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예수의 경우는,
우리가 이미 그분을 안다고 믿는 그런 가상의 친숙함이
생소함을 낳았고 생소함은 경멸을 낳았으며
경멸은 심각한 무지를 낳았다..."
-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p17 中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해,
바나가 거듭난 그리스도인(born-again Christian)과 복음주의자(evangelical)를
구별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1)
그에 따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란 "오늘날 그들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헌신한" 이들이며, 또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갈 것"으로 믿는 이들이다.
바나의 여론 조사에서는 어느 지역이건 간에,
미국 총 인구의 35-43%가 이와 같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기준에 들어맞는다.
또한 이는 현 한국의 상황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나는 '복음주의자'라는 용어는 훨씬 더 적은 수의 그룹,
즉 미국 총인구의 7-8% 정도에 한정시킨다.
복음주의자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몇가지 사항에 동의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삶을 사셨다는 것,
영원한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
확실히 이러한 정의는 신학적으로 훨씬 더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그리스도인 그룹에 해당한다.
그러하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오늘날 그들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헌신한 이들이며,
복음주의자들 또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요건에 더하여 더욱 성경적인 그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01년 8월에 있었던 새로운 여론 조사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전체 인구의 이혼율이 거의 같았는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이혼율이 33%이며 나머지 미국인의 이혼율은 34%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가?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들의 이혼율은 어느 정도인가?
바나가 실시한 1999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과 똑같은 수치다!
이 통계에 따르면, 25%의 복음주의자들이 - 총 인구의 25%와 똑같이 - 이혼을 경험했다.
그리스도인이나, 복음주의자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좇는 참제자의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인'이나 '복음주의자'라고 칭할 수 있는가...
현실을 놓고 보자면, 그럴 수 없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위의 사실인 결코 이혼율의 %를 따져서만도 아니며,
성적인 문제를 문제삼아서 복음주의자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문제삼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하루의 삶을 되돌이켜보며, 하루의 어느 한순간이라도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그의 의와 뜻을 생각하며,
순종하겠다고 한 시간이 얼마나 있었는가?
하루 아침 1시간도 못되는 한나절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면,
좋다... 하루의 1/24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주일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고 보고 싶으면,
그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의 대의에 사로잡혔는지 따지기 이전에
그대로 시간을 인정해 준다면, 보통 오전 10시부터 12시,
좀더 순종적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저녁예배나 오후예배까지 포함해서 2시간 길어야 3시간,
토요일 청년부 예배 2시간 총 7시간 * 1년(52주) = 15일 4시간
큐티와 예배시간을 합쳐도 30일이 못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335일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시간'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인이냐는 것이다.
결단코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몰라서 이기 때문인 것이다.
교회에선 결코 치부를 말하지 않는다.
그 치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두려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맥락안에서 본인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교회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미 그리스도인'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현재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음에 사활을 건 듯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른 문제에 집중하도록 강단에서는 다른 문제와
다른 일에 관심을 갖도록 계속 유도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않된다.
그 치부를 통해서 극복을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두려워한다. 모두가 다른 것도 틀린 것도 두려워한다.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리스도인은 온전히 '그리스도'때문에 존재한다.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하에서 '그리스도인'이 존재할 까...?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하다.
관심도 갖지 않는다.
문제제기도 없다.
궁금한 점도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로날드 사이더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그래서 교회는 문화나 대중 음악 시장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욕구가 너무 강해
예전에 지니고 있었던 그 독특한 모습을 잃어버렸다.
매일 매일 교회는 점점 더 세상을 닮아 가고 있다. 이른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혼율과 한국의 인터넷 신문을 뒤덮고 있는 살인, 강간, 성적 문제, 폭력의 문제,
그리고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교회의 음지문제들은 모두...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인인지 끝끝내 드러내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아직 온전히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데 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를 만나야한다.
온전히 그분만을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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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ance
1.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RONALD J. SIDER
(Why are christians living just like the rest of the world?)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