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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기네스인 손홍식님

이준우 |2008.05.10 17:18
조회 124 |추천 1

헌혈 인구가 2003년 170만명, 2004년 156만명, 2005년 150만명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손홍식(57)씨는 지금까지 499차례 헌혈했다.

그는 오는 16일 500회째 헌혈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헌혈 1인자다.

통계청 전남보성출장소장을 마지막으로 지난 2005년 퇴직한 그의 명함에는 ‘헌혈홍보대사’ ‘장기기증홍보대사’라고 적혀 있다.

# 콩팥 하나와 간 일부도 이미 기증 

 

손홍식씨는“헌혈 상한선인 64세까지 계속 헌혈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왜 헌혈을 시작했나?

“내가 주사바늘을 상당히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에 ‘강제로’ ‘아프게’ 주사를 맞은 경험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지 않았나 싶다. 헌혈버스만 보면 주사바늘 생각이 나서 행동(헌혈)에 옮기질 못하고 주저했다. 그렇지만 헌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헌혈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 1984년 6월 29일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오다 보니 기록 아닌 기록이 만들어진 것 같다. 첫 번 헌혈을 하고 나서 10회를 채우기까지는 3년 가량 걸렸다. 10회를 넘어서니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

―10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열 번만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헌혈을 몇 번 하고 나니까 뭔가 마음이 뿌듯해졌다. 기분이 좋았다. 헌혈하고 나서 ‘초코파이’ 먹는 재미도 있었다. 목욕이나 이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헌혈을 하면 할수록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까지 계속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등산을 계속하다 보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지 않은가. 정상에 올라가면 뭔가 시원한 기분을 느낀다. 헌혈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헌혈을 할 때 그런 성취감을 느꼈다.”

―양(量)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나?

“지금까지 헌혈을 해온 지가 24년이니, 매년 20번 꼴이다. 지난 2일 499회 헌혈을 했다. 500회에서 한 번이 부족하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500회에다 매회 500㏄를 곱하면 모두 250?가 되는 셈이다. 보통 사람 50명분의 전체 혈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헌혈을 시작하던 무렵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반대는 없었다. 헌혈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효과도 있다. 내가 콩팥(1994년)과 절반의 간(2002년)을 기증하려고 했을 때는 가족이 많이 염려했다. 도우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하지만 집안 식구들이 이해해줘서 두 차례 장기기증 수술을 했다.”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나?

“보통사람의 체중 7~8%가 혈액이다. 체중 60㎏이라면 혈액은 4800㏄정도이다. 그런데 이중 10%인 500㏄는 비축용이다. 여유분량이다. 그래서 여유분량을 헌혈하게 되더라도 생체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방안을 계속 잠가두면 공기가 탁하게 된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순환시키듯 헌혈을 통해 피를 순환시키고 생체리듬을 활성화 해준다. 헌헐을 하면 무료로 혈압과 간염 등 여러 항목을 자동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저체중, 혈액저비중, 저혈압, 고혈압, 각종 질환 등이 있으면 헌혈을 할 수 없다. 헌혈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 피 상당량 수입…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주위에 헌혈을 권유하는데도 힘 쓴 것 같은데.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한번 이상 헌혈한 사람수는 147만명이다. 한 사람당 1.53회꼴이다. 헌혈할 수 있는 연령대 3500만명 중 극히 일부분이다. 그나마 10~20대가 대부분이다. 헌혈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피는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만들 수 없다. 피는 곧 생명이다. 그런데 상당량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혈액봉사회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개인자격으로 주변에 권유하고 있다.”

―언제까지 헌혈할 생각인가?

“헌혈할 수 있는 나이가 만 16세부터 64세까지로 규정돼 있다. 내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7년 정도 더 할 수 있다. 그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보면 700회 가량 예상된다.”

 

 

기네스인의 헌혈 단상

 

먼저 어렵게 투병하는 백혈병환우들을 위해 혈소판헌혈을 해주시는 헌혈자여러분들과 긴급헌혈봉사단을 이끌어나가시는 박기천단장님과 더불어 함께수고하시는 모든분들께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어렵게 투병하는 백혈병환자에게 혈소판헌혈을 처음한것은 1995.11월 어느날입니다. 그이전에 이미 백혈병환자에게 혈소판 헌혈을 해주기로 하고 전남대병원에서 사전 검사를 하고 그때만해도 핸드폰이 아니라 무선전화 일명 삐삐가 더 사용화되던 시절에 허리춤에 삐삐를 차고 출장을 다니던 때입니다

 

저는 지금도 자가용이 없이 대중교통에 의지해서 다니지만 그때도 물론 그랬지요. 영광군 묘량면에 인구주택총조사 실사지도를 나가서 현지지도를 하고 있을때 그때는 마침 공기좋은 시골의 산기슭 언덕배기에는 하얀 억새풀꽃이 아름다울 때입니다. 오후 2 ~ 3시경 허리춤의 삐삐가 울렸습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전남대병원 헌혈실이었습니다.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더니 응급환자가 있으니 가능한한 빠른시간안에 병원으로 와달라는 것입니다. 수화기를 놓는순간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언제 대중교통을 기다리기는 그렇고 지나가는 용달트럭을 잡아세우고 목적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광주인근방향으로 나간다고 하길래 무건 타고나서 긴급히 가야하는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두 세번을 바꿔타고 와달라고하는 시간안에 전남대병원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혈소판헌혈을 했지요. 그때 다급하게 혈소판수혈을 받으신분은 전남 무안에 살고계시는 30대의 정미경씨라는 분이었고 그뒤로도 몇 번 혈소판헌혈을 해주었습니다. 그뒤 최근에 통화해본 봐로는 지금도 간혹 적혈구 수혈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시작한 혈소판 헌혈은 그 뒤로도 전남 목포의 초등학생 이경미 소녀와 전남 장성의 초등학교 정숙현 소녀등에게 수십번의 혈소판헌혈을 해주었고 그외에도 여러분의 환자에게 혈소판헌혈을 해주면서 백혈병환자들의 투병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1994.8.15일 골수기증 신청을 했지만 골수기증의 기회는 아직도 오지를 않네요. 골수기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않는 것은 제가 주로많이 혈소판 헌혈을 해주었던 목포와 장성의 두 소녀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핏기없는 가냘픈 얼굴의 모습을 지금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헌혈을 경험으로 수혈도 하나의 조직이식인데 다른 장기라고해서 기증못할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 1990년초반 일기시작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의 홍보를 보고 1994.7.28일 전남대병원에서 5 ~ 6년동안 투병해온 만성신부전증환자(순천거주, 김동균 36세)에게 하나의 콩팥을 기증했습니다. 현재도 순천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계십니다

 

그이후 2002.11.28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간암환자(오양자, 충주거주, 58세)에게 절반의 간을 기증했습니다. 현재 건강관리를 잘해서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간 기증운동은 의술의 발달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일반에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골수기증의 모집단 숫자가 적어 골수이식의 혜택을 보는 환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제가 한 기증을 자랑하고 내보이기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에대한 이해와 동기부여, 그리고 동참을 위해서 기회있을때마다 이야기하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참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먼저는 건강적인 어려움입니다. 우선은 건강이 전제가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루의 절반은 낮이고 절반은 밤이듯이, 세상사람들도 절반은 건강한 사람 또 절반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그렇다면 당연히 건강한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야합니다. 제자신이 지금도 이렇게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원천은 헌혈에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어느누구나 주사바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역시 주사바늘에대한 두려움은 남달랐습니다. 헌혈을 시작하기전에는 내자신 마음속으로 내가 아파서 죽는 한이 있어도 병원에사서 주사를 맞지않을 것이다 라고 내 좌우명처럼 되뇌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생각을 바꾸니 그렇게 쉬울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한다는 생각은 작심삼일에 딱걸리고 말았습니다

 

작심삼일에 걸리고나서 여기서 발목을 잡히면 안된다. 작심삼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고 가다가 아니곧가면 아니간만 못하리라가 아니라 가다가 아니곧 가더라도 간만큼 이익이다 라는 생각으로 작심삼일을 밥먹듯이 했지요. 그런 이후 헌혈횟수가 열 번 정도가 되자 그때는 자신감이 있고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전혈시대닌까 2개월에 한 번씩 건너뛰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몇 년이 걸렸지요. 그때 느꼈습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것이 습관화되기까지는 엄청난 시행착오의 반복과 마음을 다잡지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때마다 스스로의 마음을 강화하고 실천에대한 의지를 잃지않으려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데 힘이 들었어요

 

그러고나서 느꼈습니다. 헌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목욕이나 이발(미용)이나 창문을 열어 방안공기를 한 번 바꾸어주는 거나 조금도 다를바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목욕하고 나서 이발하고나서 기분이 상쾌하지 좋지않고 찌뿌둥한 경우는 없지 않나요. 바로 그자체는 체내의 기(氣)의 순환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헌혈 또한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우리들 체내의 기(氣)의 순환이며 이는 조혈기능을 활성화 시켜주어 우리의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의식적으로 깨달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헌혈은 건강검진이요, 이를 통한 건강의 확인이며, 확인을 통한 확신, 확신을 통한 건강에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생각은 또 바뀌었습니다. 나눈다는 것, 남을 돕는다는 것은 이제는 의무와 책임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지켜야할 권리, 찾아야 할 권리, 실천해야 할 권리를 포기한다면 민주시민으로서의 모습이 아니지요. 그래서 지금도 변함없이 꾸준히 헌혈에 그리고 이의 운동에 작은 미력한 힘이나마 최선을 하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주시민의 당당한 모습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방관자적, 주변인으로서의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주인으로서의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이 보다 좋은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말처럼 우리가 일을 찾아서 할려고 하면 수도없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사람이 모든것을 다할 수 는 없습니다. 각기 생각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여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자신은 다른것은 다 꼴등이고 헌혈만 1등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4800만 국민들이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한다면 4800만가지의 1등이 존재합니다. 각자 있는 위치에서 스스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된다면 세상은 웃음이 묻어나는 행복한 모습이 되겠지요

 

2007년 새해들어서 2.19일에 4번째의 혈장헌혈을 했고 오는 4월중순경에는 헌혈500회기념 헌혈이벤트를 한 번 해볼까 구상중입니다. 관심있는 모든분들의 좋은 의견들을 좀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더불어 함께살아가는 공동체, 오늘도 아름다운 일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헌혈기네스인(496회)/손홍식/017-602-3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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