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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yrd and The Renaissance _1

김현정 |2008.06.26 23:50
조회 1,081 |추천 0

먼저 간략하게 윌리엄 버드와 르네상스 음악에 관한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영문으로 된 단행본 한 권 보고 있습니다. 버드의 미사와 모테트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

열람만 가능한 자료가 있는데 누군가 이미 가져다 보고 있는 중이라 아직은 읽지 못했습니다.

윌리엄 버드에 관한 이화여대 석사논문이 한 편 있습니다. 혹시 더 많은 문헌 정보를 아시는 분은 올려주세요.

음반이 학교 음대자료실에 있는데 조교 이상의 직분에 있는 사람들만 대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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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3 ~1623)


엘리자베스 왕조의 영국의 황금시기 최대의 작곡가.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탈리스에게 음악을 배웠고 그를 도와 많은 음악활동을 함으로써 영국 음악의 탄탄한 기초를 닦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아마도 링컨(Lincoln)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이나 어린시절에 관해서는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태어난 시기도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1539년부터 1540년대 초반 정도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해외 자료에는 1539년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국내 자료에는 1543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20세 때인 1563년 링컨(Lincoln)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장과 오르가니스트로서, 1572년까지 그곳에서 일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1573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예배당의 멤버에 가입, 탈리스와 같이 오르가니스트를 지냈으며 탈리스 보다 40년 아래인 버드였지만 탈리스의 제자이자 가장 신임 받는 동료로 지냈으며 스승인 탈리스와 함께 1575년 여왕으로부터 21년가에 이르는 악보의 출판 및 판매에 관한 전권을 받아, 같은 해 버드의 작품 18곡을 포함한[Cantiones Sacrae](성가곡집)를 출판하였고, 1585년 탈리스가 죽은 뒤부터는, 버드 혼자 악보 출판 독점권을 얻어[psalmes, Sonnets, and songs of Sadness and Pietie](1588),[Songs of Sundrie Natures](1589),[Liber Sacrarum Cantionum](1589.1591)등 모테트집을 비롯한 세속곡 들을 다수 출판하였습니다. 


그 뒤 또 1605년, 1607년에는[Gradulia](가톨릭의 모테트집), 1611년에 불(John Bull), 기번스(Gibbons)등과 최초로 출판된 버지널(Virginal)곡집인[Parthenia]를 출판하고 1623년 스론던에서 8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창작활동은 교회음악, 세속적 합창곡, 비올을 위한 실내악, 건반악기 음악 등 당시의 모든 분야의 음악에 걸쳐서 개성적인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영국 건반악기인 버지널의 주도적인 작곡가로서[파르테니아](Prathenia)나[핏츠윌리엄 버지널 북](Fitzwilliam Virginal Book)에 뛰어난 것이 수록되었으나 무곡 스타일을 양식화하고 샤콘느의 변주기법을 발전시키는 등, 버지널 악기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버드 자신은 평생을 가톨릭 신자로 남아 있었지만, 영국 국교회를 위해서는 영어에 의한 그레이트 서비스나 앤섬 등을 남겼다. 가톨릭 전례음악으로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3성, 4성, 5성을 위한 각각 1곡씩의[미사곡]과 약 260곡의 모테트가 있습니다. 


3성,4성, 5성의 미사곡이 언제 작곡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언제나 플랑드르 악파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순환형식의 미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이탈리아의 영향 아래 자라난 영국 마드리갈의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적, 세속적 합창음악에서는 영어 특유의 리듬성을 살린 탁월한 대위법 기교를 사용하였습니다.  버드가 쓴 성악곡들은 르네상스 교회음악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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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음악(The Renaissance : 1400~1600)


흔히 중세를 암흑시대라 하는데 어둡고 옹색했던 중세는 르네상스에 의해 눈을 뜨게 되었으며 밝은 인간성을 찾게 되었다.  

음악도 르네상스에 의해 중세적 속박에서 벗어나 근세풍으로 자유롭게 되었다.  

르네상스를 재생, 혹은 문예 부흥이라고 한다. 


르네상스 음악이란 르네상스 문화의 일부를 이루는 음악적인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사실 어느 시대의 어떤 현상이 르네상스적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이는 옛날, 특히 고대 그리이스와 로마의 문예와 정신이 새로 재생하여 새로운 것으로서 성장, 발전하는 것이다. 도시 생활이 빨리 발달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시민 계급간에 봉건 사회 와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자유로운 정신 활동을 하려는 풍조가 생겼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서 유럽으로 확대되었으며 나아가서는 독일에서의 종교 개혁을 통해 교회의 권위에 항거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본래의 정신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이같은 사조는 마침내 자본주의를 낳게 했으며 세계는 새로운 변화의 양상을 맞게 되었다. 이같은 새로운 변화가 14, 5세기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음악 분야에 있어서는 15세기의 네덜란드의 음악이나 14세기의 새로운 음악(Ars no-va)도 르네상스 음악의 하나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로 16세기를 르네상스 시대라 보고 있다. 말하자면 교회에 예속되었던 중세 이래의 예술을 해방시켜 고대 그리이스, 로마의 합리주의에의 부흥을 기도하려는 것이 르네상스의 예술이다.  



음악사상 이같은 정신이 음악에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이 고딕과 바로크의 중간인 16세기의 음악이다. 16세기에는 음악이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 르네상스 음악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 했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로마와 베네치아가 좀 다르다.  로마에서는 교회 음악이 현저하게 발달했으며 팔레스트리나와 같은 대가를 배출하였고 오라토리오에 있어서도 크게 발달하였다.  

베네치아(Venetian)에서는 주로 세속적인 음악과 기악으로 알려졌으며 교회 음악에는 화려한 2중창의 방법도 사용되었다.  

베네치아에는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10-1586)와 그의 생질 지오반니 가브리 엘리(Giovanni Gabrieli 1554경-1612)가 성악을 화려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으며 기악도 발전시켜 르네상스의 정신을 발휘하였다.  

로마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약 1525-1594)가 무반주 아 카펠라(a capella) 양식의 교회 합창곡에 새로운 양식을 도입하였다.

 그런데 더 한층 르네상스적인 것은 독일의 음악이다.  

독일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이 랏수스 (Or-landus Lassus 1532경-1594)가 1556년 뮌헨에 와서 팔레스트리나와 같이 무반주 합창곡을 위시해서 많은 세속적인 음악을 작곡하였다. 그같은 점으로 보아 그는 팔레스트리나보다 더 르네상스적이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개혁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의 코랄(Chorale 성찬가)은 더욱 그렇다.  

이 는 민요풍의 간소한 가락을 가장 높은 성부(聲部)에 둔 한 음 대 한 음의 화성적인 것으로써 누구나 노래하기 쉬운 합창곡이다. 이 노래야말로 르네상스적이라고 하겠다. 


한편 영국에서는 당시 성행하던 클라비어(Kla-vier)와 쳄발로(Cembalo)의 일종인 버지널 (Virginal) 음악과 버드(William Byrd 1542경-1623), 그 밖의 합창곡 등이 있다.  



악보 인쇄의 발명  


악보의 인쇄는 1500년 경에 시작되었는데 1455년에 성서 인쇄의 뒤를 이어 발달하였다. 

악보 인쇄로 음악의 발전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데, 16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독일에서 인쇄되었다.  

이로 인하여 악곡의 보급과 보존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는 음악 문화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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