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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에 대한 죄책감에 불안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승호 |2008.08.03 19:39
조회 77 |추천 0

 

 

[ 토마토와 빨간 사과] 라는 책 중에서

 

 

수년전 한 집회를 마치고 난 후였다. 선한 인상을 가진 여자가 연단으로 걸어 나왔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하여, 그에게로 몸을 돌렸는데 그의 눈은 그렁그렁하게 젖어 있었다. 우리는 둘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을 찾았다. 그는 예민해져 있었고 또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내내 슬프게 울었다.

 

결혼 전, 이 여자와 약혼자(지금의 남편)는 보수적인 큰 교회의 청년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커플이었고,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그들을 매우 부러워했고 또 존경했다. 결혼하기 수개월 전이었다. 그들은 육체관계를 가졌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이 위선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여자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 이 사실을 교회 앞에 털어 놓을 때 일어날 파장은 당신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여자는 말했다. "우리가 설교는 이렇게 하고, 살기는 저렇게 살았다는 걸 털어놓어야 했어요. 교인들은 철저하게 보수적이었고, 아직까지 그런 추문에 휘말려 본 적이 없는 교회였지요. 우리 두 사람은 교인들이 우리 상황을 알면 기절초풍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도 그런 망신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가장 고민스러운 결정을 내렸어요. 나는 낙태수술을 받았습니다.

 

내 결혼식은 생애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나를 보며 기쁜 웃음을 지었지요. 그들은 내가 순결한 신부라고 생각한 거예요. 신랑신부 행진을 위해 하객들 사이를 걸어갈 때,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아세요? '너는 살인자야.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지 않아서 좋아? 네가 저지른 일이 들통 나서 망신 당하지 않은 게 자랑스러워? 하지만 나는 네가 누군 줄 알아. 하나님도 널 아시지.  너는 무죄한 아기를 죽였어.' 이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그 여자는 너무 슬프게 운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 이 사람을 안아 줘야겠구나 ' 하는 생각이 내 마음에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만약 그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면, 대단히 파괴적일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자를 도울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이 여자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 내가 그렇게 무서운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죄없는 생명을 죽일 수 있다니요!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지요? 저는 남편을 사랑해요. 건강하고 예쁜 아이도 넷이나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써 있는 성경도 알아요.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나는 이 죄를 수천 번도 더 고백했어요. 하지만 수치심과 슬픔이 나를 떠나지 않아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생각은, ' 어떻게 내가 죄 없는 생명을 죽일 수 있었지? ' 하는 것이에요."

 

나는 호흡을 고르고, 내 생각을 말했다. " 뭘 그렇게 두려워하시는 지 이해가 잘 안가네요. 자매님의 죄 때문에 사람이 죽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 텐데요. 낙태 일은 벌써 두 번째 살인 아닌가요?" 그 여자는 완전히 어리둥절해진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자매님" 나는 말을 이었다. "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가 십자가 처형을 집행한 자들인 양 요란을 떨지요. 그래요, 종교적이든 종교와는 담을 쌓았든,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낙태 경험자든 낙태 반대자든,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까지 존재한 인간 가운데 유일하게 죄가 없는 한 인간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 모든 죄, 과거,현재, 미래의 죄를 위해 죽었습니다. 예수가 갚지 못할 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자매로 하여금 아기를 죽이게 한 그 교만의 죄가, 바로 그리스도를 죽인 죄랍니다. 2천 년 전 십자가 처형 때 그 자리에 있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그를 그 자리로 내몰았어요. 루터는 우리 주머니에 항상 못이 있다고 말했어요. 전에도 사람을 죽여봤다면, 왜 또 다시 못 죽이겠어요? "   

 

여자는 울음을 멈췄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 여자는 이런 말을 했다. " 당신 말이 백번 옳으네요. 나는 태아를  죽인 것보다 수천 배 나쁜 짓을 했어요.. 내 죄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를 져야 했어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내가 거기 없었다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여전히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어요. 베키, 나는 내가 상상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을 한 걸 고백하려고 당신에게 왔어요.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나쁜 짓을 한 걸  고백하고 있군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십자가가, 내가 저지른 상상도 못할 그 나쁜 짓보다 더 나쁜 죄를 저지른 인간임을 보여준다면, 십자가는 동시에 내 악이 제거되고 용서됐다는 것도 보여주지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죄가 용서됐다면, 다른 것들은 오죽하겠어요? 내가 낙태한 것도 용서받지 못할 리 없지요."

 

나는 이 여자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조용히 말할 때 그 눈빛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녀는 슬픔이 아니라, 해방감과 감사에서 뿜어 나오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한 여인이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정말 문자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이 여자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아기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깊은 고통, 아니 무엇보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기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두 부분에서 기만했다. 그녀는 왜 자신이 한 일에 실망했을까? 그것은, 나처럼 멋있고 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서 나왔다.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변화가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두번 째 기만은 악 그자체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악은 탐지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제 막 자라나는 악은 무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여자 (고결한 이미지)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는 마음때문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죽였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악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우리를 놀래킨다. 선택의 순간에는 언제나 아주 작은 것인 듯,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선택에 따르는 엄청난 결과 때문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십자가가 왜 이 여인에게 그러한 평안을 선사했는지 그 이유가 여기있다.  그녀는 십자가의 역설을 봤다. "용서받았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도록 우리의 악을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각별한 사랑"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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