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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장미의 나날들

이동욱 |2008.05.03 17:39
조회 106 |추천 0

와인과 장미의 나날들(Days of Wine and Roses)](1962)는 아주 오래 전에 TV에서 본 흑백영화의 제목이다. 잭 레몬과 리 레믹이 나왔던 우울한 멜로영화였는데, 알콜중독자들의 내면과 외향에 대한 섬세한 디테일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이후 다른 뜻으로 전이되어 사용된다. 제목 속의 와인은 술의 총칭이고 장미는 물론 여자를 뜻한다. 덕분에 ‘와인과 장미의 나날들’이란 ‘취생몽사’ 혹은 ‘방탕한 삶’에 대한 우회적 레토릭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내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술과 여자에 빠져 제멋대로 살아버린 나날들. 그렇게 ‘막 살아버린’ 날들의 심리상태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될대로 되라는 식의, 무책임한, 위험한, 뼛속 깊이 비관적인, 그러나 겉으로는 한없이 가벼운, 방탕하기 그지없는. 영어에는 이에 해당하는 멋진 표현이 있다. “Days of Being Wild.” 이는 곧 [아비정전](1991)의 영어판 제목이기도 하다. 내 삶에서 ‘와인과 장미의 나날들’이 시작된 것은 우연히도 [아비정전]이 개봉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비(장국영)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덕분에 [아비정전]은 한 동안 ‘내 인생의 영화’로 첫손가락에 꼽혔었다.


서른살 즈음이었다. 십대 때는 나도 서른살이 되기 전에 죽어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십대 중반을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서른살’이란 너무도 낯설고 먼 것이어서 내가 서른살이 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 누구나 갑자기 서른살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른살이 되어버리면 너무도 끔찍할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현상들이 벌어진 것이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는 서른살이 되던 날 아침, 갑자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 낯선 평화는 일종의 해방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듣기 좋게 표현해보자. 나는 서른살이 되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이십대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무슨 혁명가쯤으로 여겼다. 역사는 진보하거나 진보해야만 된다고 믿었고, 나 자신이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데 기꺼이 헌신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세상에는 의미 혹은 진리 같은 것이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을 찾아내고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른살이 되던 날 아침,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러한 인생관 혹은 세계관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나는 그러한 삶의 방식과는 너무도 걸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고통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이다.

 

위악적으로 표현해볼 수도 있다. 서른살 이전의 나는 사랑의 운명적이고 필연적이며 영속적인 ‘일대일 대응’을 믿었다. 덕분에 나의 이십대 시절이란 만나는 여자마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달라고 조르다가, 결국에는 버림 받고 술을 퍼마시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서른살을 통과할 즈음 그러한 믿음이 소멸되어 버렸다. 그것이 반복되는 실연의 결과였는지 세계관 자체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어찌되었건 나는 이제 사랑의 운명이니 필연이니 영원이니 하는 따위의 로맨틱한 레토릭들을 ‘일종의 농담’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표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위선적으로 표현했다 해서 본질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위악적으로 표현했다 해서 그것이 추악해지는 것도 아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 이제 와 돌이켜 보건대, 당시 서른살을 통과할 즈음의 나는 어떤 믿음의 총체를 잃어버린 것 같다. 그 믿음을 신념(faith)이라 표현해도 좋고 충성심(loyalty)이라 표현해도 좋다. 역사와 정의에 대한 믿음이건 사랑의 일대일 대응에 대한 믿음이건 마찬가지다. 크게 보아 한 통속인 것들로서, 믿음의 총체를 구성하고 있는 일개 요소들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시절을 지탱해온 믿음의 상실은 곧바로 불행한 삶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뜻에서 그것은 일종의 해방이기도 하다. 더 불행한지 행복한지는 측량할 방법이 없으나 어찌되었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른바 ‘작가’가 된 것이다.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 대신 재미를 좇는 사람(fun-seeker)이 되었다. 청년시절 내내 애써 외면했던 암벽등반을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어떤 이는 1990년대 초반이 바로 구소련제국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시작된 시기라는 점을 들어서 이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설명해내기도 한다. 그들의 설명이 제법 그럴 듯한지의 여부에 대하여 나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다. 이미 그들과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버린 까닭이다.


내 삶에서 ‘와인과 장미의 나날들’이 시작된 것은 이 즈음이다. 삼십대 초반의 몇 년 동안 나는 더 할 수 없이 방탕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어쩌면 그리도 가볍고 뻔뻔스러웠으며 무책임할 수 있었는지 나 스스로 고개가 저어질 지경이다. 이 나날들을 함께 했던 숱한 여인들과 와인들에 대해서는 천천히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오늘은 그들 중 서른살의 내게 처음으로 와인을 가르쳤던,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에는 실패(!)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맛뵈기로 조금만 들려주기로 한다. 그녀의 이름을 오브리옹(Haut-Brion)이라고 해두자.

 

이십대 시절의 나는 집착과 질투의 화신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시간에는 도대체 무얼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지 못하면 제 성질에 겨워 입에 거품을 무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른살을 넘어서면서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집착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각개인의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자유의지에 맡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기브 앤 테이크가 있다. 내가 집착하지 않는 대신 나도 그녀들에게 요구했다. 내게 집착하지 마. 내가 너 말고 누굴 만나든, 누구와 함께 사랑을 나누든, 네가 알 바 아니잖아. 미리 말해두지만 너 말고도 만나는 여자들 많아.

 

실제로 나는 당시에 대여섯 명의 여자들을 동시에 만났다. 그들 모두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는 뜻이 아니다. 간혹 이따금씩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여자들을 만나면 더블데이트 같은 것을 즐기기도 했지만 대개는 내 나름대로의 순번을 정해놓고 번갈아 가면서 만났다. 이를테면 월요일 밤에는 페트뤼스(Petrus)를 만나 소주를 마시고 함께 뻗어서 잤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그녀가 준 용돈으로 혼자 영화를 본 다음 앙겔뤼스(Angelus)에게 전화를 걸어 화요일 밤의 데이트를 즐기는 식이다. 어떤 때에는 일주일 내내 그런 식으로 일곱 명의 여자들을 만난 적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에게 어제 만난 여자와 내일 만날 여자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잔인하되 치명적인 룰이었다.

 

오브리옹은 당시에 만났던 여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나보다 대여섯살 위였으니 삼십대 중반의 농염한 나이였다. 그녀는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장편소설이며 소설집 따위를 여러 권 출간한 적이 있는 소설가였고, 재계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고 있는 아버지를 둔 덕에 경제적으로 매우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의 내가 가장 자주 드나든 곳이 바로 이 오브리옹의 집이다. 그녀를 남달리 좋아하거나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던 그녀의 아담하고 어여쁜 단독주택에는 근사한 마루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유리로 된 천정 너머로 하늘이 올려다 보였다. 나는 그 마루를 ‘하늘마루’라고 불렀다

 

오브리옹을 처음 만난 곳은 인사동의 한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당시의 나는 김시인이니 이화백이니 박작가니 하는 따위의 이른바 인사동식 예술가들에게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중이어서 술만 마셨다하면 위악적인 독설을 내뱉곤 했다. 그날도 무슨 말도 안되는 논쟁 끝에 저 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데, 술자리를 함께 했던 초면의 그녀가 나를 배웅해주려 따라나왔던 모양이다. 집이 어디에요? 이렇게 취해서 혼자 택시 타고 갈 수 있겠어요? 나는 길바닥에 쓰러지지 않으려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횡설수설 떠들어댔던 것 같다. 집? 나 그런 거 없어. 나랑 한잔 더 하든가, 아니면 나 좀 재워줘, 당신 집에서.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곳에 누워 있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장소였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처음 만난 여자의 집에서 술냄새를 푹푹 풍기며 불현듯 깨어나곤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린지 오랜 나날들이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벗어던진 속옷이며 헝클어진 침대 따위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어젯밤에 그녀와 사랑을 나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루에는 정갈한 식탁이 차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짤막한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대학 강의 때문에 먼저 나가요. 식사하고 가세요. 하지만 나는 그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루에 유럽풍의 아주 근사한 양주진열장이 있었는데,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위스키며 브랜디 따위가 내 발목을 틀어쥐었던 것이다.


나는 밥상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 위스키부터 한 병 땄다. 냉장고를 뒤져 얼음을 찾아낸 다음 위스키 온 더 락을 만들어 짤랑거리며 천천히 오브리옹의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직 소설가답게 서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의 컬렉션이 제법 훌륭했다. 어느 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석양의 붉은 빛이 그 집의 벽면에 고즈넉한 아지랑이를 제멋대로 그려 넣고 있을 즈음, 나는 저 홀로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고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밤이 되어 돌아온 오브리옹은 그때까지 나가기는 커녕 여전히 팬티 차림으로 온 집안을 어질러 놓은 채 코를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너무도 어이없어 했다. 나는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혀가 꼬인채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어젯밤에 사랑했었어? 오브리옹은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내게 되물었다. 사랑? 혹시 섹스를 말하는 거야? 나는 킬킬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그거지 뭐, 메이킹 러브.


나는 그 집에서 내리 사흘 동안 술을 마셨다. 위스키 대 여섯 병을 비워내는 동안 몇 번의 사랑을 나눴던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시는 동안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졌다. 너 그렇게 술 마시다 죽어. 오브리옹이 자못 걱정되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렸다. 나는 잔뜩 허장성세를 부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이게 어디에 나오는 대사인지 알아? 아주 어렸을 때 신성일 나오는 어떤 영화에서 나온 대사야. 아마도 이만희 감독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나. 오브리옹은 그 와중에도 내게 무언가를 먹이려 죽도 끓여주고 전골도 만들어줬다. 나는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고는 다시 새로운 위스키의 병뚜껑을 돌렸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행복과 슬픔이 서로를 구분해낼 수 없을 만큼 마블링처럼 뒤섞인 풍경들이다.

 

오브리옹과의 관계는 거의 일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오브리옹과 나는 서로를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이 메이킹 러브의 한글식 표현이라면 물론 그랬다. 하지만 사랑이 그 이상의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면 답변은 쉽지 않다. 당시의 나는 형이상학 자체를 부인하거나 경멸했었으니까. 나는 오브리옹의 모든 위스키를 마시고, 그녀에게서 용돈을 타 썼으며, 다른 여자들과의 숱한 밤들을 그녀에게 이야기해줬다. 오브리옹은 나와의 나날들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을까. 알 수 없다. 한 번은 그녀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살면 마음이 편해? 나는 별 걸 다 묻는다는 식으로 킬킬대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난 마음이 없어, 하트리스(Heartless).


오브리옹과의 마지막 밤은 또렷이 기억난다. 유리로 된 천장을 통하여 밤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오브리옹집의 하늘마루에서였다. 태풍이 휩쓸고 간 직후인지라 밤하늘이 너무도 맑아 별이 몇 개 떠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저 홀로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천장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자 오브리옹이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넌 나보다도 이 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뻔뻔스러운 나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응, 사실 그래. 오브리옹은 자신이 마시던 와인잔에 코를 들이박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와인의 향기를 들이마시더니 눈을 내리깐 채 이렇게 말했다. 그냥 이 집에서 살면 안 돼?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말고. 이 집을 아예 네 명의로 해줄게, 나와 결혼해준다면 말이야.


갑자기 가슴이 묵지근해졌다. 그녀는 지금 진심으로 내게 청혼하고 있는 중이다. 가타부타에 대한 판단에 앞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나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 살아가고 있는 녀석에게 진심 어린 청혼이라니!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끝에 기껏 내보인 리액션이라는 것이 참으로 뜬금없었다. 그건 어떤 술이야? 오브리옹은 자신의 와인잔을 내게 내밀었다. 그 잔에 담겨 있던 술이 바로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이었다. 현재의 나였다면 일단 그 명성 앞에 무릎부터 꿇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당시의 내 혀는 위스키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었고, 다른 존재형태의 술이 가능하리라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브리옹을 한 잔 맛보고는 민망하게 피식 웃으며 잔을 되돌려줬다. 이건 너무 밍밍하네, 내 과(科)가 아닌 거 같애.

 

그리고 우리는 그날 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남은 위스키를 다 마셨고, 그녀 역시 천천히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브리옹을 다 마셨다. 별빛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칠흑 같은 밤이 찾아왔다. 오브리옹이 자신의 서랍을 뒤져서 작은 양초를 하나 내왔다. 그녀는 더 이상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자신의 와인잔에 든 오브리옹을 기울여 양초의 불빛에 비춰보면서 조용히 그 술을 음미했을 뿐이다. 그녀는 그날 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마음 따위는 갖고 싶지도 않았던 내가 그녀의 속마음을 넘겨짚어 볼 자격은 없다. 다만 그날 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이 하늘마루에 앉아서 위스키를 마실 수는 없겠군. 나는 고개를 숙인채 오브리옹을 음미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건네다 보았다. 팔을 뻗으면 바투 닿을만한 거리였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을만큼 아마득한 거리가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오브리옹을 만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내게 전화 한 통 걸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이따금 그녀는 장편소설이며 소설집 따위를 발표했는데 나는 그 작품들 속에서 내가 변형된 캐릭터들을 찾아내고는 가슴 시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와인에 빠지게 되었고, 이제는 오브리옹이 얼마나 위대한 와인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세월을 되돌려 다시금 그녀의 와인을 맛보고 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면 무어라 말할 것인가? 어리석은 가정이다. 한번 지나간 것은 영원히 지나간 것이다. 누구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그 세월이 남긴 마음의 무늬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수 있을 뿐이다.

 

오브리옹은 내 마음에 그렇게 남았다. 그것은 세속의 갖은 평가와 번잡한 스캔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절대고독의 와인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하여 오브리옹의 코르크를 따던 날, 내 눈 앞에는 내가 보냈던 와인과 장미의 나날들이 그야말로 뒤죽박죽의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파노라마 앞에서는 문득 할 말을 잊는다. 방탕과 회한, 허무와 반항, 도취와 위악의 세월 저 너머에서 자신만의 향기를 오롯이 지키며 저 홀로 익어가던 위대한 와인. 내게 있어 오브리옹은 지상에서 천상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뚫어놓은 하늘마루의 유리천장과도 같은 와인이다.

 

                                                             심산의 와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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