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주성치를 아느냐?
세상에는 두 종류의 관객이 있다. 주성치의 영화를 본 관객과 주성치의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 주성치의 독특한 영화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관객이라면 쉽게 다시 발을 빼지 못할 것이다. 유치찬란해서 오히려 마음을 무장해제하게 하고, 허무맹랑해서 더없이 즐겁고, 너덜너덜 남루한 곳에서 진심이 싹트는 그의 영화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수와 같은 매력이 있다. 매력 덩어리 희극지왕 주성치 형님께서 로 돌아온다. 다재다능한 주성치의 희한한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주·성·치·를·말·하·다
주성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면 극단적인 두 가지 표정을 볼 수 있다. ‘뭐 이런…’ 하는 낭패다 싶은 표정과 ‘아, 당신도!’ 하는 살가운 표정이다. 성치 형을 성치 형이라 부르지 못하던 당신이 모처럼 동지를 만났다 해도 당신과 그가 같은 주성치를 알고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지난 20년 동안 주성치라는 브랜드 아래서 사뭇 다른 영화와 캐릭터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자, 당신이 영접한 주성치는 어떤 주성치인가?
주성치는 악동이다. 동안(童딁)에다 (적어도 홍콩에서는) 미남이라 여겨지는 얼굴로 기분 좋게 웃어가며 거침없는 장난을 이어간다. 게다가 나쁜 짓을 당하는 대상이 주성치를 철석같이 믿는 친구들이라는 점에서 악동의 깊이를 더한다. (93)처럼 자신을 쫓는 무리들에게 친구를 내미는 정도는 일도 아니고, (97)처럼 신무기를 시험한답시고 친구 입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것도 뭐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주성치는 왕따다. 다른 영화나 상식에 견줘 극과 극의 사이가 한참을 더 떨어져 있는 것이 주성치의 세계지만 악동 주성치가 착한 왕따로 등장할 때, 추락하는 것에는 바닥이 없어서 한없이 떨어진다. 에서 주성치는 거지에게 옷을 벗어주고 스트리킹으로 잡혀가는 모습으로 등장하더니 영화 내내 놀림당하고 얻어맞고, 다시 얻어맞고 놀림당하는 일을 되풀이한다. 에서는 아예 개밥 먹기를 강요당하기에 이르는데, 개밥이 맛있다며 해맑게 웃는 주성치야말로 왕따의 극한을 넘어 해탈에 이른다.
가해자 주성치와 피해자 주성치는 서로 다른 영화에 출몰했지만 화해의 단서는 늘 존재해 왔다. 가해자 주성치는 방법은 악랄하나 심성이 사악하지는 않았고, 피해자 주성치는 끝없이 당하지만 늘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악당으로 시작해서 왕따로 추락했다가 고수로 귀환하는 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고수 주성치로 화합한다. 악동 또는 왕따 주성치가 고수로 꽃피는 노선은 이후 주성치 영화의 기본을 이루며 와 의 뼈대를 이룬다.
아버지와 아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인가? 동안이라는 수식어를 여전히 달고 다니듯 주성치는 어린아이로 존재해 왔다. 악동이든 왕따든 각성하지 않은 주성치는 어른의 모습을 한 어린아이다. 처럼 홀어머니라도 등장하는 경우조차 드문 경우고 대개 주성치는 부모가 분명하지 않은 존재다.
처럼 장인 장모를 비롯해 처갓집 식구들이 대거 등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야박한 설정으로 일관했다.아들 주성치는 늘 아버지를 갈망한다. 단지 007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첩보원에 발탁되는 처럼 아버지는 주성치의 삶에 큰 동기를 부여한다.
주성치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부들 역시 아버지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사부들은 악동이거나 왕따인 주성치를 각성시켜 고수로 이끄는데, 변하는 것은 주성치 자신이지만 그래도 그는 아버지를 그린다. 하지만 영화가 거듭될수록 사부들의 비중은 줄어들고 원래 타고난 잠재력을 가졌으나 단지 각성하지 못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주성치 스스로 아버지 부재에 대한 콤플렉스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 나간다는 뜻이리라
(에서는 사부의 지도를 받았던 주성치가 에서는 원래 있던 재능에 소림사의 도움을 얹는 식이고 에 이르면 원래 타고난 내공을 바탕으로 독학으로 무공을 터득하게 된다).
아버지의 빈자리에 목말라 하면서도 아버지 자리를 쉬이 내주지 않는 주성치에게 예외가 있다면 바로 오맹달이다. 에서 주성치가 개밥을 먹을 때 함께 개밥을 먹으며 온몸을 던지는 눈물겨운 오맹달의 모습은 주성치 영화에서 정말 특별하게 등장하는 아버지의 자리다. 악동 주성치와 왕따 주성치가 통합하고, 전면적인 사부가 아니라 도우미 역할의 사부가 등장하는 에서 하필이면 오맹달이 온몸을 던지는 악행으로 주성치의 각성을 돕는 것도 어쩌면 아들의 성장을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을까?
바람둥이와 순정남
현실에서 주성치는 대략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다. 주성치는 기자들에게 원성을 들을 정도로 사생활 노출을 꺼리고 정보를 차단하고 있지만 수많은 여배우들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는다. 주성치의 염문은 영화 안과 밖을 오가며 이뤄져서 염문의 상대와 영화를 찍기도 하고 영화를 찍다가 염문이 생기기도 한다. 에서 과거 주성치와 각각 염문을 일으켰던 여배우 두 명이 한 장면에서 카메오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면 바람둥이 주성치의 포스는 범인들이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영화 밖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주성치가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매력은 역시 얼굴과 성격 모두에서 드러나는 어린아이의 속성이다. 에서 주성치는 부지런히 들이대는데 그 모습을 대하는 여자의 입장은 한마디로 ‘귀엽다’는 식이며, 우리 보통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부럽다’는 얘기다. 마구 까불지만 어딘가 감싸주고 싶은 남자,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다다를 수 없는 포지션이다. 을 비롯하여 유부남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에서는 아내에게 의지하고 기대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 역시 바람둥이 주성치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여준다.
영화 속 주성치는 처럼 타고난 플레이보이에서 처럼 극한의 순정남을 오갔지만 최근작으로 올수록 순정남으로 통합되고 있다. 을 기점으로 주성치 영화가 ‘고수의 귀환’을 주 노선으로 잡았다면 이와 발맞춰 주성치의 연애관도 여자에게 들이대지 않고 한 여자를 생각하는 순정남으로 정리되었다. 에서 연인이 재회하더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장면은 수많은 여성을 울렸던(?) 주성치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이제 순정을 택했다는 것을 친절하게 그림으로 선언한 것이리라.
비굴과 가치
주성치 영화는 익스트림 무비다. 극한을 모르고 치닫거나 내려앉는다. 주성치의 익스트림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사이를 확 벌려놓는다. 에서 개밥을 먹으며 웃음을 터뜨릴 때 주성치를 싫어하는 사람은 얼굴을 찡그리겠지만, 주성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곧 다가올 그날(?)을 그리며 함께 개밥을 털어 넣는다. 비굴은 주성치 영화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패턴이며 고수의 귀환으로 노선을 정리한 뒤에는 바로 그 귀환을 찬란히 빛내는 장치로서 더 심한 비굴을 선보여 왔다. 에 등장하는 소림 고수들의 비굴함은 일일이 설명하는 것 자체가 비굴할 정도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도시락을 사먹던 의 주윤발처럼 원래 비굴은 홍콩 영화가 즐겨 던지는 밑밥이다. 미국 인디 영화라면 비굴은 어디까지나 비굴로 존재하면서 현실의 남루함을 비춰주거나 벗어 던져봐야 판타지로 해결되지만 홍콩 영화에서 비굴은 총이나 주먹이거나 장풍으로 부활해서 현실을 날려버린다. 우리 모두가 현실에서 느끼는 비굴함을 부러 극단으로 몰고 간 뒤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홍콩 영화 세계에선 가능한 변화들로 비굴을 날려버리던 홍콩 영화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가장 성공적으로 보전하고 발전시킨 주인공이 바로 주성치란 얘기다.
원래 주성치는 실컷 웃겨놓고는 뜬금없는 교훈을 설파하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확실히 가치 지향적 영화인이 되었다. 에서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요리하는 모두가 식신’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고, 에선 끝까지 비겁한 수를 부리는 악당에게 ‘배우고 싶다면 가르쳐 주겠다’는 아량으로 진심 어린 승복을 이끌어 낸다. 에서 한없이 당하고 또 당하던 사형들이 비로소 고수로 돌아오지만 사실 적당히(?) 괴롭혔다면 사형들에게 혼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으려고도 했고 그냥 웃어넘기려고도 했지만 나 때문이 아니라 그놈들 때문에 욱하고 변하는 것은 헐크와 같지만 그 와중에 정신을 잃지도 않고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이 주성치의 경지다.
배우와 작가
언젠가 김홍준 감독은 저서를 통해 스테디캠을 둘러메고 현장을 돌진하던 성룡의 모습을 보면서 버스터 키튼을 떠올린다고 적었다. 쉽게 빨리 찍어내고 스타 의존도가 높은 홍콩 영화 환경은 웰메이드라는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모자란 영화들을 양산하기도 했지만 온몸을 고스란히 쓰는 배우가 제작, 주연, 감독을 모두 맡아 영화를 통제하는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경우를 바로 지금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성룡 영화에 이어 주성치 영화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성치 영화는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를 넘어서서 주성치가 만드는 영화로 나아갔고, 이제 주성치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감독으로 영화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주성치는 왕정이나 이력지 같은 개성 있는 감독들과 다작하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흡수했다. 을 통해 지난날의 자신을 정리하고 와 로 ‘주성치가 만드는 주성치 영화’를 선보이고 있는 주성치는 이제 배우라는 포장지에 싸인 작가이며 흥행 성적으로 본다면 기타노 다케시보다 강력하다.
성룡을 버스터 키튼에 비했다면 주성치를 찰리 채플린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약자의 정서를 바탕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점에서는 채플린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몸 개그의 강도를 보았을 때는 키튼과 채플린의 중간쯤에 서 있다.
장강7호와 주성치
에서 시작돼 와 로 고수의 귀환 노선을 본 궤도에 올린 주성치 영화는 (이하 )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주성치 영화에 외계인이 나온 것은 하나도 신기하지 않다. 이미 에서 ‘천외비선’을 보았던 우리가 아닌가? 에는 주성치의 아들이 등장한다. 이제 더 이상 주성치는 아버지든, 사부든 또는 어떤 여성들이든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들을 보호할 책임을 선언한 어엿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들을 동반한 주성치! 쇼킹하지 않나?
오래 전부터 주성치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존경한다고 말해왔다. 를 와 견줘본다면 (외계인이 나온다는 얘기는 제발 빼고!) 소년의 마음을 채워주는 영화라 하겠는데 에선 현실에 없는 아버지를 외계에서 온 친구가 채워주고, 에서는 현실의 아버지가 어떻게든 채워주려 고군분투한다. 물론 는 청년 감독 스필버그의 작품이고 는 배우라는 포장지를 벗기면 어느새 감독 주성치가 꽉 차 있는 영화 경력 20년차 주성치의 영화라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엽기 행각을 벌이는 주성치를 찾는다면 이미 그는 과거에 있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의 영화라는 각인의 존재가 작가의 존재라면 배우 주성치를 데리고 영화를 찍는 감독 주성치는 이미 그 문턱을 넘어섰다. 잘생긴 놈이고 잘 웃기는 놈인 데다가 잘 만드는 놈이기까지 한 주성치. 벌써부터 ‘포스트 장강7호’의 주성치 영화가 기대된다. 장익준(영화 칼럼니스트)
희극지왕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주성치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항상 몇 가지 기대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그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하는 친구들이 이번에는 어떤 캐릭터로 나올까 하는 것. 주성치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무장된 ‘주성치 패밀리’ 덕분에 그의 영화가 더 재미있다.
초강력 오른팔 오맹달
그를 빼놓고 주성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다. 90년대 초반부터 까지,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에는 웬만하면 다 오맹달이 조연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성치의 밑도 끝도 없는 코미디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받아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있으랴. 크게 한 방 두들겨 맞은 후 괜찮다고 말하면서 입에 거품 무는 연기를(도성), 도시락 지키는 ‘찌질한’ 아저씨에서 “매일 사는 게 영화 같으니까. 대본은 없지만 NG는 안 돼”라는 멋진 대사를 날리는 스파이 연기를(희극지왕), 교실 바깥에서 과일 번갈아가며 던지는 게 최고 임무인 양 열심히 하는 연기를(도학위룡) 그보다 잘할 사람은 없었을 거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성치와의 콤비 연기가 너무 그립다.
완벽 파트너 이력지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그 ‘주성치 유머’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이력지 감독일 것이다. 자신의 첫 연출작인 부터 주성치와 함께 일한 그는 부터 공동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같은 주옥같은 주성치의 영화들을 통해 너무나 ‘독특해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의 엔딩 크레딧에서 오맹달, 장백지, 막문위에게 극중 주성치가 했던 연기를 ‘괜히’ 시키며 활짝 웃던 모습이 생생하다.
만능 조연 전계문
에서 시장 사람들 중 나이에 맞지 않게 녹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는 주성치 옆에서 괜히 건들거렸던 그 사람, 에서 주성치에게서 연기를 배우는 백수 3인방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 사람. 그가 바로 전계문이다. 1994년 을 찍을 때 주성치는 전계문을 알게 됐다. 이후 1996년 주성치가 세운 회사(성휘해외유한공사)에 전계문이 들어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배우 전계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 할 수 있겠다.
주성치 사단의 막내 임자총
곡덕소를 잇는, 주성치 사단의 또 다른 재능꾼이다. 방송국 작가를 하다 주성치를 알게 된 그는 주성치의 회사에 작가로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뚱뚱한 외모에서 코믹한 요소를 발견한 주성치는 에서 그를 막내 역으로 캐스팅했다. 이후 작품인 과 에서도 그를 비중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한 주성치 감독님. 그러나 임자총은 연기를 하면서, 그 사이 장편 영화 연출도 경험했고, 자신의 본업인 글쓰기에도 여전히 매진하고 있다. 전계문과 함께 에도 출연.
든든한 대사형 황일비
황일비 역시 오맹달 못지않게 주성치와의 공연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그다지 큰 캐릭터를 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이 너무나 익숙한 건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빈약한 분위기의 외모 때문일 터. 등에 출연한 그의 최고 배역은 역시 의 대사형. 힘없는 소시민인 대사형 역을 안쓰럽게 표현해 낸 그는 생애 처음으로 금상장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막강 재주꾼 곡덕소
주성치의 주변은 굉장한 재능꾼들로 득실거린다. 곡덕소와 주성치의 첫 만남은 때였다. 의 시나리오 이후 연기, 제작, 각본, 연출까지 못하는 것 없이 마음껏 재능을 쏟아 부은 곡덕소. 의 시나리오를 쓰고, 에서는 주성치와 함께 대본도 쓰고 연출도 함께했다.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것은 역시 . 자신의 연출작 때문에 바빠 의 카메오 정도로만 등장한 후 에서 자취를 감췄던 그는 에서 시나리오로 그와 재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