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치즈를 쫓는 사막위의 소녀 [Mr.Fish]
우리는 거대하고 굴곡진 사막을 걷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광활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향해 목자처럼 걸어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흐름선상에 서있는 시기
그 강렬하게 느껴지는 흐름때문에 마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를수 있는 강력한 시점을 맛보게도 되는 흐름의 시기
[그 흐름은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강력한 시점이다]
그러던 중 벌써 자기들이 꿈꾸던 메타포가 형상화되어져
자기의 오아시스를 만나서 행복감에 젖어있는 이들도 있고
조그마한 오아시스를 버리고 조금 더 커다란 오아시스를 찾아
방랑하는 이들도 있고 아니면 광대한 사막의 위엄과 그 끊임없는
공허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직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사막을 떠도는 유령같은 기분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점은 [오아시스는 선택의 대상이다]이란 것
사막위를 걷다가 거대한 치즈를 만난다 해도 좋다
아니면 아무런 그냥 [걷는 다는 것] 자체여도 좋다
자신만의 메타포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누구의 기준이된 오아시스가 아닌 자신만의 오아시스
사회적 기준을 좇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양적질적 훌륭한 오아시스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면 자기만의 미니멀리즘을 갖춘 오아시스
상상력이 바닥을 드러낸 시기
G.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에서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그런 책에서
누구의 그림이었는지는 가물하나...
(미술계의 오브제처럼 철학계에선 예술과 결합하는 것이 강력한 트렌드가 되었다.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필두였을까.)
사막위에 놓여진 거대한 치즈 그림을 보고서
멍해졌던 시기가 있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단순하게 쌩뚱맞음 만은 아니었지만
자의적인 새로운 해석을 거쳐
그 치즈는 나에게로 와서 거대한 메타포로 변했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힘내라는 것]
어디에서든 보이는 곳에서든 아닌 곳에서든
[서로를 응원하는 고리가 있다는 것]
[그걸 어떤 형태로든 느껴 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오아시스를 발견한 이들도 계속 새로운 물을 찾으라는 것, 보수공사든 뭐가되었든]
[그리고 나는 거대치즈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
지금 찾아낸 형태는 마음에 드는 오아시스는 아니라는 것]
[난 가장 영리한 형태로 오아시스를 파내서
결국 내가 원하는 치즈를 모조리 먹어버릴 것이라는 것]
[무한대의 침대 시트위를 걷다가 잠이 드는 다무라 카프카 군처럼
노력하며 터프하게 일어나라는 것]
ex-libris
[잠에서 깨면 넌 세계의 일부가 되어있을것이다]
라는 것.
같이 작업중인 소녀 연작시리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