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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개고기를 옹호하는 사람은 사이코 패쓰일 가능성이 크다.

이진아 |2008.07.12 12:44
조회 794 |추천 34


개식용선동질하는것들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 높다


http://blog.naver.com/nfo/100043945224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개는 사람과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고 사람의 정서를 파악하여 그에 동조하려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개들이 지닌 언어능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단순히 단어 하나에 대한 음파의 기억이 아닌, 문장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감정을 표현한다. 언어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이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훈련을 시킨 개나 그렇지 않은 개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개를 오래 길러본 사람들은 잘 안다.

개와 첫 정서적 교감을 경험했을 때 그 놀라움은 굉장한 것이다. 그 경험은 개에 대한 상식이나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게 되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개를 바라보게 만든다. 개를 길러본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개고기 먹는 것을 만류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경험 때문이며, 다른 동물과 다르게 개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다른 동물에게서 느낄 수 없는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굉장한 경험을 개를 통해 얻었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먹기도 하지만 기르기도 한다"라고. 그렇다면 그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란, 감정이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타인과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다른 정의로는 양심이 없는 사람, 죄의식이 없는 사람, 이상 성격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정장입은 뱀, 악의 종자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개를 기르면서 개와 정서적 교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개는 사람보다 감정표현이 더 풍부하기 때문에 웬만큼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개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플 때나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온몸을 흔들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고, 때론 오줌까지 지리며 사람을 반기는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그는 분명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 기쁨과 같은 감정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개를 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개를 먹는 행동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도 아니다. 개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 중 대다수가 개에 관한 이야기이고, 방송매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개와 인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접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정상 성격자라면, 간접 경험으로도 개와 인간의 교감에 대해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 없이 개다리를 뜯어먹는 사람, 성욕을 채우기 위해 개의 성기를 뜯어먹는 사람, 입맛을 위해 개혀를 뜯어먹는 사람, 그들이 뜯어먹는 개들의 살점은 사람에게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흔들던 온몸의 일부였다는 것을 그들, 사이코패스들은 알지 못한다.


개고기 찬반토론, 생명윤리토론 사이트에 대한 소회 개 이야기

http://blog.naver.com/nfo/100044030068


2001년 초, 네이버와 신비로에 각각 "개와 인간의 아름다운 이야기", "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수개월 후 폐쇄.

2001년 12월 5일, 달랑 게시판 하나 걸어놓고 "개고기 찬반토론"이라는 제목으로 토론 사이트를 열었다. 2년 7개월 간의 토론을 통해 게시물이 8천개를 육박했었고, 비록 많은 수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격렬하게 토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4년 7월 19일, 사이트명을 "생명윤리토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변경했다. 이름이 바뀐만큼 토론주제도 낙태, 사형제도, 안락사, 동물실험, 배아줄기세포, 체벌, 유전자조작 등으로 확대했지만 주된 토론주제는 개고기였고, 다음으로 사형제도에 관한 토론이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황우석 교수가 계속해서 이슈를 만들어 가던 때였기에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토론도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6년 7월 25일, "생명윤리토론" 사이트를 폐쇄했다. 폐쇄 당시 밝히지 않았던 폐쇄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두가지다.

첫째,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서 생명윤리 운운하는 것은 사치이자 기만이며 어처구니 없는 삼류코메디라는 생각 때문이다. 생명윤리토론 사이트를 만들 당시부터 포기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던 문제였다.

둘째, 사이코패스에 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형제도에 관해 토론하기 위해서 사이트를 찾은 어느분의 게시물을 보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고, 관련된 책을 두번 정도 정독했는데 그 책을 통해서 개를 먹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코패스는 현대의학이나 심리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교화를 시도하면 할 수록 상태가 더욱 나빠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난 5년 간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개고기를 먹거나 찬성하는 사람들은 설득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해소된 것이다.

그동안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노력을 덜 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했었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을 뿐더러 그들은 오히려 더 야비해지고 더 거칠어졌다.

계속해서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것은 시간적, 육체적, 물질적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이트를 폐쇄한 것이다.

2007년 11월 3일, 블로그에 개에 관한 자료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올려진 게시물은 그동안 토론 과정 중에 게시되었던 게시물 중 일부분이다.

블로그에 개에 관한 자료를 게시하는 목적은 개고기 찬성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개를 먹지 않으며 사이코패스도 아닌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개를 먹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그들, 개를 먹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개선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와 쾌락에만 관심이 있을 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일말의 인간적인 사고도 불가능하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뇌에 문제가 있는 뇌기능장애자이며,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괴물같은 존재들이다.

왜 유독 개고기만 가지고 그러는가

http://blog.naver.com/nfo/100044062276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가축'의 정의를 '잡아먹는 존재'로만 인식한다. 가축에는 관상, 애완, 스포츠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인간에 의해 관리되는 동물을 총칭한다. 개, 고양이, 말은 애완반려동물의 대표격인 동물이다. 우리 사회에도 800만 명의 애견인이 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 동물들이 처참히 도살되고 먹힐 때 사회내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민족 내부에 반목을 가져오며, 더 나아가면
세계적으로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개고기가 만연될수록 사회갈등도 첨예화하는 특수성을 가진 것이 개고기 문제이다.

소, 돼지에게도 눈물을 흘려달라고 한다면, 그런 처지로 개를 내몰면서 소, 돼지의 고통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이 더 큰 모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가축에게까지 진정한 연민을 갖는 동물보호운동가들이 해야 할 주장인 것이다.

개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말을 자주 하는 것은, 아직 쓸어내지 못한 개에 대한 연민을 희석 또는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 돼지를 먹고 있지만 자신을 어미처럼 믿고 따르고 헌신봉사하는 동물까지 먹을 용기를 갖지는 못했다. 개고기의 맛을 몰라서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개의 품성과 미덕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편타당성 위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한다. 개 먹는 사람이 아무리 개를 애완반려동물로 생각하지 않아도 개는 이 동물의 특성상 여전히 애완반려동물이며, 돼지를 아무리 애완으로 키운다고 해도 돼지는 그 사람에게만 애완이다.

물론 그 사람은 돼지를 먹지 않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환경보전을 위해서 가축사육을 줄여나가야 한다. 개까지 거기에 포함시켜 대량사육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소, 돼지야 식용합법가축이니 정육점에 불지를 수도 없고 농민을 상대로 시위할 수도 없다. 각자 가축의 처지를 이해하고 채식으로 줄여나갈 일이다.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에 대해 말이 많았다. 브리짓 바르도가 15년 전에 한 말을 가지고 잠을 깨워 여러 차례 불러댔다.

이것은 개고기 산업화 세력과 언론방송이 '개고기 국수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브리짓 바르도는 사실상 국제동물보호사회에서 주도적인 인물이 아니다. 브리짓 바르도를 언론방송이 이용하게 된 데는 남녀노소 공히 알고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개고기반대운동은 미국의 '파멜라 앤더슨'이나 '크리스티나 아귈레라'가 더 열심히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을 아저씨들이 알 리 없다. 브리짓 바르도는 개고기뿐 아니라 '푸와그라(억지로 살찌운 거위의 간)'도 반대한다. 그는 프랑스인으로서 개고기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보호운동가로서 그렇게 한 것이다.

사실상 어느 나라도 공식적으로 개고기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외국인이 반대하는 것은 그 나라 사람으로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자연인으로서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 누렁이들이 너무 불쌍하고 측은해서 그리 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중국, 베트남 빼놓고 개를 안 먹거늘 동서양의 이분법으로 이 문제를 다루거나, 동양인 대 백인의 문제로 가져가는 것도 개고기 문제를 교묘히 민족주의 문제로 가져가려는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달 싱가폴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개고기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백인이 아니며 우리보다 훨씬 더 백인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사람들이다.

남의 나라 문화에 간섭 말라. 그러면 우리는 인류정신의 진보를 포기해야 한다. 스페인에서는 투우반대운동을, 미국에서는 그레이하운드경주 반대운동을, 프랑스에서는 푸와그라와 말고기 반대운동을, 일본에서는 고래고기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유독 개고기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그런 잔학성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는 느리지만 이런 잔학성을 해소하는 쪽으로 진보를 거듭해 왔다. 최근 러시아는 투계를 금지했다. 문화니까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누렁이를 먹는 문화보다는 살리는 문화가 더 양질의 문화 아닌가. 저들이 그러니 우리도 그들과 잔학성 경쟁을 벌여야 하는가. 다른 나라의 동물문제는 그 나라의 사람들이 훨씬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또한 스페인의 투우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잔인하고 눈물 나는 데 침묵하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분노하는 것이다.

개고기 문제가 세계인들에게 주는 가장 큰 우려는 이것이다. 사람들은 중성적인 사물보다는 부정적인 사물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더 잘 기억한다.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자라나면서 한국에 개고기와 개도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느날 알게 된다. 우리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개고기를 먹고 들어오셨을 때의 충격이나, 개도살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느낀 충격은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더할 것이다. 이것이 잠재의식 속에 남게 되고 한국에 대해 총체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부채춤을 멋지게 추고 월드컵 4강에 올라도 상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개고기를 금지한다면 엄청난 교역량 증가와 국가 이미지 향상을 이룩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계속 설문조사를 해오고 있다. 응답자의 7할 이상이 한국인을 연상할 때 '개고기'를 떠올렸다.

우리 나라를 생각할 때 '한국전쟁'이 아니라 '개고기'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개 안 먹는 사람, 어린이와 여성들, 심지어 해외동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개 먹는 사람들이 국익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민족자긍심인가. 개를 먹거나 개고기를 옹호하는 사람이 특별히 민족을 더 사랑한다는 등식이 성립하는가. 개 먹는 사람이 '민족'이란 단어를 더 많이 입에 올리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개고기 민족주의'는 바로 자기미화 내지 자기기만인 것이다.

개고기가 과연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인가. 우리 민족의 원류는 청동기 기마인들이다. 고구려 무용총의 '사냥도'와 터키 샤탈 휘이크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의리가 유난히 강한 기마인들은 사냥과 경비를 돕는 개들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같은 기마민족인 몽골인들과 일본인들도 먹지 않는다.

개고기를 먹는 습속은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인 상나라 때부터 시작되었고 화교가 이동한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곳곳에 이런 습속이 전파되었다. 우리 나라에 가축개가 들어온 것은 기원전 4세기경 연나라의 랴오뚱 점령으로 한족들이 대거 만주로 유입된 시기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때 자연히 개먹는 습속도 함께 들어왔으나 개고기를 상금기로 여기는 기마문화와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고려 때까지는 일반화되지 못 했을 것이다. 물론 먹을 개도 많지 않았다.

부족연맹체인 부여 때에는 '구가'라는 족속이 있었으나 이것은 일종의 캐릭터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그들이 유이민 부족인지, 예맥족인지 확실하지도 않다. 신라 때에는 삽살개를 중히 여겼다.

위만조선의 멸망 후 남서쪽으로 남하한 농경부족 사이에서 그런 습속은 이어졌을 것이다. 백제권에 해당되는 충남, 전북지역은 '개고기의 메카'라고 할 정도로 개고기 소비율이 높고, 이 지역엔 중국계 성씨의 집성촌들이 대거 몰려 있다. 사상체질은 음식섭취역사와 관계가 깊은데, 유일하게 개고기의 체질이 잘 맞는다고 하는 '소음인'의 용모를 가진 사람이 이 지역에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개고기와 관련된 민속자료 또한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나온다.

오늘날 민속자료로서 개고기 민족문화론을 밑받침하는 민속학자, 교수들이 중국계 성씨의 학자들인데 빈약한 상고사 사료로 개고기와 우리 역사를 꿰맞출 때 자칫 역사왜곡도 일어날 수 있으며 민족정신에 심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들은 흔히 중국의 자료와 우리 민속을 억지로 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들이미는 개고기 조리에 관한 자료는 새로울 것이 없다. 개고기도 고기인데 굽고, 삶고, 찌고, 째고 하는 것이지 개고기가 우리 문화의 일부라는 확고한 증명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맛있고 귀한 음식을 어째서 제사상에 올리지 못 하는지 그 설명부터 해야 한다.

민속음식, 민족음식이면 의당 조상님께 먼저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조선시대에 민란, 기근이 잦아지고 개고기가 일부지역에서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고기는 여전히 제사상에 못 오르고 개고기 먹은 사람은 금줄을 통과하지 못 할 정도로 개고기는 상금기로 여겼다.

'계절의 절식'이라는 '동국세시기'의 표현도 진나라 때 쓰여진 '여씨춘추'의 내용을 참고했을 것이다. 실제로 궁중에서도 이런 중국의 복날에 개가죽을 담장에 널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진나라의 풍습을 따라한 것이고 음기가 강한 겨울에 널어야 맞는 것이다. 잘못 응용한 것이다.

어쨌거나 과거에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현대 한국인이 개 먹어야 하는 당위성은 제공하지 못한다. 개고기에 대한 양자간의 의견이 팽팽할 때는 인류의 보편타당성과 공동선에 기초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을 것이다.

과거의 전통적인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전통사상을 참고하여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가는 것이 진보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자세이다. 그런 면에서 누렁이 잡아먹기보다는 누렁이를 우리 아이들과 다시 뛰놀게 하는 것이 생명을 사랑하는 민족정신에 접근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고기를 아예 합법화해서 먹자고 한다. 세계 최초로 개를 법으로 지정해서 먹는 나라가 될 때 이에 따르는 모든 불이익은 먹지 않는 사람들까지 지게 된다.

인류의 가장 친한 벗으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로서 고이 뿌리내려온 동물을 식용가축으로 만드는 행위를 한국인의 손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태국이나 대만처럼 개고기를 금지하는 것이 국민화합과 사회발전에 부합하는 길이다.

중국도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개고기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개고기 종주국도 아닌데 몇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 세계인들은 정서적 거부에서 행동적인 거부로 그것에 대응할 것이다. 개고기 때문에 왜 이런 혼란과 불이익을 자초하는가.

우리의 미래세대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그런 풍토와 분위기 속에 세계인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협력하도록 도와주는 순화된 사회로의 발전이 더 필요한 것이다. 개고기 합법화는 산업자본주의의 속성상 각종 가공식품과 즉석식품의 개발로 이어져 초대형 개공장이 온 강토에 건설되고 그 이익은 소수의 개고기유통업자에게 돌아간다.

정육점에 걸린 개의 시체를 여러분은 보고 싶으신가. 여러분이 약간의 반발심과 불쾌감을 낮춰 온국민이 환영할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 옳지 그 반대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정말 미래를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다.

냉정하고 신중한 판단과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 먹는 사람들은 소, 돼지 먹는 사람과 다르게 개에 대한 혐오증이 심하게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마도 10만년 이상 우리의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개와의 유전자적 친밀감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려는 과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개귀신'이란 것이 적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개귀신'이 많다. '개귀신'은 개도살을 목격하거나 자신이 그 도살에서 개를 구해내지 못 했을 때 정신적으로 강한 죄책감, 심지어 정신이상증세까지 보이는 그런 현상을 말한다.

반발심으로 개장국을 먹거나 개에 대한 미움을 강화하거나, 심지어 개를 더 잔인하게 도살하려는 사람들은 변형된 '개귀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인정이 넘치고 약한 존재의 고통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품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개고기는 보신문화의 시작이고 야생동물의 밀렵과 자연생태계 파괴의 속성까지도 연결되고 있다. 개고기가 만연되면 이에 반비례해서 동물학대나 생명경시의 풍조도 만연되는 것은 필연이다.

하루 속히 우리 사회도 사회적 약자와 생물학적 약자를 모두 껴앉고 가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누렁이 살리기에 동참하고 동물보호운동가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현재 실외에서 사육되는 개의 8할 이상이 심장사상충과 피부병에 감염되어 있다. 여러분이 동물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면 자신들의 건강을 위해 속히 개고기를 끊으시기를 바란다. 식용으로 길러지고 팔려온 개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환자이다.

이런 동물을 음식으로 먹는 일이 결코 정신과 신체에 이로울 리 없다. 이것은 상식의 과학이다. 지금 철장 속에서 한 여름에 부들부들 떠는 누렁이들의 눈을 보라. 이것이 어디 먹을 음식인가. 어른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계속 좋아하도록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할 의무가 있다. 여러분이 약간의 반발심과 불쾌감만 누그러뜨리면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원칙대로 법을 집행해서 더 이상 개고기가 만연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 장차 개고기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하며,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언행이 사회에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냉정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복날에는 온가족이 함께 시원한 냉콩국수나 된장보리밥을 드시기를 권한다. 건강에도 좋고 진정한 '민속전통음식'이 될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직접 누렁이들을 구하지 않아도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누렁이들을 살리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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