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진충격> 2002.6.13 효순이 미선이 미군장갑차 사건

김윤진 |2008.06.12 22:07
조회 838 |추천 2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117560&table=seoprise_11

 

미국소 재협상과 이명박 퇴진의 그날까지 촛불집회는 계속 됩니다 !!!

 

미국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와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는

일본인이자 친일파들인 이명박 딴나라당 뉴라이트 매국노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오늘부터 6월 13일을 지나 참 광복의 날이 올 때까지 촛불은 계속 됩니다 !!!!!!!!

 

아래를 클릭하시면 효순이 미선이의 참혹한 사진이 보입니다

http://cafe309.daum.net/_c21_/bbs_read?grpid=vO8&mgrpid=&fldid=1jrK&contentval=0001A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72&nenc=Ew_HFHcJdnfs6xuSvIo3Sw00&srchid=IIMmdOTE00

 

http://blog.sisain.co.kr/209?srchid=BR1http%3A%2F%2Fblog.sisain.co.kr%2F209

  효순이 미선이의 한.. 250 x 166 | 블로그   ..진 '효순이·미선이' 200 x 250 | 뉴스   .. 효순이 미선이 .. 382 x 267 | 블로그   ..미선이 효순이를.. 580 x 386 | 뉴스   효순이 미선이 5주기.. 630 x 420 | 블로그   효순이·미선이를 기.. 450 x 296 | 웹 이미지   미선이와 효순이를 .. 640 x 480 | 카페   효순이 미선이 죽은.. 580 x 387 | 뉴스   효순이 미선이의 한.. 300 x 204 | 블로그   효순이와 미선이... 480 x 134 | 카페   ..미선이 효순이 이.. 500 x 5369 | 블로그   ..미선이 효순이를.. 400 x 602 | 뉴스   효순이 미선이 제주.. 600 x 449 | 카페   효순이 미선이 떠난.. 430 x 180 | 카페   효순이 미선이의 한.. 300 x 225 | 블로그   ..효순이와 미선이.. 500 x 375 | 뉴스

1 2 3 4 5 6     http://blog.sisain.co.kr/209?srchid=BR1http%3A%2F%2Fblog.sisain.co.kr%2F209    

 

효순이 미선이 미군 장갑차 사건이란 ?

1. 2002년 6월13일 미군 무한궤도 차량 출발 전

미8군 군사법정 재판과정 등에서 검찰과 변호인쪽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양쪽이 모두 인정하는 공통사항을 종합해 재구성하겠습니다.

미2사단 44공병대 소속 궤도차량은 이날 아침 일찍 무근리 훈련장에서 전술평가 훈련을 한 뒤, 오전 9시20분께 덕도삼거리 부근 집결지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궤도차량 운전병 대부분이 사고 전에 다른 훈련으로 인해 거의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2박3일동안 모두 5시간만을 잘 정도였습니다. 극도로 피로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사고가 난 6월13일 부대이동 사항은 그날 아침에서야 알게 됐습니다.(운전병이 그날 아침에서야 이 사실을 알 정도였으니, 차량이 지나는 도로 주변 주민들에게 이를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이 궤도차량은 폭이 3.67m로 우리나라 지방도로의 1개 차선(3.4m)보다 폭이 더 넓어 늘 중앙선을 침범하며 운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부대 지휘관(중대장 메이슨 대위)은 문산 우회도로 대신 지름길인 좁은 양주군 지방도로를 택했습니다. 운전병들이 이를 지적했지만, 지휘관은 이를 묵살했습니다. 그리고 궤도차량 운행이 시작됐습니다.

메이슨 대위는 대열 맨 앞, 미군 군용지프인 콘보이 차량에 탔고,그 뒤로 M113 장갑차가 뒤따랐고, 이어 문제의 궤도차량 5대가 그 뒤였습니다.

2. 사고 당시 상황

미선이와 효순이는 이때 오르막길 위쪽 오른편 갓길에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날이 지방선거 투표일이어서 학교가 쉬었고, 그래서 어릴적부터 단짝친구였던 의정부 조양중학교 2학년생인 미선이와 효순이는 친구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마을에서 600m 정도 떨어진 식당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궤도차량은 보통 서로 50~100m 간격의 거리를 두고 운행합니다. 사고 궤도차량은 대열의 3번째 차량이었습니다.

궤도차량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2리 56번 지방도로를 달리면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중앙선 한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덕도삼거리 부근 언덕길로 접어드는데, 이 길은 오른쪽 커브길에다가 오르막길이었습니다.

무한궤도 차량에는 관제병과 운전병 2명이 탑니다. 관제병은 위쪽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운전병에게 방향지시를 내리고, 운전병은 이 지시에 따라 운전을 하는데 운전병은 이 차의 구조상 전방과 왼쪽편만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전병은 사고가 날 때까지 오른쪽 갓길을 걷고 있던 미선이와 효순이를 못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관제병이 이 사실을 미리 알려줬어야 하는데, 커브길에 오르막길이 겹쳐 미선이와 효순이를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궤도차량 맞은 편에서 브래들리 장갑차(일반적으로 포신이 길게 붙은 전투용 탱크를 연상하시면 됩니다)가 마주옵니다. 무한궤도 차량의 차폭은 3.67m, 브래들리 장갑차의 차폭은 3.6m, 도로 한 차선의 폭은 3.4m. 결국 이 두 차량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갓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한궤도 차량은 오른쪽으로 두 번 선회해 갓길쪽으로 바짝 붙습니다. 이때 오른쪽 갓길 바로 옆은 수직 산비탈이었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가 무한궤도 차량이 자신들 뒤를 덮치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때 미선이와 효순이는 좁은 양쪽 도로에서 오가는 탱크 소리 때문에 귀를 막고 갓길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갓길을 침범한 무한궤도 차량 운전자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들을 덮칩니다. 이에 앞서 관제병 니노 병장이 `STOP‘을 세 차례 외치지만 통신기기 고장으로 듣지 못했습니다.

사고과정을 더듬어보면, 사고는 기막힌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차선보다 차폭이 더 넓은 장갑차가 수시로 지나다니는 이 도로에서 만일 미선이와 효순이가 희생되지 않았더라도, 누가 당해도 당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 합니다. 따라서 이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그후.....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한창 뜨거울 때, 한민족이 광화문에 모여 뜨거운 민족애를 전세계에 보여주고 있을 그무렵,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지 지방도로에서 미군이 57년간 이 땅에서 저질러왔던 범죄 만행이 한꺼번에 폭로된 사건이 발생했다.
  
조양중학교 2학년 14살 신효순·심미선 양이 의정부 주둔 미군2사단 44공병대대 소속 부교운반용 장갑차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그 자리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의정부 여고생들의 눈물의 시위로부터 시작된 격렬한 함성은 ‘살인마 미국’에 대한 청소년의 폭발적인 분노로 1차, 2차 ‘청소년 행동의 날’로 표출됐다.

그 분노는 온 국민의 광화문 촛불 시위로 이어졌고 마침내 거대한 항쟁이 되었다. 이리하여 57년 미군 강점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광범위한 반미 항쟁으로 피어오른 두 여중생 사건은 청소년에게 ‘미국의 본질’에 대해 가슴 깊이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살아나는 민족의 자존심

두 여중생 사건은 무엇보다 청소년에게 민족적 자존심을 일깨워 주었다.

어처구니 없는 오노사건부터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은 상황은 ‘차라리 맥도날드를 먹지 않고, 나이키를 신지 않겠다’는 자존심의 날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여동생을 지켜낼 수 없고 미국에 예속적일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살인자 미군,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두 여중생 죽음 이후에 ‘살인자 미군’에 대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2002년 11월 18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36) 무죄 판결 이어 22일 역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운전병 마크워커(36)에게도 무죄를 선언하게 된다.

이태껏 ‘우리의 혈맹’이라 믿고, ‘가고 싶은 나라, 부러운 선진국’이라는 가면을 벗고 대한민국을 점령한 오만한 점령군 미국의 본질을 제대로 낙인시켜야 했다.

 

한반도 평화와 전쟁반대로 이어져

두 여중생 사건은 청소년에게 ‘우리나라에서 미군 범죄만 일으킨 말썽꾸러기를 왜 감싸고 공짜로 한국에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면서 ‘US ARMY out of Korea!!’를 외쳤다.

청소년들은 주한미군이 철수해도 더 이상 안보 불안을 느끼지 않으며, 미국보다는 한 민족인 이북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는 설문조사를 통계도 나왔다.

그리고 두 여중생 사건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 파병반대, 한반도 평화’의 촛불로 이어지면서 청소년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전쟁반대 당연한 것 아니냐?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하면서 10만에 가까운 파병반대 청원 서명운동을 추진하는데 청소년이 큰 몫을 하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과 촛불세대, P세대

지난 2002년 월드컵 세대, 촛불세대를 일컬어   P 세대(참여 participation, 열정passion, 잠재력 potential power)라고 한다. 

열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회 참여의 주체'로서 바로 서게 된 청소년들은 '두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더이상 어처구니없이 미국에 예속되거나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주권을 지켜낼 것'이라고 한다.

 

P세대 청소년들은 '주한미군은 이 땅에서 떠나라! 너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외치면서 '우리 동생들이 주한미군의 범죄 없는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할 것'이라고 지금도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117560&table=seoprise_11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