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권분쟁, 노조현장, 철거 등... 회의감이 너무 많이 들었다. 깡패놈들이 하는 일을
합법적인 회사의 탈을 쓰고 그대로 하니 말이다. 이런 저질스러운...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
K경호업체의 지사장을 맡으면서 부족함 투성이인 나에게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모질고
고된 현실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경영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온갖 시련은 나를 배려해주지 않았다. 나 혼자라면 무엇이 무서우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학교? 졸업? 그게 뭔데??? ' 이제 나는 모른다'
'내가 뛰어든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겠다.. 꼭"
하지만 못난 나를 만나 아이를 가져 객지에서 몸 고생 마음 고생하던 지금의 아내. 그리고 축복받지 못한 채 태어난 ,
내 딸 주향이. (지금 벌써 다섯 살이다. 딸의 애교에 마음이 너무 평화로워지곤 한다.)
아직도 너무 미안하다.
주향이가 나오기전까지는 집도절도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미혼모시설에 가있을께. 꼭 데리러 와줘"... 한없이 울었다... 정말 죽고싶었다. 그런짓까지는 못하겠다. 그냥 나 따라와.
그앞에서 날을 꼬박샜다... 그냥 돌아갔다. 정처없이.
(중간생략.. 내딸 주향이 세상에 나옴^^)
해병 선배인 본부장의 형님들이 계시는 경남 산청으로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가 래프팅가이드, 교관생활과 진주에서 한국영상예술원 전속경호실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공부를하면서 자연속에서 내자신을 단련하기로 . 사냥개들을 데리고 멧돼지사냥.. 밤낚시. 회파티.. 등.. 평온하고 재미있는 나날이었다. 물과함께.
나는 물만 있으면 정말 좋다.. 전생에 물개아니면 플랑크톤인가보다..^^
그러던 어느날, 부하직원의 이간질로 한순간에 모두 쫓겨나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가 큰 규모의 신설 쇼핑센터의 모든 보안, 인력파견을 계약할 기회가 있었다. 엄청난 재기 기회였다. 한국영상기획사의 실장이 합류하여 지금의 충혼 이라는 브랜드를 설립하여 계약까지 체결하였지만, 분쟁상황을 해결해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유치권자들과 건달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점유 중 건달세력이 들이닥쳤다. 유혈사태가 터지고 인명피해도 생기면서 그때부터 약 8개월간 경찰조사, 벌금형, 어렵게 세운 법인이 시작과 동시에 폐쇄되는 차마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처지가 되었고. 각자 흩어져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2004년 10월분 까지.)
이런 것들이 허송세월이라고 생각하지않는다...
이렇게 끄적거리면서 또 많은 반성을 한다. 잊지말자.
감추고싶고 부끄럽기 짝이없는 지난날을 .. 까발리자.
나보다 더 힘들고 벼랑끝까지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를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들을 하는데
읽어보아라... 상상해보아라.
나란 사람? 좆도아니야. . .
나는 너무 감사한다. 그리고 나에게 크나큰 힘이 되는 나의 실패.
아직도 까마득히 멀었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해준 밑거름이다.
잘 살자. 즐겁게 . 자유롭게..
그리고 베풀며 살자..
오늘도 가슴으로 기도하며 ...
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