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최고의 기타 연주 10대 명곡 7위 Jimi Hendrix의 Voodoo Child(Slight Return)

정철 |2008.06.12 00:03
조회 1,010 |추천 3
play

Voodoo Child(Slight Return)

 

Well, I stand up next to a mountain
And I chop it down with the edge of my hand

Yeah Well, I stand up next to a mountain
And I chop it down with the edge of my hand
Well, I pick up all the pieces and make an island
Might even raise a little sand
Yeah 'Cause I'm a voodoo child
Lord knows I'm a voodoo child baby

 

 

I want to say one more last thing
I didn't mean to take up all your sweet time
I'll give it right back to ya one of these days


I said I didn't mean to take up all your sweet time
I'll give it right back one of these days 


If I don't meet you no more in this world then uh
I'll meet ya on the next one
And don't be late Don't be late
'Cause I'm a voodoo child voodoo child
Lord knows I'm a voodoo child

 

스튜디오에서 단 세번의 합주만에 녹음된 이 곡은 원래 녹음과정이 ABC TV 에 의해 16미리 카메라로 다 녹화되었었다. 근데 방송국에서 그만 테잎을 도둑맞는 바람에 다시는 볼 수 없게 되 버렸다고 한다.

 

“우리 밴드의 음악은 전자기타로 된 종교음악이다. 영혼을 때려서 영혼을 열게 하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랄 수 있다.”

록 기타시대를 연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지미 헨드릭스의 아버지는 탭 댄서였고 어머니 루실(Lucille)은 알콜 중독자였다. 이들 부모는 지미가 7살 때 헤어지고, 지미는 그 때문에 사랑이 결여된 빈곤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어느 날 지미는 아버지로부터 우쿠렐레를 선물받게 되는데 이것이 그에게 있어선 최초의 현악기와의 만남이었다.

58년에 어머니 루실이 알콜중독과 결핵으로 병원에서 사망하자 지미는 그 충격으로 더욱 음악에만 몰두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지미는 기타연주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서 공공연히 약물을 복용해대는 문제아였고 오로지 기타만 쳐댔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만다. 이후 지미는 낙하산병으로 군에 입대했는데 여기에서도 ‘Casuals’라는 밴드를 조직해 연주를 계속하였다.

제대 후 지미는 65년까지 리틀 리처드의 보조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지미의 명성은 66년경으로 오면 더욱 높아져, 당시 명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마이크 브룸필드나 에릭 클랩튼 등에 비교되기도 했다.

 

당시 지미의 연주를 보던 사람들 중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리우던 쟈니 할러데이는 지미에게 자신의 파리 공연에 오프닝으로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지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멤버를 구하기 시작하여 베이시스트 Noel Redding(노엘은 기타리스트로써 자리를 구하러 왔으나 지미와 한번 연주해보곤 기타를 포기하고 베이스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드러머 Mitch Mitchell(당시 19살이었던 그는 3살 때부터 드럼을 연주했다고 한다)와 함께 멤버를 구성한다 후 3인조 록 트리오 Jimi Hendrix Experience를 출범시키고 3일간의 연습을 거친 후 쟈니 할러데이의 유럽공연에 참가하였다.

공연 후 이들은 역사적인 데뷔작 [Are you experienced?]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 지미는 충격적인 사이키델릭 하드록 기타를 들려주어 그는 금새 음악계 최고의 화제가 되었다. 화려한 데뷔를 장식한 지미는 길이 남을 걸작 앨범들을 발표해 역사상 최고의 대 기타리스트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미는 여러 가지 악성 루머들 속에서 그룹을 해체시키고 드러머 Buddy Miles, 베이시스트 Billy Cox 등과 새로운 밴드를 출범시키고 70년에 [The Band Of Gypsys]라는 앨범을 발표하였으나 지미의 죽음(1970년 9월 18일 약물중독으로 사망)으로 제대로 활동도 못한 채 없어지고 말았다. 스마르칸트 호텔의 지하에서 사체로 발견된 그의 사인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수면제를 과다하게 복용해서 구토 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질식해 죽었다는 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는 명실공히 역사를 바꾼 대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흑인특유의 끈끈함이 배어 있는 블루노트 펜타토닉을 기반으로 강렬하고 공격적이며 격한, 그리곤 외로운 명 프레이즈들을 남겼다. 그의 피킹은 힘이 없는 듯 하면서도 격정적이며, 핑거링은 아무 생각 없이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잘 정돈된 질서가 있다. 또한 블루스 락 기타리스트답게 여러 가지 핑거 테크닉을 다양하게 구사한 바 있다.

솔로의 경우 1현에서 2현으로 프레이징 되다가도 순간적으로 아무 의미 없이 오픈코드에 의해 줄 전체를 피킹해 버리는 비형식적인 면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연주되고 있는 Voodoo Child 등에서와 같이 커팅을 이용한 프레이즈도 즐겨 썼고, 반음튜닝에 의한 갖가지 폭발적인 벤딩과 비브라토 아밍을 구사하였다.

 

글 : 다음 신지식 참조

추천수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