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노무현 탄핵 반대 시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의 시위 문화가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현실은 우울하고 암담하지만 참가자들은 모두가 가장 유쾌한 방법으로 시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위.. 어쩌면 모순 되어 보이지만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고위관료들보다 어른스러웠습니다.
마치 테러라도 난 양 국세를 낭비하며 버티고 서 있는 전투경찰들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해 보이더군요.
그러나 그들도 경찰복을 벗고 몽둥이와 방패를 내려놓으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이 땅의 국민일 테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평화적으로 촛불을 밝히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의사를 표할 권리가 있으므로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 외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던 자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저질스러운 협상을 벌이고 있으니 주인으로서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요.
일각에서 학생들의 시위 참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반일투쟁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온 세력은 학생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이 정부가 멋대로 휘두르는 칼부림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 큰 피해가 예상되는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학생들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갈 사람들은 타성에 젖은 기성세대들이 아니라 이제 막 피어나는 학생들이니까요. 이 땅은 무지몽매한 대통령의 땅이 아니라 그들의 땅이니까요.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한창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꿈을 키워야 할 학생들이 가방을 던져놓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요?
어린 학생들이 보기에도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정상적이지 않은데, 정작 어른들은 나랏님 눈치 보기에 급급합니다. 소유격이 빠진 경제 발전(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인지 재벌들의 경제 발전인지 이 씨 정부와 보수세력의 경제 발전인지)의 환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당장 하루를 살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너무 바빠 나라 돌아가는 형편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나마도 인터넷을 하지 못하는 부모님께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일부 언론이 정치적으로 제단하고 재구성한 것들이지요. 그나마 규제가 덜한 인터넷을 통해 아직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 학생들이 어른들보다 한 발 먼저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유언비어나 조작된 정보들에 혹하기 쉬울 지도 모릅니다. 어른들 말씀대로 아직 자제력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라 얼떨결에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울지도 모르고요. 반대를 위한 반대, 시위를 위한 시위가 될까 우려스러운 것도 일견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학생들에게 기준이 되어주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훌륭한' 어른이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바른 정보인지, 감정을 자제한 이성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줄 어른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너희들이 뭘 안다고 나서냐고 핀잔을 주기만 하지요.
좋은 어른의 부재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해가는 학생들이 아예 귀 막고 입 닫고 눈 감고 물살에 휩쓸려가는 어른들보다는 희망적이지 않을까요? 장마가 오면 강은 흙탕물로 변합니다. 싯누런 강물에는 도저히 아무 생명도 살 수 없을 것 같이 보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강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맑은 상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전히 물고기들이 힘차게 헤엄쳐 다닙니다. 혼란을 거치고 나면 맞이할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다고 비를 막아버리면(막을 수도 없겠지만) 강물은 결국 말라버립니다. 당연히 그 곳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죽어버리고 말지요. 지금 학생들의 모습이 그런 장마와 같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당장은 혼란스럽고 어수선해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학생들의 어린 항변을 그저 무절제한 반항이라고만 여기고 이를 막는다면 당장은 세상이 조용하겠지만 이 땅의 미래는 훨씬 더 암울해지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가방을 벗어놓고 거리로 나온 것은, 어머니들이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거리로 나온 것은 어떠한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안심하고 공부하고, 안심하고 밥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정책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위하겠다던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한숨 나는 일이 끊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옛말에 나랏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시절이 진짜 태평성대라고 하던데, 요즘은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집어삼키면서도 살기 위해 꼴도 보기 싫은 분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해결방안 마련은 커녕 충격도 가시기 전에 새로운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니 참으로 쉴 틈을 안 주시는 부지런한 분들입니다. 하루에 서명만 몇 개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분개를 하는 것도 지칠 정도입니다. 과연 이 땅에 희망이 있는가 싶은 생각마저 들고요.
하지만 여지껏 숱한 고비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서민들의 저력이 이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앙금과 잘못된 관행이 지금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고는 있지만,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능해질 만큼 민주적이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성과들을 이뤄냈습니다. 우리 정부가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우리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 정치적 위기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부디 우리 국민이 부당한 권력에 지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꽃보다 귀한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