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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 디자인의 새로운 시각

곽창희 |2008.06.20 16:39
조회 311 |추천 3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 디자인의 새로운 시각 2005/08/01 18:20 :: 문화와 생활/국외탐방 개인적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오알비를 좋아합니다.^^
어쩐지 촌스러워(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워..)보이는 그 디자인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비비안웨스트우드를 안 지는 꽤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야자와 아이의 만화를 통해 그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나에서 상당히 많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이 내용의 원문은 네이버 지식검색임을 밝혀 둡니다. 원문 정리 : 겨자소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녀에게 빠졌다!


1941년 잉글랜드 더비에서 출생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지난 20년 동안 영국 '패션계의 여왕', '펑크의 1인자', '살아있는 국보'로 불리며 가장 영국적인 디자이너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달변가이자 펑크음악과 패션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서슴지 않았던 그녀는 패션계의 '마가렛 대처' 로 불립니다..
나이 들수록 파격적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92년 켄싱턴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방문하면서 속옷도 걸치지 않은 채 속이 비치는 드레스를 입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카메라 플래시 탓에 나체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났고 사진이 여러 신문을 장식했는데 당시 51세의 나이였습니다.
이듬해엔 그에게서 패션을 배우던 26살 연하 제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녀가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나와 교사 생활을 하다 21살 때 댄스홀 매니저였던 데레크 웨스트우드와 결혼했습니다. 공업지대 더비셔에서 공장 근로자 딸로 태어난 그녀는 17살이 될 때까지 미술책이나 영화구경 한번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예술적 소양을 감지할 부분이라곤 어릴 때 멋 부리기를 좋아했다는 것과 교사 생활 중 틈틈이 보석 디자인을 해서 벼룩시장에 내다 파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결혼 3년 만에 예술학교학생이던 말콤 맥라렌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이 1백80도 달라졌습니다.


전 남편과 맥라렌 사이에서 얻은 아들 둘을 키우면서 교직을 계속하던 그는 1971년 맥라렌의 제의로 런던 킹스로드에 [렛잇락(Let it rock)]를 내고 디자이너로 변신합니다. 3년 뒤에는 펑키 스타일로 정착, '섹스'라는 이름의 부티크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76년 그녀의 연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 맥라렌은 그가 매니저로 있는 영국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의상을 그곳에서 구입하면서 그녀가 곧 스타 디자이너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이후 전 세계에 펑크 열풍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웨스트우드는 이미 패션 아방가르드의 프론티어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81년 첫 컬렉션 'Pirate'이 영국에서 열렸습니다. 그녀의 첫 무대는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명성을 확고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3년에는 파리에서 그녀의 컬렉션을 발표하며 Mary Quant 이래의 최고 영국 디자이너로 자리 잡게 되면서 세계 패션에 새로운 낭만주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1982년 컬렉션에서는 서구패션사에 처음으로 비대칭 겹쳐 입기를 제시합니다. 그해 남미 인디언에서 영감을 얻은 [버팔로 걸]에서는 스커트와 속치마를 겹쳐 입히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경악시킵니다.


웨스트우드가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펑크 패션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던 맥라렌과 손을 끊으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는 [맥라렌이 말로만 펑크를 외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진짜 펑크 옷을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맥라렌과는 20년 넘게 동지처럼 지냈지만, 맥라렌이 여배우와 가까워지면서 1984년 완전히 결별합니다.

1984년에는 그녀를 가장 애호하는 도쿄에서 '캘빈 클라인',<EMBED id=bootstrapperssenaatistorycom168309 src=http://ssenaa.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 width=1 height=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wmode="transparent" EnableContextMenu="false" FlashVars="&callbackId=ssenaatistorycom168309&host=http://ssenaa.tistory.com&embedCodeSrc=http%3A%2F%2Fssenaa.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16%26callbackId%3Dssenaatistorycom168309%26destDocId%3Dcallbacknestssenaatistorycom168309%26host%3Dhttp%3A%2F%2Fssenaa.tistory.com%26float%3Dleft" swLiveConnect="true"> '장프랑코 페레'와 함께 패션쇼를 가집니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도발적인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은 전 세계에 걸쳐 그녀의 애호가를 보유하면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됩니다.
1985년 파리와 뉴욕에서 자신의 "Mini Crini"컬렉션을 열면서 커다란 물방울무늬를 사용한 부풀린 후프 스커트를 선보이고, 1988년 두 번째 숍을 열게 되는데 이 시기에 런던의 화려한 Mayfair거리에는 고급 부띠끄가 성행하던 시기입니다.

1990년에 스트리트 스타일보다 오뜨 꾸뛰르에 관심을 갖게 된 웨스트우드는 남성의류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세계가 인정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1990년과 1991년 2년 연속 '올해의 브리티시 디자이너'로 선정되었으며, 영국 패션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OBE'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영국적인 울과 트위드, 타탄, 리넨을 사용함으로써 그녀는 브리티시스타일의 전형이 되었으며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women's wear daily출판사는 그녀를 세계 6대 디자이너로 선정했으며 ITV 텔레비전은 그녀와 관련된 모든 쇼를 방영했습니다. 1991년 마가렛 대처로 변장해 상류층의 잡지인 Tatler의 표지에 실림으로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92년에 Bordeaux에 있는 CAPC박물관은 그녀의 회고전을 준비했으며 1994년에는 Leiden에 있는 Stedelikj박물관에서 그녀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199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수상했으며 왕실 예술가의 일원인 그녀는 1989-1991년 사이에 Vienna대학의 패션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1998년 그녀는 '퀸즈 엑스포트 어워드'를 수상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제품 라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매번 유행과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여성스런 곡선을 살리는 테일러링의 기법으로 제작된 수트 스타일과 과감한 실루엣의 응용으로 한층 더 여성스러우며, 글래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다양하고 밝은 색의 꽃문양과 면, 마, 실크소재의 사용으로 실용성도 갖춘 옷들입니다. 비비안 특유의 블라우스류는 몸에 완벽하게 달라붙으며, 절개선이 들어간 타이트스커트와 린넨으로 끝마무리된 니트류가 주를 이룹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은 크게 4가지 상품군으로 분류되는데, 가장 고가인 골드 라벨은 오뜨꾸띄르(맞춤복)으로 생산은 거의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이뤄집니다. 이브닝드레스와 코르셋 등과 같은 섬세한 의류들은 오뜨꾸띄르 전통에 따라 작은 아틀리에에서 두세 명의 수작업에 의해 진행됩니다.

레드라벨은 모든 상품을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며 골드 라벨보다 캐주얼하면서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의 의상이 주를 이룹니다. 레드 라벨의 셔츠와 니트류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1996년에 런칭한 남성복 라인은 전 라인 모두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며 남성복 라인의 전 디자인은 25살 연하인 비비안 자신의 남편이 직접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섹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의 의류가 주종을 이룹니다.

앵글로매니아는 1998년에 출시된 캐주얼 의류군입니다. 활동적이면서 캐주얼한 데님 소재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생산 모두 이탈리아에서 제작됩니다.

영국 전통의 옷감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사용됩니다. 해리스 트위드와 스코티쉬 타탄, 아이리쉬 린넨 등 울 종류는 매 시즌마다 중요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 타탄소재의 의상은 비비안본인도 자신을 위해 디자인하고 제작할 만큼 즐겨 쓰는 소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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