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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 낭만적 상징

김성호 |2008.05.11 10:59
조회 50 |추천 4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잠시 선생님이 되었다가 출세를 위해 일본군 장교로 임관해서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하였고 독립 후에는 친일행적 때문에 조용히 살다가 6.25 발발의 기회를 살려 다시 남한의 장교가 된다. 공산당과도 관련이 있었지만 공산당과 관련된 동료들의 명단을 넘기는 대가로 위기를 넘긴다. 이후 군인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중, 혁명 이후의 혼란을 틈타 과감한 군사행동으로 쿠데타를 성공시켰으며 대통령으로서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여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헌법까지 개정하며 독재의 틀을 갖추었지만 술자리에서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는 대단한 인간이었다. 물론 그는 식민지에서 태어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를 선택했던 독립투사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을 길을 걸어나간 그의 발자취는, 그리고 그 발자취에 묻어나는 의지는 일종의 경외감마저 불러 일으킨다. 당시에 내가 살았다면 나는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신할 수 있었을까. 확신은 없다. 그렇기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몸 던지는 대신 인간 박정희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그의 행적을 무작정 욕할 수만은 없다. 그저 민족적 차원에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의 방식이 옳지 않았다고 이야기 할 뿐이다.

 

그는 일본군 장교였지만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동상을 세종로에 세웠고, 공산주의에 손을 댄 적도 있었지만 반공을 국시로 나라를 이끌었다. 그에게 일본과 공산주의는 큰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단지 성공을 위해 거쳐간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고 대통령이 되었다. 온전히 그의 공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가난한 나라에 생기를 불어넣고 자신감을 심어 준 것 만큼은 분명하다.

 

어쩌면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에게있어 박정희는 영국인에게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가 그러하고 독일인에게 히틀러가 그러하며 일본인에게 전쟁당시의 군국주의자들이 그러하듯 단순한 과거의 지도자이자 독재자가 아닌 현재의 침체 속에서 과거의 영광과 자신감을 떠올리게끔 해주는 낭만적인 상징이 아닐까..

 

 

덧1)

 

그러나 박정희 개인을 마치 한국 경제의 구세주로 여기는 현재 대중들의 풍토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와 두 손 두 발로 자립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 우리의 경제부흥은 그들의 공이지 결코 4.19 혁명의 불꽃을 군화발로 짓밟고 일신의 영욕을 위해 국민들의 기본권을 탄압한 박정희 전대통령의 공이 아니다. 물론 경제성장에 있어 얼마간 그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결코 박 전대통령 개인의 업적으로 과대평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의 집권기간 동안 잃어버려야 했던 것들이 얻은 것들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덧2)

 

더불어 박정희라는 이름이 가진 낭만성이 현실 정치에 여전히 살아남아 그의 딸인 박근혜 의원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꼭 되짚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written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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