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란 존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 곁에 있었다. 10년을 넘어 이제 20년을 향해 달려가
는 그 시기 동안에. 서태지는 정상에 군림했다.
그는 처음부터 정상이었고, 그 후로는 내려온 적이 없었다. 그의 음악을 내가 평가하기엔, 내 발
바닥이 너무 좁고, 그는 또 너무 멀고 다른 세계에 있는 까닭에, 나는 감상으로만 끄적일 수 있
을 뿐이나.
그의 음악은 일단 모든 것과 다르다. 그의 리듬감, 음색. 1집부터 들어본 사람은 알겠다만 뭔가
익숙한, 그만의 길과 색채가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유일하게 크게 벗어난 것은 솔로 2집 울트라맨이야 때였다. 말그대로 괴수같은 놈이었다만, 잘
보면 어딘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비늘이 느껴진다. 교실 이데아나, 필승이나, 그 외 여러가
지에서 느꼈던. 무언가.
무언가 기저에서 움틀거리고 있는 파괴적인, 너무나 거대한, 마그마같은 것. 그것이 결국 표출
되어 나온 것이 '울트라맨이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괴수같은 녀석을, 사람들은 사랑했다. 아주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하드코어'라는 강력한 하드락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특히 여성중에선- 거의 본 적이 없다. 세상에나. 그런데, 서태지의 여러 공연에서 머리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은, 반 이상이 여성으로 보이는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콘을 이야기 할 때 고개를 젓고, 슬립낫을 이야기 할 때 눈살을 찌푸리던 그런 사람들 조차, 서태지의 음반이 히트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는 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서태지를 싫어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서태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긴하지만. 그러나. 나는 아주 일반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가. 대한민국에서 '하드코어'라는 장르의 음반이 100만장이나 팔릴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거다.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 아닌가?
100만장이란 숫자는 어떤 호기심이나, 오래전 부터 이어온 팬들의 열기로만 설명될 수 없다. 팬들의 열기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블러가 음악 색깔을 바꾸어 'song 2' 나 'park life' 같은 노래를 부를 때, 기존 팬들이 떨어져나
갔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하게 들리곤 한다. 메탈리카는 얼터네이티브로 전향했다가 수많은 열
성 팬들의 지지를 잃어버렸다. 가깝게는 내 아는 형또한 메탈리카를 변절자라고 씹었다. 그 전
까지는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서태지는 내가 알기로 하드코어란 장르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과거 시나위한 경력이
있다고는 하나,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이고 그들은 '일단은'
댄스그룹이 아닌가. 더구나 가장 최근이었던 솔로 1집의 음악도 하드코어와는... 얼터네이티브
와 헤비메탈과의 사이보다도 훨씬 더 먼 간극이 존재했다.
그런데 팬들은 내가 알기로 '거의 모두가' 그의 파격적 변신을 긍정했다. 그리고 스스로 반팔
티셔츠를 입고 헤드뱅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과연 놀랍지 않은가.
서태지가 우리나라에서 문화적 소수의 입장에 서 있는 장르를 보급하려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
었다면, 그건 100퍼센트 이상 실현된 셈이다. 이쯤되면 이것은 거의 의도대로 구현되는 '효
과'라고 보아도 좋겠다. 명명하길. 바로 '서태지 효과'의 발현이다.
이쯤되면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실제로 줄곧 그것이 궁금했었다. 그러다가 우
연히 1박 2일을 보게 되었다. 은지원이 표딱지 안 뗀 수영복 바지를 입고 다니더군. 피식 웃으며
'저거 서태지가 했던 짓인데...' 하다가, 문득 굳어버렸다.
서태지는 파격이란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등장부터 그는 뭔가 달랐다. 음악도 아주 달랐
다. 패션도 달랐다. 표딱지를 그대로 달고다니는 패션은 그 파격의 일부일 뿐이었다.
또한 변신과도 잘어울린다. 기본적으로 록과 미디음악, 즉 댄스음악을 결합시키는 방식(이것도
파격이라는 것이지만) 에서 컴백홈에서는 거의 힙합으로 변신해버린다. 그러다가 이젠 완전히
필승이란 이름을 달고 본격적인 록으로 솟아오른다. 이 때에 그는 놀랍게도 기본 적 색채를 잃
지 않으면서 갱스터 삘나는 힙합을 타고 넘었고, 팬들은 그의 변신에 놀라지 않았다.
파격과 변신이 익숙해진 팬들이 또다른 변화를 긍정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는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여러 노래들은 설명의 필
요없이 유명하기 그지 없잖은가? 십대들을 대변한 교실이데아- 는 너무나도 많은 십대들의 심
금을 울려주었다. 저항이란 보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컴백홈을 보면 느낄 수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그가 모든 젊음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결국 이러한 파격- 변신- 저항- 의 이미지들을 조합하며 서태지는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모든 사람들의 선도자의 자리에 오른다. 오랜 기간동안 서태지와 아이들로 몇집의 앨범을 출발시키며 그 때마다 1-2년 전도 아닌.... 앨범이 발매된 '바로 그 시기'의 젊음의 우상이 되었다.
그것은 파격과 변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모든 것들이 저항과 보호의 형식으로 당시의 젊음들에게 아로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내 생각은 이렇다. 메탈리카가 얼터네이티브를 하면, 얼터네이티브를 아주 잘 아는 메탈리카 팬들도 '죽어라' 하고 비난을 한다. (오히려 더 한다, 배신이라고)
그리고 서태지가 하드코어를 하면 하드코어를 잘 모르는 서태지 팬들도 일단 그의 음악을 긍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하드코어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서태지가 한다고 하면 괜찮겠지.
(누구도 그를 배신자라 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태지는 애초부터 한 음악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댄스음악이라 했던 것들도 말이 댄스였지! 팬들에게, 그는 댄스 가수도 록 보컬도, 힙합 랩퍼도 아닌 서태지 일 뿐이며- 그의 음악은 힙합도 댄스도 록도 아닌 서태지 음악 일 뿐이다)
결국 팬들이 영 모르는 것일지라도, 서태지가 행한다 하였을 때, 그것은 괜찮은 일- 해볼만한 일- 들어볼 만한 무언가- 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가 표딱지 안 뗀 모자를 쓰고 나왔을 때 유행이 되고, 에스 자 적힌 비니를 쓰고 나와도, 촌스러운 스웨터를 입고 나와도 유행이 되는 것처럼.
이미지 흐려질까봐 걱정하는 여러 아이돌들은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
그래서 서태지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초강성 하드코어 음반을 내면서... 별 걱정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아직 성립되지 않은 록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태지 효과'인 것이다.
브라키오사우르스같은 녀석이 알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동안 아주 적합한 기후조건하에서 성장하면-
결국 몸길이 100미터 가까운 괴수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서태지는 괴수다.
내가 봤을 때 서태지는 아주 영리하게 자신의 서식환경을 조절해왔다. 모든 마켓팅 부서는 그
를 입사시킬만한 가치가 있다. 난 원래 그걸 잘 몰랐는데, 이번 컴백스페셜을 보고 느꼈다.
그의 앨범이 다시 대중친화적인 사운드로 변하자, 그는 서슴없이 '인간 서태지'를 등장시켰다. 어설프고, 불완전한. 일주일동안 씻지도 않고, 음악 외에는 바보같다고 말하는. 인간 서태지.
거기서 나온 공연에서도 그는 박수를 치며 귀여운 율동을 선보인다.
춤을 잘 모르는 듯이 펼치는 신승훈스러운 율동.
유아기 소년같은, 리듬하고 엇나가는 몸 흔들기. 마치 못맞추는 것처럼 보이는...
울트라맨이야 때의 강렬한 각기춤은 어디로 갔는가. 서태지 라이브 제로에서 보여줬던 신기에
가까운 리듬감과 센스가 배어있는 무대매너와 몸놀림은?
완전히 딴 사람이 와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이 서태지구나. .
컨셉에 따라 완전히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안다. 그는 괴도루팡을 해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내다.
오색풍운을 몰고다니며, 천변만화하여 누구도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거대한 괴수. 그 비늘의 찬란함에 눈물지으며. 오늘도 나는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서태지. 과연, 서태지의 괴수대백과사전 의 페이지에는 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