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비스 신드롬과 주인 의식
군중 속의 방관자가 되는 작은 利己心을 버려야
사회심리학 용어 중에 '제노비스 신드롬'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1964년 미국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라고 하는 20대 여성이 야근을 하고 귀가길에 정신이상자에게 까닭없이 칼부림을 당하고 죽은 사건에서 유래한 것으로 군중이 되면 용기를 얻게 된다는 통념과는 달리 도리어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되었을 때 책임감이 엷어지는 현상을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즉, 당시 제노비스 그녀에게 행해진 광란극은 35분이나 계속되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38명이었지만 한 사람도 그녀를 도우기 위해 제지하는 등의 직접적 행동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경찰에 위급한 상황을 신고한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해서 심리학자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여 실험을 한 결과 위급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위급한 상황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도리어 적어진다는 실험결과를 도출해내었다고 한다.
그것은 특정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군중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대담해진다는 이제까지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도리어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상황에 대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져야할 책임감의 무게가 가벼워지기(분산되기) 때문에 도리어 위급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대처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이런 현상이 하나의 사회심리학 용어가 버젓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최근이지만 필자 역시 그동안 살아오면서 필자 제노비스 사건의 38명의 목격자 중의 하나였던 경험은 많이 있다.
'나 하나쯤은....' '나 아니라도 누군가는....' 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져야할 책임감 회피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했던 기억이 많이 있다. 인터넷이란 공간에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은 많이 비판하지만 필자 역시 이런 증후군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릴수만 있다면 할 정도로 참으로 부끄러운 기억이 많이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지난 2년 피를 토하듯 인터넷이란 한정된 공간에 불과하지만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전을 하다 신호등이 하나라도 고장이 나 있으면 경찰관서에 신고를 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 것 역시 지난 죄과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그래서 내 아들 딸에게만은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고 싶은 아비로서의 욕심이 더 이상 나태한 방관자로만 머물게 하지는 않는 것이리라.
그리고 더 고백하건데 그것은 지금 당장의 불편함을 참고 더 큰 나의 利己(사회 공동체의 유지와 그것으로 인해 보상받을 나의 행복)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늘 허리띠를 단단히 매어 내일을 대비하는 것처럼 오늘의 작은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함으로해서 내일의 더 큰 불편함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주인이 주인다워야 머슴도 머슴다워진다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사안을 처리하는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또 그 나라 정치(인)의 수준은 딱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선거라는 것 역시 그러하다. 선거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들의 수준에 맞는 선거가 행해질 뿐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진정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선거는 달라지고 달라진 선거가 바로 정치인들을 달라지게 하고 달라진 정치인들이 곧 국가를 달라지게 하는 것이다.
5.31지방선거가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아직 각당에선 후보 선정 작업이 한창이고 공식적인 선거전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선거전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난타전을 이루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달라져야 한다. 주인이 주인답지 못하는데 머슴이 게으르다고, 곳간을 털고 있다고 욕을 해봐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을 징치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선거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戰士가 된다는 각오로 마땅히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다해야할 것이다.
제노비스 사건 때 만일 피해자가 나와는 무관한 제3자가 아니라 내 가족의 일원이었다면 38명의 목격자가 '나 아니어도 누군가는'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한 사람이 무고하게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방관자로만 일관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국가, 사회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이상은 방관자로 일관해도 직접적 피해가 오지 않을 '제노비스의 목격자'는 아닌 것이다.
오늘 나의 방관자적 태도로 인해 국가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직접적 피해는 바로 38명의 목격자의 역할에 머물렀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군중 속의 방관자가 되는 利己心을 버려야 더 큰 이기심을 충족시킬 수가 있다. 나 하나쯤은 하는 방관자적 생각을 버리고 '나라도'하는 주인의식을 가진 행동들이 비록 지금 당장은 저수지에 돌 하나 던져 넣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처럼 결국은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제노비스 신드롬과 주인 의식 2006년 4월11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