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1942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李秉喆)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뒤, 1966년 9월 귀국해 삼성그룹 경영 일선에 참여했다.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되었다. 회장이 된 뒤 이듬해에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하였다. 1993년 6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하여,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러한 '신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다.
1981년 2월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82년 1월 한국청소년연맹 이사, 1987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3년 3월 KOC(Korea Olympic Committee: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1996년 7월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같은해 9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1998년 4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같은해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1999년 4월 전경련 금융제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 1993년 문화부장관 감사패, 한국경영학회 제정 경영자대상, 1994년 한국무역학회 무역인대상, 1996년 한국능률협회 선정 ‘최고의 경영자상’, 200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1999년 매일경제신문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낸 기업인 2위’에 뽑혔다. 주요저서에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 등이 있다.
이건희 그는 백과 사전에도 나오는 사나이다.
대한민국 누구라도 아는 그남자 이건희
대한민국을 이토록 발전 시켜준 그남자 이건희
그는 가슴이 뜨겁던 남자이다. 단지 그 사람은 최고이길 바랬을뿐이다. 그가 한 최대에 실수는 법도 피해갈수있을줄알았다는거엿다.
그남자는 사실 법도 피해갈수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나라가 그를 배신했다.
" 삼성이 너무 커 져서 나라에게 정부 고위관리자에게 로비를 덜한다 "란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난다.
그로 인하여 삼성이 이토록 망가졌다. 그룹에 이미지1%를 올릴려면 몇조가 든다고한다. 삼성은 이미지도 나빠졋고 최고의 경영자를 잃었다. 털어서 먼지하나 안나오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은 돈이 없어서 이건희회장이 아들 이재용전무한테 불법으로 돈과경영권을 넘겼다고 해도 상관이없다. 불법으로 돈을 빼돌렸다고 해도... 그는 20년동안 삼성이 세계에서 1위 제품이 11개나 되게만들었다. 대한민국은 그야 말로 삼성 제국이였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이건희가 이명박정부에 흑막을 다른데로 분산시켰을까? 더큰걸 감출려고 삼성을 망가트린걸까?
정부를 도저히 믿을수가없다. 대한민국을.....
이건희 그의 눈물이 참 내 눈물을 적시게한다.
최고이길 바랬던 사나이에 눈물이 ... 눈물이 없을꺼같던 남자에 눈물이 최고로 동경했던 사나이에 눈물이 그의 어깨가 좁아보인다.
그는 아직도 할게 많다. 두려움을 떨쳐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