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체르노빌 괴담"

이양자 |2008.06.19 01:49
조회 135 |추천 0

 

 

'체르노빌 괴담'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다. 수차례의 화학 폭발이 있었다. 2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소화 작업에 나선 소방수들도 방사능 피해를 보았다. 원자로 주변 30㎞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 9만여 명이 강제 이주되었다. 이후 원자로 작업자와 주민 4000~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환경단체들은 직·간접 피해자를 3만~6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유럽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1945년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나 많은 낙진 때문에 피해자가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주변 국가 언론들은 연일 방사능 노출 피해 소식을 쏟아냈다.

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의 5월은 확인되지 않는 '방사능 괴담'과 루머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리스 국토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한 결과, 그 수치가 허용 기준(100mrem) 이하로 나왔다. 그 정도의 양은 기형아 출산 등 방사능 노출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태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리스 산부인과 의사들은 당시 임신 중인 임부에게 기형아 출산 우려에 따른 임신 중절을 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 중절을 해달라는 임부와 남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방사능 공포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수주 후 우려했던 대다수의 의학적 오해는 풀리고 그리스 사회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1년 후 그리스 아테네 의과대학 연구진은 국민이 과학적 근거 이상의 공포를 가졌던 그 기간 얼마나 많은 임신 중절이 이뤄졌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당시 그리스 전역에서 전체 임신의 23%가 하지 않아도 될 임신 중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6년 2~4월 임신이 되어 그다음 해 1~3월에 태어날 아기들 4명 중 1명이 지나친 공포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해 기형아 출산 비율은 예년과 같았다.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는 당시 서유럽에서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된 임신 중절이 10만~20만 건인 것으로 추산했다.

캐나다 토론토의 소아과 의사들은 방사선이 암 발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2개의 논문을 놓고, 미디어가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하나는 '위험하다'는 논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괜찮다'는 논문이었다. 두 논문은 같은 기간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렸다.

조사 결과 당시 19개의 기사가 나왔는데, 9개는 '위험하다'는 논문에 대해서만 썼고, 10개는 두 논문을 모두 다뤘다. '괜찮다'는 논문만 다룬 매체는 한 군데도 없었다. 미디어는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처럼 '위험하다'는 쪽의 아이템을 뽑아 쓰는 걸 선호하고, '안전하다'는 쪽의 아이템은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 입장에서는 만의 하나를 생각해 '위험하다'고 말하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요즘 광우병 공포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일부 미디어는 그 공포를 과학적 근거 이상으로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신문이건 방송이건 그 사회에 어떤 위험성이 제기됐을 때 경각심을 조기에 알리는 것은 당연한 임무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학적 근거 이상으로 지나치다면 또 다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체르노빌 임신 중절'이 이를 증명한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의사.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