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효자마을에..
청개구리란 별명은가진.. 녀석과 그의 엄마가 살았어요.
이녀석이 말은 잘안들어도..
아빠없이도 언제나..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면 행복했어요.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자면..훗!
자식키우는 부모아님 모를꺼에요.
음식을 먹으려 간을보라하면.. 내가 볼땐.. 싱거운데..
녀석은 맨날 짜다며 투덜대니.. 자동으로 식성이 바뀌게 되었어요.
자식이기는 부모 어디있겠어요.
불횩이 6살이 되던해를.. 맞이하여.. 또 대동여지도를 그렸어요.
그래서.. 소금받아오라고.. 쫓아내면..
인기좋은 우리 청개구리 불횩은 설탕한바가지를.. 순식간에.. 퍼가지고 오는것이였어요.
그래서 이녀석때문에.. 우리집은 소금은 적은데 설탕은 더이상 놀자리가없을만큼
많았어요.
또 간만에 생선을 튀기면..
자식놈 살점하나라도 더맥일라고.. 머리와 꼬리만 야금야금먹으면..
불횩도 머리와 꼬리만 먹는거엿어요.
신기해서.. 왜 살을 안발라 먹냐고 하면..
엄만 왜안먹냐고.. 대뜸 뭍고는..
어두어미라하여.. 생선은 머리와 꼬리가 맛난서 먹으니 살점 먹으라고하면..
그좋은걸 엄마에게 넘길수 없다며.. 머리와 꼬리만 발라먹고 살점은..
거들떠도 안봤어요.
그래서.. 엄마가장난친거고.. 살점이 맛잇는거라 해도..
자기는 속을수 없다며.. 끝까지.. 살점은 입에 대지도 않아서..
버릴수도 없고.. 제가 다먹게되었어요.
불횩이녀석이 언젠가 한 일주일을 가출한다고 쪽찌만 남기고..
나의 비상금까지 훔쳐나가고선..
정말 딱 일주일만에.. 웃으며 나타나는데.. 울수도없고..
담부터 속섞이지말라고.. 막때리고.. 다그쳐도.. 웃기만하는
울아들 불횩을 보면.. 정말.. 때론 바보스럽기도 합니다.
전 청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불횩임니다.
아빠없이 엄마밑에서만 자라는난 타고난 불효자라 사람들은 말함니다.
사람들이 아빠없이 자란애라 좀 모지라다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어도..
뒤에 엄마가 있어서.. 울지도 못하고 저도 좋다고 배시시 웃고있슴니다.
그리고 집에들어와선.. 혼자 영어단어를 외워봄니다.
nim* jodd* sifa* 등등 한차례 영어를 외우면 속이 약간이나마 후련함니다.
어느날인가 짜게 먹으면 몸에 안좋다는.. 동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었슴니다.
우리집은 언제나 짜게 먹는데.. 그소리를 들은전 엄청난 충격이였슴니다.
그래서.. 엄마가 간을 보라치면.. 싱거워도 짜다며.. 징징대고.. 안먹고 그래서..
저의집은 소금을 거의 안씀니다. 나도 맛나게 먹고싶지만.. 참고 또참슴니다.
어쩌다 한번씩 우리집은 생선반찬이 나옴니다.
부잣집 친구네 집에서.. 몇번 먹어본 생선반찬의 맛은 정말 깍두기의 맛의 배이상이였슴니다.
하지만 우리집은 사정이 좋지 않아.. 생선반찬이 자주 나오지 않슴니다.
그런 생선의 머리와 꼬리만 먹는 엄마를 보자면 눈물이 핑돕니다.
그래서..전 먹고싶은거 꾹참고.. 머리와 꼬리만 야금야금 먹슴니다.
그러케 살점을 안먹으면 결국 버릴수없는.. 엄마가.. 드시게 되어있거든요.
전 너무 약은거 같아요. 심리를 잘 파악하죠 어린나이에 넘 영악해요.
어느날인가.. 길을가는데.. 뒷골목의 황태자라 불리는.. 제또래에
효돌이가 아이들과 히히덕 대는걸 봤어요.
무슨얘긴가 들어봤더니..
우리엄마가 창녀니 머니.. 옆집개랑 하는것도 봤따고.. 마막 웃고 그러는거였어요.
전 엄마땜에 언제나 웃고다녔지만.. 도무지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어요.
제가 힘으로 당해낼수없는걸 알면서도.. 돌팍을 하나 주어 주먹꽉쥐고..
그래도 뛰어가.. 녀석의 골을 내리 쳤어여..
뒷골목의 황태자라 불리는 만큼 순발력과 힘은 대단했어요.
돌을 살찍 비키어 피하더니.. 얘들과 함께..저를 막밟았어요..
얼굴이 피떡되도록 맞은난.. 그래도 끝까지.. 눕지 않고 잃어 났어요.
효돌이란놈은 질렸는지. .헉헉 대면서 바라 보기만하였고..
나머지얘들은.. 귀신이라도 본듯 도망갔어요.
효돌이는 저에게 침을 한번 뱉고는 다음부턴 까불지 말라며 뒤를 돌았어요.
전 온힘을 짜내어.. 아직까지도 쥐고 있는 돌맹이든 주먹을 내던저 골을깟어요
하지만 힘이 제대로 쥐어지지 않아..그저 조그만 상처밖에 내지 못했어요.
이대로 들어가면.. 엄마가 걱정할껀 뻔하고.. 결국.. 전 편지하나딸랑 남기고..
죄송하지만 소량의 엄마 비상금을 털어 집을나와.. 아랫동네 까지 걸어가
약바르고 낳기까지 기다렸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몸이 거뜬해지자..
엄마가 보고싶은맘에 한걸음에 달려가.. 해맑게 웃어보았지만..
역시 맞을수밖에 없었어요.
내맘도 몰라주는 엄마가..
그래도 난 너무 좋았어요.
아빠가 못해준 행복 제가 커서 아빠몫의 100배도 넘개 해줄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