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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 #289

강재진 |2008.07.01 17:04
조회 193 |추천 1


 

 

- 너는 이 시간에 깨 있을 줄 알았지.

친구야. 호떡 먹어라.

 

자정도 넘은 시간 요란하게 초인종을 누른 그녀가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면서 내 눈앞에 서 있습니다.

외출복으로 입기엔 너무 못생긴 티셔츠와 정말 이상하게 생긴 그 인도풍 바지를 입고서,

호떡 봉투가 남긴 반투명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면서,

 

좀 놀란 나는 그녀에게 묻습니다.

 

- 너 그렇게 하고 여기까지 왔어?

 

그녀는 대답대신 원룸 계단에 턱하니 자리를 잡고 앉더니,

그새 기름이 배어버린 호떡 봉투를 쭉 찢습니다.

그리곤 나 줄려고 사왔다던 호떡을 입에 냉큼 넣더니,

그 꿀, 아니 설탕물이 묻은 입술을 혀로 낼름거리면서 하는 말.

 

- 맛있어. 너도 먹어봐. 식음 맛없어.

 

너무 태연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나는 서로 들러붙은 호떡들처럼 입술이 떡 붙어 버립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그사람과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니 눈이 그렇게 부은 건 울어서 그런거냐?

니가 자꾸 훌쩍 거리는 건 감기냐? 눈물이냐?

아무 것도 물을 생각도 못하고 그녀를 지켜보기만 할 뿐.

 

그녀는 그 차가운 계단에 앉아 호떡 두 개다 꿀떡 해치우더니,

다시 화난 사람처럼 빨딱 일어나서 남은 호떡을 내 가슴팍에 안깁니다.

 

- 이젠 진짜 끝. 나 이제 자유의 몸이야.

나 지금부터 남자를 100명 만날까? 아님, 남자없이 사는 법에 대해서 논물 써볼까?

일단 100명 만나보고 그런 다음에 논문 쓰는게 좋겠지?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그녀.

붙잡을 사이도 없이 집으로 타박타박 돌아갑니다.

질끈 동여맨 까만 고무줄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겨울바람에 몇 가닥 날려가며 그녀가 저만큼 걸어갑니다.

 

눈 두덩이가 팅팅 부은 그녀.

호떡 기름으로 입술이 번들거리는 그녀.

이상한 인도풍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

고등학교 때 신던 흑백슬리퍼를 털털 끌고 가는 그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막 버림받은 그녀.

내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그녀.

 

그래, 니 말만큼만.

아니, 니가 말한 것 반만큼만 편해져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나면 그땐 나랑 사랑하자.

이번엔 다른 사람말고 꼭 나랑 사랑하자.

 

난 호떡 봉지를 가슴에 품고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봅니다.

 

이제는 말해도 괜찮을까요?

내 사랑은 언제나 깨어있었다고,

나는 언제나 그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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