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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에 나온 마녀라는 정의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이라고 소개한다.
나 역시 이 소설의 마녀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으며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여자다.
현대 여성의 우상적인 모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소설은 3인칭적 시점으로 시점이 설정되어 있으나
등장인물도 소설이 만들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객관적인
행동,대사가 아닌 증언이라는 주관적인 생각의 말에 의해 소설이
구성되어간다. 이것은 작가가 포르토벨로의 마녀에 대한
동화같고 전설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위해서 만든 구성장치가
아닐까 하는게 내 생각이며 이 장치로 프로토벨로의 마녀를
주변 사람들에 의해 다시 한번 창조해 내기도 한다고 말할 수있다.
주변사람들은 먼저 그녀를 소개한다.
집시의 후손이자 고아가 되버린 그녀를 중동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베이루트에 살고 있는 한 부부가 입양한다.
그러면서 집시의 후손인 셰린 칼린은 아테나가 된다.
아테나는 그들 부부의 사랑스러운 딸이며
똑똑하고 자신의 의지가 뚜렷한 여자다고 증언한다.
아테나의 사랑에 대해서는 전 남편인 루카스 예센 페데르센이 증언
한다.
비오렐(아테나의 아들)을 사랑했으며 나도 사랑했지만 그녀에게는
너무 큰 욕심이 존재했다고 한 자녀의 어머니로서의 욕심.
그건 내게 힘든 시련이였으며 이는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했다.
[나는 결국 아테나에게 물었다. 내가 헤어지라는 말을 꺼냈을때,
어떻게 그렇게 담담했냐고 "나는 평생...고통은 조용히 받아들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는 여러가지 일을 거쳐 능력을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벌게 되지만 뿌리를 알지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방황한다. 그녀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며 사랑 또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번민이며, 전쟁이고, 내판단이 옳은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고자 잠 못 이루는 밤이라 정하면서 행복에 대해 답이 없는 문제라 정의하고 이런 것은 아테나, 그녀 본인도 답이 없는 문제라고 인식한다.
소설은 증언으로 소설을 구성시켜 소설의 흐름에 영향을
줄 것만 같았으나 , 훨씬더 소설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이는 정말 내게 대단한 것으로 느껴졌다.
소설은 아테나를 셰린칼린으로 다시 프로토벨로의 마녀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사람들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아테나는 한사람이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집시의 셰린칼린.
한 아이의 똑똑하고 이쁜 어머니 아테나.
사람들의 존경어린 시선을 받는 프로토벨로의 마녀.
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찾기위해 아테나는 물러서지 않고
춤이라는 집시의 문화를 승화시켜 자신을 위로한다.
현대는 고도의 발전으로 사랑마저도 기계화 시키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러한 현대에 인간의 저 면에 깊이 앉아있는
공백을 채울 춤이라는 인간의 몸짓을 승화시켰다.
우리는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아테나이며 셰린칼린이며..
프로토벨로의 마녀이다.
현대문명에 깊이 빠져버린 마약중독자들이다.
이제 춤이라는 공백의 무기를 꺼내들자.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무기를 꺼내들자.
노래를 듣자 . 삶을 즐기고 사랑을 즐기며 자신을 끌어내자
현대문명에 갖힌 자신을 끌어내자는 것이
파울로 코엘료의 뜻 아닐까? ^^*
오.. 순결한 동정녀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아멘.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이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11장 3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