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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도 점점 유행하는 동성연애에 관하여...

김현기 |2008.05.26 03:30
조회 413 |추천 1

요즘 한국에서도 점점 유행하는 동성연애에 관하여...

 

동성연애는 거짓말이나 남의 물것을 훔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다. 

 
옳다는 것 즉 진리, 오류가 없다는 것은 시간의 제약없이 그 자체로서 자연적으로 지속 될 수 있어야 한다. 오류가 있으면 자기의 오류의 걸려 넘어지게 돼있다. 오류가 없을때만이 자체적으로 완전하기에 지속이 가능하다. 오류가 없는 진리만이 시간이라는 테스트를 견뎌낼 수 있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솔직한 사회,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사회는 영구적으로 지속이 가능하나 모두가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훔치는 사회는 금방 몰락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는 지속이 되나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불신하는 사회는 지속이 어렵다는 것을 본다. 이런 의미에서 전자는 진리의 부합하는 오류가 없는 객관적으로 옳은 것이고 후자는 객관적으로 옳지 않은 비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옳은 것을 선하다고도 한다.
 
이와 맞찬가지로 남녀가 사랑하고 서로의 배우자에게 충성하는 사회는 자연적으로 시간의 제약없이 지속되고 번성까지도 가능하다. 반면 동성애 사회는 벌써 자연적 지속성에서 부터 걸림돌이 생긴다. 동성이 아닌 다른 이성과의 '바람'을 피지 않고는 (양성애자도 물론) 즉 사회의 절개와 질서와 신뢰를 무너트리지 않고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인공수정을 한다고 쳐도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야되지 정자끼리나 난자끼리는 인공수정이 불가능하다. 즉 동성애 부부라고 해도 정작 생육하고 번성하는 면에서는 전혀 끌리지 않는 이성과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고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고로 동성애 사회는 자연적 지속성에서 부터 하자가 있으며 또한 고로 동성애는 종교적으로나 주관적으로가 아닌 객관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자체만으로 시간이라는 테스트를 견뎌내지 못하고 몰락하기 때문의 비진리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신기하게 발견한 것은 사회를 종말로 이끄는 객관적으로 옳지 못한 일들을 하는 개개인들(e.g. 거짓말쟁이, 분열하고 험담하는 이, 남의 소유와 배우자를 탐하는 이, 동성연애자 등) 은 괜히 떳떳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객관적 옳고 그름, 다시 말해 인간의 지속 여부를 돕는것인가 헤치는 일인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감시장치 양심이라는 것은 우리의 지속적 번성을 원하시는 사랑의 창조주로 부터의 큰 선물이라고 본다. 물론 비진리들이 떳떳해진 사회 즉 '양심이 화인 맞은' 사회는 그 사회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이야기이다. 과학적으로 불은 산소가 없을때 연소가 불가능한 것처럼 사회도 자체적 지속이 불가능한 비진리들이 판칠 때 몰락이 임박한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리중에 죄없는 자, 절대 도덕성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이가 비진리들을 돌로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중에 그런 자격을 갖춘이는 없다.
 
사회는 '훔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 말라'라는 법안들을 제정해 놓았다. 역사를 통해서 절도, 살인, 거짓이 판 친 사회들은 지속이 되지 못함을 보고 우리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놓은 것일 거다. 그럼에도 절도, 살인, 거짓이 하나도 없는 사회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 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그렇게 큰 제어장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린 어쩔수 없으니 훔쳐도, 간음해도, 거짓말해도 ... 좋다'라는 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종말로의 가속화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에 관해서도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도 낙태금지법이나 금주법이 다 실패한 것 처럼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객관적으로 인류의 지속을 위협하는 것은 위협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전에 실패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기 싫어하는 아둔하고 강팍한 사람들의 사회는 어쩔 수 없이 몰락으로 향해야만 하는 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거짓말, 절도, 낙태, 술, 동성애 이상에 즐거움과 떳떳함과 아름다움을 선사하여 그들이 자발적으로 돌이켜 진리로 돌아오게 하면 된다. 진실된 사회의 소중함을 맛본 사람은 거짓말을 경멸히 여길 것이다. 나의 피땀으로 벌은 물건의 소유권을 보장 받아본 이는 절도를 혐오스럽게 여길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과 이성적인 대화의 건설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은 낙태와 술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새벽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셔본 사람은 밤 늦은 거리에 매연냄새를 역겨워 할 것이다. 빛을 보았던 사람은 어두움을 매우 어색하게 느낄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녀간의 양심적으로 떳떳한 숭고한 사랑을 해본사람은 음욕으로만 이끌리는 육적인 쾌락주의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자연의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이가 인공적 선풍기나 에어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함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정말 국가의 지속적 성장을 고려하는 정부와 국민이라면 밤낮 법만 제정하며 입으로만 '사회정의 구현', '통합선진 사회'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앞장서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 (즉 모든이들에게 평등함)을 보장해주며, 진실됨으로 국민과 소통하여 순수함으로 변질을 이기고, 정상으로 비정상을 설득시키며, 지속적이고 떳떳한 아름다움을 선사함으로 파괴적이고 거짓된 자극성들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빛으로 어두움을, 선으로 악을, 사랑으로 두려움을, 정상으로 비정상을, 순수함으로 변질을, 행함으로 탁상공론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이전에 양심을 부여하시고 '권선징악'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권모술수 이전에 순수함을 믿으며, 간계와 공포이전에 사랑(cf. 고전 13장)과 하늘의 지혜(cf. 야고보서 3:17)를 간구하는 정부와 개인으로부터만 가능하다.
 
이전에 들은 어떤 신화얘기이다. 어느 협곡을 배를 타고 지날때 그 주변에서 미혹적인 노래로 뱃사공들을 현혹시켜서 다 물로 뛰어들어 죽게 만든다는 여신들이 살았다. 그래서 첫번째 배 선장은 뱃사공들을 밧줄로 꽁꽁묶고 그 협곡을 지나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뛰어내리지 '않고' (정확히 말해, '못하고') 협곡은 지날 수 있었지만 협곡을 지나며 너무 그 유혹을 따라가고 싶어서 자학을하고 성질을 내고 괴로워했던 뱃사공들은 협곡은 지나왔지만 거의 탈진과 자학으로 죽은거나 맞찬가지였다. 아마 법과 처벌장치는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식으로 완벽히는 해놓았으나 정작 사람들의 마음은 설득하지 못한 사회가 이런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배 선장은 좀 더 지혜로웠다. 이 선장은 밧줄로 승부하지 않았다. 협곡을 지날 때 더 아름다운 노래, 더 숭고한 노래, 더 떳떳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노래를 배 속안에서 연주하게 했다. 그 어느 뱃사공도 자극적이고 미혹적이고 궁국에는 파괴적인 여신들의 노래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 협곡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즐거움으로 지나올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사회를 꿈꾼다.
 
내가 믿는 진리가 더 숭고하고 아름답다고 자신있으면 무엇이 두려운가. 자기가 믿는 진리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나 남들을 정죄부터 하고 무력으로 탄압하고 죽이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으며 그 어떤 세상의 것도 우리 하나님 안에 있을 때의 완전하고 충만한 즐거움의 비할 바 되지 못한다는 것에 자신이 있다. 그렇기에 그분의 사랑과 빛으로 선재공격을 가해 사람들의 마음을 이겨오는데 자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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