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일꾼 (행 11:19-26)
남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인지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 뜻대로 일하는 일꾼 (19-21절)
(1) 유대인에게만 전도 (19절)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세계 선교를 명령하셨습니다.
마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막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넘어서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교회에는 큰 환란과 핍박의 바람이 불어왔고, 스데반이 순교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사도들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행 8:1).
본문에 보면, 베니게(지금의 레바논), 구브로(터키 남쪽, 지중해 동쪽 끝의 섬. 지금의 키프로스 섬), 그리고 안디옥(터키 최남단, 시리아 국경 지역, 이스라엘에서 약 480km)에까지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땅 끝에 와 있으면서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2) 그 중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 전도 (20절)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러나 그 중 구브로와 구레네(북아프리카 리비아) 몇 사람이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그들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성도들도 아닙니다. 지중해의 섬과 아프리카에서 온 이방인 성도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온 성도들은 멀리 안디옥에까지 와서도 유대인에게만 전도함으로, 주님을 뜻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3)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부흥 성장 (21절)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일하는 일꾼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꾼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표준새번역에는 “주께서 돌보신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주의 뜻을 따라 순종, 충성함으로 주께서 돌보아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바나바와 같은 일꾼 (22-26절 상)
(1) 은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 (23절 상)
안디옥 교회에 와서 바나바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교인의 숫자, 교인들의 경제적, 지적 수준, 교인들이 유대인들인가? 이방인들인가? 예배당이 큰가? 작은가? 이런 것들은 보지도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서, 혹 교회를 선택하게 되거나 사람을 사귀게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사귈 때도 은혜 있는 사람과 사귀면 자신도 은혜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 없는 사람과 사귀다보면 자신의 믿음도 떨어집니다.
음식도 언제나 맛있게 먹는 사람과 함께 먹으면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음식점에 가서 공연히 트집 잡고 깐깐하게 종업원과 시비나 하는 사람과 함께 먹으면 입맛이 싹 사라집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은혜가 충만한 사람, “아멘, 아멘” 잘하는 사람 옆에 앉아 예배드리면 나도 은혜가 충만해 지는데, “아멘”하면 힐끗힐끗 쳐다보기나 하고, 꾸벅꾸벅 졸기나 하고, 애꿎은 주보에 낙서나 하는 사람 옆에 앉게 되면 나까지 그렇게 됩니다.
은혜 있는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어떻게 은혜 있는 사람과 사귈 수가 있습니까?
은혜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바나바는 은혜를 보았습니다.
은혜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기뻐하십니다.
(2)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24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쓰시는 일꾼이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조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 보려고 하는 것은 “착함”입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것은 물론이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착하다”는 것은 지도자로써 별로 인정받을만한 자격이 되지 못합니다. 착하다는 말을 사람들은 어리석음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순진하기 때문에 늘 이용당하고 사기당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사업을 잘 합니까? 적당하게 수완을 잘 부리는 사람이 사업을 성공합니까? 착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직장에서 승진을 잘 하여 고위직에 오릅니까? 계략도 펼 줄 알고 거짓말도 적당히 둘러댈 줄 아는 사람이 출세를 합니까?
왠지 우리의 생각에는 착한 사람은 지도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성경은 무엇을 가리켜 착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착하다는 것은 순수함을 뜻합니다. 착하다는 것은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정직한 인격을 소유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착한 사람을 요구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누구와 함께 일을 할꼬?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예화 ***
IMF 위기 때,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1980년 이후 생긴 수십 개 그룹 가운데 두 개의 회사만 살아남았었습니다. 당시 ‘이랜드’는 외국인들이 투자를 해주어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회사는 모두 헐값이어서 매우 좋은 기회일 텐데 왜 사지 않느냐?” 그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좋아 보이는 수십 개 회사를 방문해 투자를 하려고 했소. 그러나 조사 결과 모두 장부가 두 개라서 투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랜드는 장부가 1 였기 때문에 그들이 투자했던 것입니다.
정직하면 때로는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정직이 옳은 것인 줄 알면서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그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 결과 작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는 정직해야 삽니다. 보통 때는 장부가 두 개이면 더 유리하겠지만 결정적일 때에는 장부가 하나여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쓰임 받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꾼,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수한 사람, 정직한 사람, 일관성 있는 사람,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행 4:37절에 보면, 바나바는 은혜 받고 나서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 발 앞에 놓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왜? 구제하라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은혜 받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 같지 않은데 자기 소유를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은혜를 마음에 간직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삶 속에서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원문에 가깝게 다시 풀어 설명하면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가 됩니다. 사람이 좋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내 주위에 사람이 몰려듭니까? 아니면 나를 피해서 멀리 도망갑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사람됨, 믿음, 은혜가 넘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3)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동역할 줄 아는 사람 (25-26절 상)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옵니다. 안디옥은 이방지역의 대도시로서, 바나바는 자기보다 안디옥 선교에 더 적임자라고 생각한 사울을 앞장세우기 시작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합심하여 안디옥 교회는 세계선교의 중심지로 자라게 했습니다.
행 9장에 바울의 극적인 회심에 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던 사람이 4, 5일 후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사울이 다메섹에 가서 전도하니 아무도 믿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패였던 자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도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이처럼 당시 사울은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사울의 변화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호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바나바가 사울을 알아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변호해 주고 추천까지 해주었습니다.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바나바가 나서서 중재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소에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안디옥교회에서 사역을 한 것입니다.
바나바는 남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볼 줄 아는 덕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잠재력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일꾼이엇습니다.
단점보다 장점을 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두 장점, 단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덕 있는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의 모든 과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화된 사울만 보고 지나간 허물을 다 용서했습니다.
바나바의 추천이 없었다면 사울이 쉽게 지도자로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볼 줄 알고, 숨은 능력을 볼 줄 알아서 사울을 앞세운 바나바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일꾼을 쓰시기 원하십니다.
3. ‘그리스도인’으로서 일꾼 (26절 하)
① 주님 뜻대로 일하는 일꾼, ② 바나바와 같이 은혜를 보는 일꾼, 착한 일꾼, 남을 배려하고 인정하고 세워주는 일꾼이 있는 안디옥 교회는 역사적인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안디옥에서부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②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애쓰는 사람)
③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 헌신, 봉사하는 사람)
④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 (예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거는 사람)
주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인”을 일꾼으로 찾고 계십니다. 단순한 기독교인(종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 헌신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과 인생을 거는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십니다. 그 “그리스도인”을 일꾼으로 쓰시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