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교통카드를 찍는 기계 바로 뒤에있는
창가자리는 내 차지다
어느 순간부턴가,
여기 앉아야만 마음이 편안하니까
라디오에선, 목소리가 썩 괜찮은 한 진행자가
다음곡을 소개한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진행자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가 말한 제목이 귀를 잡아당긴다
이미 노래에는 관심이 없이, 제목이 던져준 파장에
깊숙히 매몰된다.
사랑의 색깔이라?
사랑이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완벽하게 박탈당한채 살아왔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란 단어에 핑크빛을 덮어 놓았으니까
이유 없는 심통일까?
도저히 '핑크색' 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사랑이란 큰 단어를 담아내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한참을 고민하지만 결국 시원한 해답은 없다
한 가지 색깔로 결정짓기엔,
단어가 가진 모습이 너무 다양하고
그 파장이 너무 크다
'사랑마다 다르다?'
이젠 지긋지긋한 '다양성의 인정'
논술 시간에나 배울 법한 이 식상한 결론
너무 많은 문제들의 결론이 항상
'다양성의 인정'으로 흐른다는걸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이 허무함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어제 맞춘 커플티를 입고 동물원에 있는 커플에게
사랑의 색깔은 지금의 날씨만큼이나 맑은 '하늘색'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한 탓에 이젠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중견커플들에게 사랑의 색깔은 진한 '커피색'
수 많은 사랑의 상처에 멍이 든 어느 여인이 느끼는
사랑의 색깔은 아마도 '보라빛'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어두침침한 공원 벤치에서
서로의 입술을 맞대고있는 커플들의 사랑은 정열적인 '빨강'
이렇게나 다양한 사랑의 모습, 그 색깔!
기분좋게 상상하다 보니 어느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양성의 인정' 이라는 결론에 살짝 빈정이 상했다가
금방 행복한 나는 역시나 단순한 사람
이렇게나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지게 해준 라디오의 노래는
어느새 멈추고, 내릴 곳이 되었다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어느새 널 만나기로 한,
우리가 즐겨 찾는 공원 앞의 작은 정류장이다
기다렸다는 듯 손 흔드는 너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행복한 표정으로 널 보는 나
두 손 꼭잡은 우린 오늘,
어떤 색깔의 사랑을 하게 될까?
Colors Of Love, Pro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