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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면시절 경제 개발계획을 계획하고 박통시절 그 계획을 수행한 경제학자로 부터

김창규 |2008.07.22 03:17
조회 1,187 |추천 2

625전쟁이 끝나고 이승만 정부는 경제에 대해서 별로 기여한 바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얼마나 경제기반이 없었냐면

학생들이 쓰는 연필을 만드는 공장이 없어서

거의 전량을 일본으로 부터 밀수를 해다가 쓰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419가 나서

장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짧은 1년동안

장기적인 국가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웁니다.

아주 치밀하고 방대한 계획이었는데 그렇게 큰 틀을 짠 이유는

일본으로부터의 엄청난 배상금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당시 일본은 장면정부에게 10억 불을 배상하겠다고 얘기 했었습니다.

그러나 장면 정부는 튕기고 있었죠.

국민적인 반일 감정상 시기 상조일 수도 있고

배짱을 부리면 배상금이 좀더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급할게 없었죠.

그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국민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들어선 합법적인 정부라는 정치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개발 계획은 국내에 있는 몇몇 전문가가 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 유학하고 있던 유학생부터 석학까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인재를 총 동원하여 만든 것이고 향후 25년간의 체계적인 개발계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516이 나면서 장면 정부는 축출을 당했지요.

박정희정부는 장면 정부의 개발 계획을 그대로 들고 나왔습니다.

국민들은 박정희 정부가 만든 것인 줄 알지만 사실은 장면시절에 만든

계획이지요. 경부고속도로 계획과 포철도 물론 장면 정부의 계획에 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재정이 문제였습니다.

516이 군사쿠데타이다보니 우방의 경제 원조도 줄어들었고

국민들에게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만 하는 불안한 박정권은

장면 정부의 국가 개발 계획을 서둘러 공표하고

그 재정 조달을 위해 성급하게 한일 회담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정부는 외국에서 찬밥신세이다보니

일본은 배상금을 3억불로 대폭 깎아버린 것이죠.

그러나 박정권은 이런 불리한 조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 박정권과 그 공신들이 빼돌린 수많은 돈에 대해서는

무성한 이야기가 있으나 생략하겠고

아무튼 경제를 살리기 위한 거대한 계획이

정당하지 못한 정권의 손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경제의 잘 못 끼워진 첫단추였습니다.

베트남전까지 참전하면서 박정권이 70년대 중반까지 들여온 외국돈이

10억불이었던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기까지 합니다.

장면 정부라면 당연히 받을 수 있었던 돈을

베트남에 피를 뿌리며,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면서까지

들여온 돈이 그 정도라니...

그런데 여기에 더 문제는 3억 달러를 제외한

7억달러는 모두 차관이라는 것입니다.

갚아야 할 돈이라는 것이지요.

62년에 들여온 20년 짜리 차관의 상환이 전두환 정권때에 돌아옵니다.

그 외에도 차관들이 거의 전두환 집권 초기에 몰립니다.

그러나 아직 그 돈을 갚을 만한 능력이 대한민국에게는 없었습니다.

결국 전통은 미국에게 잘보이려고 자주국방과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그 댓가로 미국이 제공하는 15년짜리 차관을 이용해 이전의 차관을

상환합니다. 다시 말해 카드깡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대출을 더 받습니다. 까트깡이 아니라 국가깡을 한 것이지요.

80년대 초 황금같은 경제 성장은

20년간 국민들의 상상도 못할 노력이 있었지만 거기에 더불어

갑자기 외국의 자본이 우리 나라에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숨가뿐 고도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 것이 언젠가는 터지고 말 화약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노태우 정권때도 경제를 졸라매기는 커녕 올림픽이다 뭐다 하면서

외형적인 경제 부풀리기에 목매달았죠.

정권이 지지 기반이 약할 수록 경제적인 지표에 민감합니다.

물가라든지 국민 총생산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막 향상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요.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성장보다는 거품을 조장하게 되는데

우리나라가 그랬습니다.

그 후에 김영삼 정부때에 상환이 돌아오는데 여기서 불을 끄지 못해

우리나라는 결국 IMF를 맞게 됩니다.

그러므로 IMF의 불씨는 따지고 보면 직접적으로는 전두환정부의 실책이며

그것은 결국 박통의 실책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을 이루었다고 하나

그것은 그가 아니었어도 어떤 식으로도 달성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사실 박통 때문에 애당초의 개획보다도 못하게 추진된 사항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경제 환란의 주범으로 몰리는 김영삼은 경제에 대해서 무능한 것이 죄이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까드깡으로 재미본 전두환에게 당한 셈이고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욕먹는 노무현은 더 억울한 셈이지요.

IMF는 탈출했다고 하지만 그 여파는 아마도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첫눈이 온고나서 석달이 지나야 봄이 올까말까 하듯이 말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순간적인 단기 처방을 하지 않고 욕을 먹더라도 장기적인

포석을 둔다면

아마도 다음 대통령의 임기말쯤 되면 경제가 활짝 피지 않을까요?

그 때 그 대통령은 한 것 없이 덕 좀 보겠지요.

미국도 80년대 미국의 큰 빌딩들이 죄다 일본에게 팔리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레이건이 경제투자를 한 것,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까지

경제를 일으키려고 한 것이

결국은 클린턴 시기에 효과를 나타내어 클린턴은 경제를 살린 대통령이라는

국민의 평가를 받으며 숱한 여성문제에도 불구하고 재선을 할 수 있었지요.

경제는 투자한다고 바로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5년에서 10년은 갑니다.

불행하게도 제 생각에 앞으로 5년은 지나야 좋은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장면정부가 일본의 정쟁배상금을 가지고

경제 개발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외국차관을 끌어쓰는 카드깡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경제에 대해서 잘 모르고

국가의 대국민 선전선동에 잘 쇄뇌당한 사람들은

박통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킨줄 압니다만

우리나라를 일으킨 사람은 구로공단의 여공들이며

중동으로 돈 벌러간 사막의 건설노동자들이며

그 밖의 모든 국민들입니다.

국가와 재벌은 오히려 그러한 국민들의 성과를 가로채기 바빴죠.

언제가 국가의 비밀문서가 풀리면 자세한 내막이 공개될 것입니다.


-추가-
얘기를 하다보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문제로 촛점이 모여지는군요.
박통의 긍정적인 면은 경제발전이었습니다.
박통이 경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신생독립국가들은 자고 일어나면 구데타가 일어나는
무법 천지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없이 군사구데타가 일어났지요.
다른 나라 군사 독재자는 정권을 잡으면 그나마 있는 국부를 전부 빼돌려
자기 뱃속만 차리는데
박정희는 일부를 빼돌리기는 했어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제3 세계 어느 나라 독재자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열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가 열정적이기는 했지만
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킴과 동시에 그는 어느 한계를 스스로 자초한 것이죠.
그것이 일본의 배상금 10억불을 3억불로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입니다.
충분한 자금으로 여유있게 꾸려나갈 수 있는 상황을 무너뜨리고
힘겹게 갈 수 밖에 없는 길로 들어서게 한 장본인입니다.
적은 돈으로 경제를 개발하다보니
돈이 딱 떨어지는 힘든 시기를 여러번 겪게 됩니다.
그 때마다 박정권은 어렵게 어렵게 그 난관을 뚫고 왔습니다.
그런 힘든 역경을 돌파하는 박통을 보고
많은 국민은 감동을 받은 것이지요.
그것이 지금까지 그의 부정적인 많은 것들을 상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가시밭길은 결국 그가 자초한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애꿎은 국민까지 어려운 길을 간 것입니다.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경제 발전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것을 반박해보겠습니다.
박정희는 다른 신생독립국의 독재자와는 달리
개인을 국가와 분리된 개인으로 보지 않고
개인을 국가속에서의 개인으로 봤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부를 전부 개인재산화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만의 장점일까요?
그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은 모두 국가와 개인 중에서 국가를 더 가치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500년 문명국의 영향도 있었고, 유교의 영향도 있었고
일제시대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교육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누가 되었던 간에 국가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 경제에 대한 열정은 박정희만의 장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경을 뚫고 나가는 추진력만은 박정희만의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누히 얘기하듯이 그것은 그가 자초한 일입니다.
정통성 있는 정부였다면 역경을 맞을 일이 없거나 적었겠지요.
역경도 사실 그가 미국과의 관계를 너무 독선적으로 처리하는 것 때문에
생긴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이 박통을 길들이려고 했던 것이지요.
또 불안정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순간순간 경제보다 정권안보를 우선 했던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쓸데 없는 국력 낭비였습니다.
박통은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정권의 안정을 위해 경제에 쓰는 것만큼이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박통 경제의 비효율성입니다.
2차 대전 이후로 80년대 초까지 세계 경제는 줄곧 성장해왔기 때문에
게다가 일본은 늘어나는 공업생산량을 뒷받침해줄 하청 국가로 한국이 필요했고
미국은 냉전의 전략전 요충지인 한국에 특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박통의 자충수만 없었어도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가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면서까지 달성했던 경제 성장도
국가에 충성하고 개인을 희생하는 국민들의 노력 때문입니다만
그 경제성장이 박정희를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열심히 한것은 사실이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보니
하는 모든 일이 힘들고, 순간순간 불굴의 의지를 내어야만 하는 위태위태한
상황을 자주 연출하였지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가 인기가 있으니 세상 참 아이러니하군요....

지금 동남아는 무서운 기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
블랙홀과도 같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오랜 역사를 같이 하면서도
독립된 국가와 문명권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국가적인 정체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한다는 유교적 충효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두가지는 국가 주도의 급속한 경제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다행히 3-4십년전 한국은 이 두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신생독립국들이
강대국들이 그냥 지도에다가 선을 그어서 만든, 그래서 서로 다른 부족과 부족, 민족과 민족이 말도 통하지 않는 어색한 동거를 하는 나라였던데 반해
한국은 국가라는 정체성이 분명했고 잘 살아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국이 2차 대전후의 신생독립국중에서 유일하게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가 될 수 있었던 핵심요소입니다.

베트남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국가 지도자가 잘나서일까요?
아닙니다. 위의 두가지 요소를 갖췄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국제적인 경제 흐름도 중국과 배후의 동남아로 쏠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세계경제가 일본과 그 배후인 한국으로 쏠리듯이요.
그런데 30년 후에 베트남 사람들이 현재 베트남의 지도자를 회상하면서
그 분이 없었다면 베트남은 여전히 못살았을 거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비웃을 것 같군요.
외국의 학자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박정희라는 요소를 한국 경제 성장의 긍정적인 요소로 보는지를요.
선진국의 학자들은 박정희를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봅니다.
반대로 박정희를 높이 보는 외국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그들도 불안정한
독재 권력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독재 권력자들에게 경제 발전은 면죄부가 될 수있다는 선례를
박정희가 최초로 남긴 것이지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 사대부들이
선조를 세종대왕과 비교하면서
서슴없이 선조대왕이라고 부르며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역사교육에서
선조가 무능하고 바보같이 묘사되기 전까지는
선조는 세종대왕에 종종 비견되는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임란과 같은 국가의 비상사태에서
거의 국가를 창업하다시피 햇다면서...
제2의 창업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임진왜란의 극복이 선조의 덕이었습니까?
이순신, 권율같은 걸출한 신하도 있었고
의병장도 있었고, 이름없는 백성도 있었지요.
사대부들이 선조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단지 선조가 국란극복을 할 때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과연 결과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합당한 이유라고 보십니까?

선조와 박정희가 많이 오버랩이 되는군요.

그리고
경제 발전을 지도자의 업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좀 억지라고 봅니다.
군대에서 전투나 전쟁을 하면
승리나 패배 모두 지휘자의 몫입니다.
그것은 최하 말단의 이등병까지 명령체계로 일사분란하게 행동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삼성이 잘 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이건희 회장이 잘나서입니까?
그분이 상당한 혜안이 있다고는 합니다만
직원들의 노력이 이회장의 기여도보다는 훨씬 많다고 봅니다.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는 군대의 지휘관과 사병의 관계보다는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지휘자의 능력이 바로 군대 전체의 능력이 되지만
국가의 능력이 대통령의 능력과 바로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한국 경제의 발전에서 박통의 기여도가 극히 미미한데 비해
평가는 절대적인 이유는
국민들이 여전히 군사문화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수직상향적인 사고 방식속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아직도....

 

 

 

 

출처 : 장면시절 경제 개발계획을 계획하고 박통시절 그 계획을 수행한 경제학자로 부터 + 지식인 vicasso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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