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조사에 이루어진 글이 맞습니다만, 개인적인 의견과 생각이 많이 반영된 글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요즘 이산 보는 재미로 산다. 재밌는 부분인 이산과 홍국영 콤비의 노론과의 한판승부가 끝난 시점에서 극의 전개가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 줄줄이 초상 치를 일만 남은 상황에서 우리 예쁜 송연이랑 헤피엔딩으로 끝내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다.
극의 전개가 느슨해지다 보니 어느새 보이지 않던 주변 인물들에 관심이 가게 된다. 요즘 등장한 정약용도 그렇고, 유득공, 박제가와 같은 규장각 검서관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쭉 둘러보다보니 송연이를 아니 의빈 성씨를 괴롭히는 무서운 혜경궁 홍씨가 보인다.
강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생각해보면 그녀만큼 모진 세월을 보낸 이도 드물다. 남편의 죽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으며, 아들 정조가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봐야했다. 어디 그뿐인가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을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아들 정조의 석연찮은 죽음을 목격하게 되며, 대비가 아닌 탓에 숙적 정순왕후가 어린 숙종을 대신해 수렴청정 하는 모습까지 보게 된다. 참으로 오래 살며 모든 것을 지켜본 그녀이기에, 그녀가 저술한 조선 최초의 궁정 수필인 ‘한중록’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한중록’은 모두 네 편으로 되어 있다. 제1편은 혜경궁 홍씨의 어린 시절과 세자빈이 된 이후 50년 간 궁궐에서 지낸 이야기를 하는데, 사도 세자의 비극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제2편과 제3편은 친정 쪽의 누명이 억울함을 말하는 내용이다. 제4편에서 비로소 사도 세자 참변의 진상이 기록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그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사도 세자의 죽음(임오화변)에 관련된 내용이다.
한중록을 집필한 시점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때는 숙종 1년. 환갑을 맞이한 혜경궁은 숙적인 문정황후가 죽은 다음 해에 집필을 시작했다. 손자인 숙종에게 서둘러 회고록을 써서 올려야 했던 데엔 이유가 있다. 사도세자r가 죽는데 힘을 보탠 노론 벽파인 탓에, 아들 정조에 의해 처단당해 더럽혀진 자신의 가문을 다시 복구시켜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중록은 그녀의 의도가 새겨있고, 그녀의 열망이 숨어있다. 자신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기에 한중록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편집된 역사일 수 있다.
가문을 위해 남편을 버린 혜경궁.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던 날 밤. 영조에게 아버지의 방면을 촉구하며 우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극에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혜경궁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혜경궁이 죽어가는 사도세자를 뒤로하고 숨죽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산의 연출자 이병훈 PD는 의도적으로 혜경궁의 의중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건 ‘한중록’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한중록’에서는 적극적으로 뒤주사건을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혜경궁을 보게 된다. 애초부터 벌어진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관계를 매울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도세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으며,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독단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일까? 가장 가까운 사도세자의 내자로서 그녀의 태도는 매정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 그 상황으로 되돌아가보자. 사도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받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영조는 노론에 의해 왕권을 잡은 사람으로서, 소론을 일으켜 자신의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사도세자와 뜻을 같이할 수 없었다. 사도세자를 없앨 기회를 호시탐탐 살피던 노론 벽파는 그 의중을 읽고 본격적으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간질을 시작한다. 그 노론 벽파 중에는 ‘혜경궁’의 아비인 ‘홍봉안’이 있었고, 세도가로 이름을 떨치던 작은 아버지인 ‘홍인한’도 있었다.
이 때 ‘혜경궁’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가 남편을 진정 사랑한 아내였다면 한중록의 기록이 맞을 것이고, 가문을 사랑한 홍가의 자식이라면 노론의 중심에 있던 아비를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가 더욱 설득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홍씨 가문은 그녀가 일으켜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왕의 외척을 형성하며 그녀를 지탱해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그녀의 힘이었다. 노론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그녀만이 남편인 사도세자를 지지하고 나섰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건 그녀가 매정해서가 아니고, 그녀의 운명이 그녀를 배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아마도 사도세자의 죽음에 침묵했을 것이다. 아니 노론 중신들의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간질을 거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거기서부터 꼬여버린 자신의 운명을 마주한다.
아들에 의해 무너진 가문.
사도사제가 죽는다고 해서 노론 벽파가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눈엣 가시 같은 세자가 있기 때문이다. 산이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남달랐다. 뒤주에 갇힌 아비를 위해 우는 산이의 효심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산이를 좋게 볼 수 없는 것이 영조였다. 하지만 적통의 유일한 자손이었던 산이는 영조에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영조는 세자를 지키려고 했다.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한 노력 벽파는 그럼에도 어떻게든 세자를 없애야 했다. 아무리 영조가 산이를 지키려 한들, 노론의 입장에서는 사도세자까지 죽인 마당에 산이를 없애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혜경궁이 그것을 막아선다. 가문을 위해 남편을 배반할 만큼 독했던 그녀도 아들 앞에서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렇게 영조와 혜경궁의 힘으로 이산이 결국에 왕이 되던 날, 혜경궁은 눈을 질끈 감았을 것이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자신을 음해했던 노론세력을 처단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간질했던 세력을 노론세력을 처벌한다. 물론 그 살생부엔 홍씨 형제가 있었다. 한중록에서 혜경궁으로선 적극적으로 홍씨 형제를 변호한다. 홍씨 형재는 절대 역모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중록의 집필 의도로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진실인가의 물음에는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드라마 이산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두 홍가 형제는 정조에 맞서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뇌하는 혜경궁의 모습은 카메라에 나타나지 않는다. 역사에는 그녀가 단식투쟁으로 그를 막으려 했다고 하지만, 효자인 정조라도 그 처단을 막을 명분은 없었다. 한중록에서도 그 부분만큼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변호하지만, 정조의 처결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은 피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죽이는 꼴이 되어버린 혜경궁은 또다시 조용한 침묵으로 모진 운명을 견뎌낸다. 놀라운 점은 한중록 속의 그녀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중록이 문학적으로 뛰어난 점은 긴박한 상황연출과 붕당정치의 폐단과 치열한 다툼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절대 감정적이지 않다.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린 아들의 이야기를 작성하는 그녀의 떨리는 손이 내게까지 느껴진다. 그녀는 참는다.
운명이 그녀의 필체를 섬세하게 길들이다.
정조의 죽음에는 많은 이견이 있다. 이산이 추후 어떻게 그릴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죽음 앞에 혜경궁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흥미롭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녀는 한중록을 집필하며 머릿속에 산이의 얼굴을 얼마나 그렸을까? 역사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내가 이 글을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성한 것처럼, 역사란 추론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건 개개인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의 차로 나눠지겠지. 한중록을 진실로 보든, 거짓으로 보든지간에 '한중록'은 뛰어난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기구한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 완숙한 감정의 분출을 만들어냈다고 하면 과장일까? 드라마 속 ‘혜경궁’을 보면 묻고싶어진다.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며 만들어낸 그녀의 이야기가 참으로 심금을 울린다. 진실이 무엇이든 깊은 울림이 존재한다. 환갑의 나이로 자신을 회고하는 혜경궁의 얼굴이 견미리씨의 얼굴로 겹쳐보이니 참으로 재밌다. 오늘도 다음주 월요일을 그리며 이산을 기대한다. 혜경궁 홍씨의 덤덤한 얼굴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