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2일(목) 1:06 [중앙일보]
[중앙일보 최민우] 배우 남경읍(50). 뮤지컬 매니어라면 익히 알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겐 사실 그리 낯익은 이름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44)의 친형이라고 하면 그나마 고개가 끄덕여질까.
이런 남경읍씨가 올해로 데뷔 30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조촐한 갈라 공연을 연다. 성남아트센터에서 28일과 29일 이틀간 ‘아이 엠 남 샘’이란 이름을 걸고다. 근데 출연진의 면면이 보통이 아니다. 뮤지컬 최고 스타 조승우를 비롯해 박건형·김선영·서범석·최재웅·양꽃님·소유진·홍광호 등이 몽땅 나오며 남경주·최정원도 우정 출연한다. 이 정도면 대형 뮤지컬 한 작품을 만들고도 남을 호화 캐스팅이다. 누구 하나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참여이며, 노개런티다. 남경읍이란 배우가 과연 어떠하기에 뮤지컬 스타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걸까.
#악동에서 스승으로 올해로 배우 생활 30년째지만 남씨는 강단에 선 것도 25년째다. 서울시립가무단에서 활동하던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 때부터 교편을 잡았다. 이후 25년간 그는 계원예고·남뮤지컬아카데미·동서대·송원대 등에서 자신의 무대 경험을 100% 살린, 살아 있는 수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스타로 성장시켰다.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조승우씨도 수상 소감 마지막에 “현재의 나를 있게 만들어주신 남경읍 선생님께 이 상을 바친다”고 말할 정도로 후배 배우들에게 남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지금껏 배출한 제자만도 무려 2000여 명. 남씨는 “예전에 공연 볼 땐 제자가 한두 명 있으면 흐믓했는데 요즘은 몇 명이나 있는지 세곤 한다”고 말한다. 이번 기념 공연도 사실 제자들이 앞장서 마련한 자리다. 남씨는 “후배들이 저를 따르는지는 솔직히 모르겠고…. 단 크게 간섭을 안 하니깐 ‘꼰대’ 취급 안 하고 같이 어울려주는 것 아닐까요”라며 껄껄 웃는다.
지금은 후배 배우들의 정신적 지주지만 그도 학창시절엔 꽤나 말썽꾸러기였다. 태어난 곳은 경북 문경 탄광촌. 집안은 유복했고 그는 5남매 중 맏이였다. 그러나 행동은 천방지축이었다. 중학교 땐 마음에 안 드는 선생님을 골탕먹이기 위해 그 교사가 숙직하는 사이 학교 유리창 300여 장을 고무총으로 산산조각내기도 했다. 시험지 유출 사건도 있었다. 학교 사환을 몰래 꾀어 기말고사 문제지를 몽땅 빼낸 후 시험을 본 것까진 일사천리였다. 그러나 성적이 갑작스레 오른 것을 의심한 선생님들의 추적 끝에 뒤늦게 발각됐다. 덜컥 겁이 난 그는 어머니 곗돈을 몰래 빼내 오토바이를 타고 무단 가출을 감행했지만 그만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피해자와 합의를 본 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제 앞에서 펑펑 우시는 거예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죠. 사고치는 것의 땅을 짚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남씨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핑계 같지만 돌이켜 보면 악동같이 보낸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제가 배우로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배우란 무릇 일탈이 무엇인 줄 알아야 하니깐요.”이런 그의 철학과 성장 과정은 강의에서도 가끔씩 돌출된다. 무언가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배우를 보면 그는 “욕을 하라”고 주문하곤 한다. 틀을 깨기 위한 처방인 셈이다. 남씨의 딸(남유라)도 현재 계원예고에 다니며 연기자를 꿈꾸고 있다. 그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착실한 딸이 오히려 걱정이다. “‘또라이’기질을 키우라고 자주 말해요. 이게 ‘아버지가 할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배우 선배로선 어쩔 수 없이 지적해야죠.” #평생을 도전하고 싶다 그의 수업 방식은 독특하다. 따분한 강의라기보단 한 편의 공연처럼 다이내믹하다.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은 기본, 뒹굴기까지 한다.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특정한 상황을 설정한 뒤 각각의 인물을 다른 창법으로 불러보기도 한다. 주입식 설명을 배제한 채 적절한 스토리에 이론을 녹이는 것도 색다르다. 당연히 학생들의 집중력이 높을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늘 ‘넉넉한 맏형’만은 아니다. 그는 강의실과 사무실에 꼭 회초리를 둔다. 조금이라도 배우로서의 자질을 잊거나 나태하다 싶으면 그는 가차없이 매를 댄다. 매를 들기 전 ‘감정이 혹시나 개입했는지’와 ‘사심없이 제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두 가지를 꼭 체크한단다.
“너무 공자님 같은 말씀이지만 가장 확실한 교육법은 ‘제 모습’이죠. 전 지금도 길면 하루에 17시간 이상을 연습합니다. ‘연기 가장 잘하는 배우’는 자신 없지만 ‘가장 노력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전 ‘남경읍’이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어요.”이는 결코 과장이 아닌 듯싶다. 그는 이번 갈라 공연에서 피아노곡 2곡을 연주한다. 모차르트의 곡 등 정통 클래식 음악이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 그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는 ‘만 번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 현재 9000번 넘게 연습했다고.
“배우란 가슴에 무언가가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게 꺼질 때 저 역시 무대에서 내려와야죠.”짧은 역사 탓에 ‘어른’이 많지 않은 한국 뮤지컬계. 남경읍이란 배우가 그 역할을 해주길 후배들도 팬들도 모두 바라고 있지 않을까.
최민우 기자 남경읍은 …▶ 1958년생인 남경읍씨는 1세대 뮤지컬 배우로 분류된다. 서울예대를 졸업한 뒤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뮤지컬단) 1기로뮤지컬계에 첫발을 디딘 그는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공연 ‘위대한 전진’으로 데뷔했으며, 80년 ‘판타스틱스’의 첫 주연을 맡았다. 특히 뮤지컬이 평가절하되던 90년대 초반 ‘뮤지컬 번데기’란 작품으로 대한민국연극제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95년 ‘사랑은 비를 타고’. 동생 남경주씨와 함께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다.
남경읍 사단은 …▶ 계원예고 제자= 황정민, 조승우, 김다현, 조정은,양꽃님, 최재웅, 이율, 소유진, 홍광호 ▶뮤지컬 아카데미 제자=오만석, 박건형, 강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