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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實相)에 대한 이해 몇가지 것들...

엄인범 |2008.05.12 02:22
조회 57 |추천 2

봉수의 사색속으로,,,(04.12.01 23:51)

 

" 세상의 본질, 실체에 대하여,,,"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수천년전 혹은 그 이전,,,존재하고 인식하는,,,그 모든이들의,

고민이었을 것이며,

 

칸트가 말한 인식이전의 그것 (물자체(物自體, ding) '순수이성비판') )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며,

모든 철학자들 혹은 모든 이들이 고민한 것이며,

무엇보다 불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도 관련이 있으며,

 

자아에 대한 고민과 세상의 이치랄까,,, 진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끝에 나온 생각들이다,,,

 

이글은 수년간의 방황속에서 내가 찾아헤메었던 물음의 답이 정리된 글이다. (다른곳에 적어 올려두었던 것을 다시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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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실아리  ▶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 라는 말로도 본질에 대한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은 애초에 설명되어질 수 없다. 하지만 부정확하게라도 설명이 아닌 이야기는 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가장 핵심되는 것이나 가장 단순한 것이 표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귀실아리  ▶     ⑴ 논리, 언어를 넘어 있는 것  


귀실아리  ▶     본질은 논리로 말되어 질 수 없다. 그것은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논리로 알려면 평생을 본질에 대한 책으로 학문을 하는 것을 억겁을 하더라도 다 알 수 없다. 허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이미 바로 곁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단 몇초라도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그 세계는 '단순인식'의 윗부분이므로 어떤 기준도 생각도 있을 수 없다. 그 무엇도 나뉘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귀실아리  ▶     ⑵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귀실아리  ▶     이는 본질을 대할 때,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경험한다고 할때, 경험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말로는 참 어렵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그런 개념의 경험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주체할 수 없는 고요함 속에서 저 절대적임을 깨닫는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시작이 없음으로 끝도 없음을 알며, 모든 것이 그러함을 깨닫는다. 그 곳은 3차원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귀실아리  ▶     ⑶ 저것이 바로 나구나! 


귀실아리  ▶     그냥 알게 된다. 이유는 알 수도 없다. 그것이 나임을 확연히 깨닫는다. 육체에 갇힌 내가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허상인 내가 아닌, 존재하지 않되 존재하는 저 광활한 초무한의 내가 나임을 알게 된다. 

귀실아리  ▶     ⑷ 저것이 모든 것의 본모습이로다! 


귀실아리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어떤 생명 있는 것에서 부터 생명 없는 무생물에 이르기 까지, 혹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과 먼지까지도 모두가 본모습으로는 본질임을 안다.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다른 말로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거나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모든 것의 바탕이 본질임을 안다. 더 정확히는 본질외엔 어떤 것도 없으며 심지어 허상까지도 본질의 피어남임을 안다. 

 

귀실아리  ▶     ⑸ 불이(不二) 


귀실아리  ▶     그러므로 모든 것이 둘이 아님을 알게된다. 하나라고도 할 수 없지만, 결코 둘이라고 할 수 없다. 너와 내가 하나다 함은 둘이 아님을 쉽게 말하는 것일 뿐, 결코 정확한 말은 못된다. 너와 내가 하나일 수는 없다. '나'가 있고 '네'가 있다는 것은 벌써 분리된 다른 것이 합쳐진다는 것이된다. 처음부터 둘이란 없었음으로 하나라고 말하는 것도 정확할 수 없다. 그래서 다만, 아니다..란 표현을 빌려써서 굳이 말하면 둘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귀실아리  ▶     ⑹ 신이구나! 


귀실아리  ▶     본질이 바로 신임을 알게 된다. 다른 말로는 일반적인 우리 생각으로의 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본질이 신이므로 내가 신이고 네가 신이며 다른 모든 것도 신임을 안다. 실로 신 이외의 다른 것은 없음과 또한 본질 아닌 어떤 것도 허상으로조차도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귀실아리  ▶     이런 모든 것들은 사람을 기쁘게 한다. 어짜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본질에서 태어남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들도 궁국의 점에선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허무주의는 아니다. 모든 것이 이미 신이며 모든 것이 이미 나와 둘이 아닌 것이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모든 것들아... 
 귀실아리  ▶     --------------------------------------------


 귀실아리  ▶     질문은 짧은데 답글은 참 길군요 ^^

 

2003년5월 17일 경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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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풀어본다.

 

윗글은  진리랄까... 실상에 대해서 아주 잘 이해되게 몇가지 것들을 아주 잘지적해서

간추린 택스트다.

연기(緣)사상과 공(空)사상을 이해한다면 혹은 현상과 실재?혹은 실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다면 누구나 쉽게 도달할수 있는 생각들이다.

 

어렵지 안타. 누구나 이해할수 있으나 위에서와 같이 말을 꺼내서 논리로 딱재어 내려하면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실상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잘 설명해 놓은 글이라는 생각이든다. 결국 연기(緣起)를 이해하고 물고 들어가게 되면 당연하게 만나게 되는 앎의 경지라고할까... 이해의 정도랄까 .. 거기에 도달하게된다. 

이미 예전부터 이야기 되어왔고 지금도 이야기 되고 나또한 이야기 하고있는 내용이다.

근래에 와서도 여전히 가장 확연하고 명쾌한 것이라 생각된다.


 

1)논리,언어를 넘어서는것...

나의 설명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주석을 달아보자면...(사실 개인적으론 위에 텍스트만으로 아주 적절하게 요약되었고 내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음미하는 차원에서 다시 풀어본다)

 

우리가 무언가 안다... 인식한다 고 할때 제대로 안다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꼭 그래야만 하는 일종에 법칙성이나 항구불변성,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특정한 속성이나 성질등을 포함하고 있다.

 

 적어도 특정한 범위에서는 꼭 그런 앎이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것은 한순간도 멈춰져 있지안코 변화하고 활(活)의 개념으로 이해해야한다.

 

단지 우리가 보기에 한순간 크게 변화하거나 그동안에는 그모습 그래로 인것처럼 보일뿐이다.

논리나 언어라는 것은 어떤것에 대해서 딱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눈에는 보이지 안치만 잔잔하게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

 

그 자체로 살아움직인다랄까... 그것을 개념

속에 집어놓고 규정하려 하면 역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항상 어떤 것을 제대로 설명할때는 그 단어 속에 반드시 규정성을 열어놔야한다.

 

유동성이랄까 융통성의 의미가 담기지 안는다면 어떤 언어도 어떤 사물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아무리 확실하다고 생각되어도 그런 언어나 지식이라면 어떤것도 참된 것이 아니라 보아도 무방하다.

 

2) 시작도 끝도없는...

마치 수직선과 같다. 그러나 0은 없다. 없는것이기에 없다. 0의 개념은 우리가 가지는

한계에서 온다. 한계를 넘어서면 0이 되는것이다. 없다가 생기는것처럼 보이고 있다가

없어지는것 처럼 우리가 느끼거나 아는것들은 이것에 속한다. 그렇치않으면 사고에서 오는 자체적 착각이나 그런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끝이 없다. 무한이 열려있다. 위에서 설명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은

우리가 1,2,3,4,5,.... 이런 수적 개념의 하나, 1이 아니다.  온전히 모든것은 하나를 이루고 있고 오직 하나일뿐이고 그것이 모든것, 그런 개념이다.

 

무한한 전체에서 우리가 구분하는것은 부분들에 지나지 안코 단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모든것이 있는 그자체로 모든것이 완전할 수 있는 것이다.

3차원이 아니고 다른차원이라고 했으나 3차원(3차원이 아니지만)이라고 할지언정 마찬가지다.

시작과 끝이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의 경계이다. 실상(實相)에서는 경계가 없다.

 

반대로 우리는

항상 경계를 가지게 됨으로 그것이 특정하게 규정된것은 아니지만 항상 그때 그때 규정되고 경계를 갖게된다. 시작과 끝은 절대치나 절대성을 가지지 않으며.. 항상 임의적이고?  상대적이며 어떤 필요에 의해 규칙성을 가질때 약간의 절대성을 포함할 뿐이다. 

 

3) 끝까지 나는 무엇인가.. 누구인가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물음을 들고 지극히 객관적으로 사색한다면 나에대한 고정관념 혹은 나는 이러이러하다 등으로 규정혹은 자아의 고유한 성질에 대해 깨어짐을 알게 되는 때가 오는데

단지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그 물음을 놓아버리면 허무주의에 빠진다. 혹은 공(空)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때에도 생각하는 그 주체는 잃어버려선 안된다. (그것에 대해선 데카르트의 방법적회의, 위빠사나의 사띠(알아챔)등의 방법이있다) 

허무에 도달해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거기서도 분명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의식하는 그 주체가 분명 있다. 그것을 놓쳐선 안된다. 그 '나'를 계속 물고 들어가면 나에 대한 또 다른 이해가 온다. 나 아닌 것이 없어지는 지경에 도달하는데,

 

개인에게있어 어떤 문제를 해소하고 종결지을 수도 있고 또  이때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4)5)6)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하는것은 절대성의 개념인데, 신(神)의 개념에 절대전지전능함

을 포함시키는데 결국 이것이 신을 자체적으로 모순되게 만든다. 신의 절대전지전능은

있을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초기불교에 나오는 부처와 범천(절대신)과의 대화보면 잘알수 있다. 

 

 혹은 그생각(신은절대전지전능하다는)을 그대로 밀고 나가도 신과 인간(완전함과 불완전한 존재의 대립)의 이분법적인 생각은 피할수 있다. 신 아닌것은 어디에도 없게된다.

 

세상 모든것이 인과에 의해 성립하고 사라지는데 창조되는 것은 우리 경계에 의해 무에서 유로 보이는것일뿐. 어던 것도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며 서로 인과로 만들고 쇠하게 하고 있기에 어떤 사물을 만든다면 거기엔 어떤 인과들이 있는데 이모든 것들이 신이 되는 것이다. 

 

*신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확립의 필요성,

기존의 신(자체적으로 성립할수없는 개념)의 개념과 다름.

 

(신에 개념과 그것에 대해서는... 위의 설명으로 부족하고 미흡하다. 차후 더 이야기 해야할듯하다. 또 더많은 설명과 다양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 혹은 나에대한 경계와 한계를 인식하고나면 처음엔 현상에 대해 불신을 가지는데 그리고 우리가 오감을 통해 알게된 현상 이전의 그 무엇, 실상의 개념이 생기고  실상을 요청하게 되는데 사실 이것은 뜬구름에 지나지 안는다.

 

있는 그자체를 보려고 알려고 할수 없다. 본다는 개념이 적용이 되지도 안코 보고 알려하면 이미 실상개념자체에 손상이 생겨 실상이라 말할수 없는 것이 된다. 언어적 문제도 문제지만, 직관이나 체득?등등 기타의 다른 인식방법또한 잘못 결론을 이끄는 수가 많다(개인적생각)

 

나중에 가서는 현상... 그것만이 있고, 사실 있다고 말하고 말해지는 차원에서는 모든게 다 현상이다. 실상은 개념이고 그것의 이해는 그러한것이 없다는 것(개념주의)을 아는것이다. 

 

우리가 보는 현상... 어떤 잘못된 생각, 어떠한 환상까지도... 진리 아닌것이 없게된다. 여기에는 99프로 까진 좋아도 100프로 그것이어야 한다는 맹신을 버려야한다.

 

모든것 유용성?혹은 유동성이 있는것을 알고있는 시점이다.(개인적으로 이리 표현했지만 내 표현의 미숙함으로 오해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떤 측면이냐하면... 내가 그렇게 보고있다. 이러이러하게 생각한다. 비록 그 모든것들이 잘못되었을 지언정.. 잘못생각한 그 사실, 나에게 그것은 환상으로 보이고 있는 그사실, 경계의 법칙들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그사실... 그렇게 믿고 있는 그사실,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길 이정도 까지만 생각해도, 개인에게 있어선 '나'는 무엇인가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문제의 해소와 삶과 우주의 경이로움, 나와는 다른 존재

라 생각되는 타인, 모든 인식자(의식있는자,불교에선 고통받는 모든이-중생의개념)에대한 무한한 자비심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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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더 음미해본다.

 

윗글에서 처음 이야기하는 부분(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 라는 말로도 본질에 대한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것은 애초에 설명되어질 수 없다. 하지만 부정확하게라도 설명이 아닌 이야기는 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을 보면 사실 어느 정도 언어적 유희랄까? 언어의 모순을 넘어서고 실상에 대해 나름의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토론이나 말을 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다.

 

혹자는 근기의 차(쉽게 말해 날 때부터 있는 수준의 차 혹은 후천적 그것)라고 말하고선 그리고 대화를 끈으면서 자기는 마치 다알고 있는냥...상대를 수준이하로 딱 그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하지 않고서 상대로 하여금 하근기(下根器)라 제면서 그 어떤 격차나 수준을 만드는 걸 나는 꺼린다.(그것이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설령 거기까지 생각지 않았다 하더라도 진리라고 하는 것...여여한 것은 누가 보아도 여여한 그것이기에 상대를 '넌몰라'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자신도 제대로 알고있지 못하면서 말이다.

(토론이나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안아야한다. 이것을 어기는 사람 그리고 이 것을 모르는 사람, 알면서도 상대를 비하하는 사람은 모두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온전히 이해한 상태에서라면 )   

 

그리고 그 정도의 앎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렵지도 않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 조그만 오해에서도 변질될 수 있는 '그것'이기에 표현 그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걸 알지만 그것을 공부하고 토론을 하고자 하고서 대화나 그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말로 온전히 표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온전히 표현해야한다.

언어는 그 자체적으로 한계가 분명 있기도 하지만 표현에 있어 무한하기도 하다. 우리가 이해한 것에 대해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나 실상에 대해 언어의 한계로 그 이상 입밖에 내기를 완전히 포기하면 그 정도의 자신의 이해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언어는 분명 규정성을 가지고 한계가 있고 임의적이기도 하고 규칙성, 절대성도 가지고 개념적지만... 항상 개념적이기에 모든 것을 담고 임의적이기에 유동적이기도 하다.

 

그 표현에서 언어적 한계를 넘어 무한하기도 하다. (언어에 대해서 차후정리필요)

앎의 단계랄까,,,이해,,인지의 단계가 어느정도 되면,,,

 

너나 할것없이 모든것이 이미 나이며, 모든사람을 사랑하게 될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 존재하지 않는 부분을 포함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자비심으로 표현되던 그 무엇이던,,,

 

나는 좋은사람이기도하고 나쁜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악마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다. 물건, 풍경, 그 어떤 것 빼놓지 않고 모든 것이 나이다.

 

어떤 무엇을 온전히 설명하기 위해선 온세상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것이 상관관계를 가짐으로, 그 자체가 하나(오로지하나)임으로,,,  

 

인간이라는 경계(실상에 단계에서 아닌 이해의 전으로 돌아가서 모든것은 경계이다. 경계, 개념지음 등등에서 사물이 분별되는 단계)를 가지면 

 

삶의 , 존재의 이유를 찾는데,,, 이유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러할뿐, 인간이라고 한정 짓는 경계의 단계에서는 '목적'만이 있을뿐이다. 

 

행복하라,,, 우리에게 남겨진것은 '행복하라'는 과제(목적)만 남겨져 있다.

 

애초에 나의, 우리의 고민의 시작은 '불행과 고통(苦)'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행복'이다.

 

우리가 다아는 사실 중 하나는

그 행복이라는 것은 함께할때(공유, share, 보시,베품) 증폭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어떤 바이러스 보다 전염성이 높다.

 

여기도 내가 있고 저기도 내가 있고 내 인식이 미치는 곳 모두 나이며, 내 인식이 미치지 않는 곳도 나이다. 존재하는것, 존재하지 않는것 모두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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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더 정리해서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을 이끌어낸다. 

 

무지에서 '밝음'을 찾았다면, '나'를 사랑하라.

 

진정한 의미의 '나'를 사랑하라, 온천지에 사랑을 담으라,,,

진정한 이기는,,,이타와 이기가 없다,,, 오로지 나(온세계)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와 나가 없는 법계를 사랑하는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다. 

 

누군가도 이미 말했잖은가...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고.

 

이단계에 이미 들어섰다면,,, 경계 속에 다시 들어가게 되더라도,,, 그 경계를 풀어낼수가 있다.

 

그대는 멋을 가지라, 사랑하라, 온세상을,,,

그리고 온세상을 멋으로 가득채우라,,, 그것이 그대에게, 내게 남겨진 유일한 '과제'이다.

 

- 초 이기주의자, 초 낭만주의자,  봉수 엄인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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