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구약성경중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사건에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의 피로 구속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예화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유월절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하였듯이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 땅 고센이란 곳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그 수가 많아져서 애굽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을 학대하던 애굽인들에게도 마침내 운명의 날이 닥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재앙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면케 하기 위해 흠없고 1년 된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 온 땅의 장자가 죽기로 된 날 밤, 여호와께서는 문에 양의 피가 발린 집의 장자는 죽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출12:1-28 참조).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해의 첫 달이기도 했습니다 (출12:2 참조).
사람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기 전에 산 삶은 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전의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엡2:1-3 참조).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 죄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던 삶은 하나님 앞에서는 벌받을 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즉, 거듭난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 지은 죄는 모두 용서를 받은 것이므로 하등 염려할 것이 못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지워진다는 뜻입니다.
유월절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수단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고안해내신 계획입니다.
그 어떤 이도 이 계획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구속이란 하나님께서 즉흥적으로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그런 식으로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내신 것도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미래를 내다보시고 계획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구세주로서 창세 전부터 예수를 준비하셨습니다(벧전1:18-20 참조).
유월절은 두 가지 성격의 절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희생을 드리는 일이고 둘째는 음식을 먹는 일입니다.
희생제물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것은 그분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맞으신 채찍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희생제물은 반드시 어린 양이어야 합니다(출12:5 참조).
어린 양은 순종과 정결을 상징하는데 예수께서도 이러한 특성을 갖추셨습니다. "(그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사53:7)
양은 1년 되고 흠 없는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만약 티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그 양은 희생제물로 합당치 않은 것이 됩니다. 예수께서도 흠이 없고 죄도 없으신 온전하신 분이셨습니다(고후5:21, 요일3:5 참조).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성장하여 사람의 아들로 장성하실 때까지 온전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말씀하신 것도 이를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빌라도도 예수에 대해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19:4,6)고 했고
가룟 유다도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27:4)고 고백했습니다.
유월절 양은 반드시 잡아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구속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린 양은 집 안으로 들여져 귀여움을 듬뿍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천사(출11:4,23에 보면 '여호와' 가 맞다 - 참고)가 볼 수 있도록 문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으셨다면 성소 휘장의 갈라짐도, 피흘림도, 무덤의 열림도, 간구하시는 대제사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것은 그분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맞으신 채찍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벧전2:24 참조) 태어나신 말구유에서도 아니고 침례받으신 요단 강, 시험받으신 광야, 피땀 흘려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 그 어디에서도 아닌 바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짐을 온전히 담당하셨습니다.
유월절에는 양을 잡아죽였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잡고 난 뒤 양의 피와 살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양의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했고 양의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만약 양의 피를 보기만 하고 지시대로 뿌리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장자도 결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슬초 묶음을 피에 적셔 문설주와 인방에 뿌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우슬초는 애굽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던 식물이라 타국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슬초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어떤 이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 참고).
믿음은 인간사에서 매우 보편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없으면 상업적인, 사회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관계는 물론 그외 어떤 관계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피는 문지방이나 집안 바닥에 뿌려지도록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밟고 지나다니는 곳에 뿌리기에는 이 피가 너무나 값지고 성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믿지 않는 이들이나, 종교에 있어 선생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 아들을 밟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깁니다(히10:29 참조).
유월절 절차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속하는 데 있어서 제사장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희생제는 제사장이 드리는 것이 아니고 각 권속의 가장이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피는 표징입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12:13)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인격이나, 선행 도덕심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린 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를 문에 발라놓았으면 그들은 완전히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피를 바른 집 안에 있던 장자가 머리털 하나라도 다쳤다면 여호와의 말씀은 헛된 것이고 양의 피는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문에 발린 피를 반드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피를 봄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에 뿌려져 있는 그리스도의 피로써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들을 믿고 있다면 우리가 그 피를 보느냐 보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피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피를 문에 뿌린 뒤 이스라엘 자손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침이 될 때까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출12:22 참조) 비록 문에 피를 발라놓긴 했지만 죽음의 천사(출11:4,23에 보면 '여호와' 가 맞다 - 참고)가 지나갈 때까지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집 밖으로 절대 나갈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속 방법을 경히 여기고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되어진 일을 보고도 웃음이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조소를 보내지만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설 때는 결코 웃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자>(크리스찬 월드) - 라킨 목사 성경 강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