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한상원 |2008.06.17 23:09
조회 298 |추천 0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왈츠가 흐르는 가운데 니콜 키드만이 옷을 벗는다. 스탠리 큐브릭은 1972년부터 대형 스타가 등장하는 포르노를 찍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가 꿈꾸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포르노와 예술의 분리되지 않는 교차지점, 마치 환상과 실재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는 영화의 내용처럼.

 

영화는 부부인 빌 하퍼드와 그의 아내 앨리스(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가 상류층 인사들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에 등장하는 유령들의 파티와 같은, 오로지 상류층만이 초대받을 수 있는 화려한 파티.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숨겨진 각자의 욕망을 드러낸다. 앨리스를 유혹하는 헝가리 신사, 빌을 유혹하는 두 명의 모델, 그러나 유혹에 넘어갈 찰나 빌은 파티의 주최자인 지글러의 호출에 달려가야 했고 거기엔 지글러와 섹스를 하기 위해 옷을 벗을 상태에서 마약 중독으로 죽어가는 여자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우리의 일상을 끝없이 자극하는 성적 판타지의 연쇄.

 

물론 빌은 아주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였고, 아내를 위해서 늘씬한 모델들의 유혹쯤은 견뎌낼 수 있는 남자다. 그러나 아내 앨리스는 달랐다. 마리화나에 취한 아내는 자신이 다른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기 직전인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온 몸을 달아오르게 만든 해군 장교. 빌은 견딜 수가 없다. 이때부터 그의 머리에는 해군 장교와 성교를 맺는 아내의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질투심과 불안감이 빌을 감돈다. 그리고 그를 유혹하는 여자들.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도 빌을 유혹하는 여자, 길거리에서 빌을 낚는 창녀, 두 명의 일본인과 변태적 섹스를 벌이다가 발각된 뒤 빌에게 눈웃음을 보내는 소녀. 빌은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여자들이 자신을 유혹하면 유혹할 수록, 머리 속에서 아내와 해군 장교의 성행위는 농도를 더해간다.

 

스스로 유혹에 넘어간 빌이 찾아간 곳은 집단 가면 무도회. 이곳에서 그가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발각되면서 그는 위험에 빠진다. 일상을 유혹하는 성적 판타지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스멀스멀 도사리는 위험들. 길거리에서 만난 창녀는 에이즈 환자로 밝혀지고, 가면 무도회에서 자신을 구해주려던 여자는 약물중독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계속되는 협박 메세지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우리는 욕망이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라캉의 용어로 하자면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늘씬한 두 모델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었던 빌을 흔들리게 만든 것은 바로 아내 앨리스의 충격적인 고백이었던 것이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모습을 강박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빌은 외부에서 탈출구를 찾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아내에게서 싫증을 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와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다. 아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와의 잠자리가 필요하다는 사실. 강박증 환자처럼 다른 여자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빌의 모습은 결코 바람기 많은 카사노바의 모습이나 변태성욕자의 모습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모습을 지우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해야만 한다고 믿는 너무나 평범한 상류층 남자인 것이다.

 

여기서 다시 정상적인 성 관계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겨난다. 라캉의 명제, "성 관계란 없다"라는 말은 남녀 사이의 섹스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항상 상상의 지배를 받아야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만 관계를 유지한다.

 

빌은 아내를 위해 다른 여자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을 통해 아내와의 정상적 관게를 유지해왔다. 즉, '나는 이 여자와 자고 싶다. 하지만...' 이것이 빌의 심리상태. 다른 여자와 자고 싶지만 아내와의 관계를 위해서 마치 자신이 그녀와 자고싶지 않은 척 해야한다. 이러한 빌의 심리(그러나 동시에 정상적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모든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것은 바로 마리화나에 취한 아내 앨리스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독설을 들은 뒤 빌의 심리는 '나는 아내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빌은 그녀와 해군장교가 섹스하는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것을 지우기 위해 다른 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진정 그가 원한 것은 처음부터 다른 여자와 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즉 그가 다른 여자와 자는 것은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마음 속에 있었던 욕망이 아닌가?

 

실재와 환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유유히 보여주던 스탠리 큐브릭은 마지막 장면에선 현실로 '귀환'하는 빌과 앨리스의 화해 장면을 보여준다. 조금 나이브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보여준 긴장감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결말이랄까. 그러나 다시 가정의 품에 돌아온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영화 내내 배웠다.

 

 

p.s1 원작 소설 를 읽어야 겠다. 프로이트가 극찬한 작가 아르튀르 슈니츨러의 작품이라고 하니.

 

p.s2 섹스를 다룬 영화들은 항상 슬프다. 이상하게도. 쇼스타코비치의 재즈왈츠처럼.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