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 잘 알려진 그의 영화를 본 뒤 이와이 슈운지에 대해 내가 가진 인상은 '영화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세련된 영상미를 다룰 줄 알고, 관객의 감수성에게 다가갈 줄 아는, 게다가 언제나 '소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 좋은 영화감독이긴 하지만 그다지 무겁지는 않은, 부담 없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 반대로 때로는 너무 '가볍다'라는 느낌이 드는 영화감독.
은 정 반대다. 무겁고 음침하다. 우울하고 몽환적이다. 관객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능력은 빛을 발하지만 가슴설레는 소녀들의 이야기 같은 것은 없다.
일단 참 희한한 영화다. 이 영화의 장르가 뭘까? 일단 미래 사회, 그것도 가상 공간이 나오니 SF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휴먼 드라마라고 해야할까? 전투 씬이 등장하고 암살단도 등장하니 액션이라고 해야 하나? 이와이 슈운지는 가상의 도시 옌 타운(Yen Twon)을 만들어놓고는 이곳에 모이는 불법 이주노동자들, 한마디로 난민들의 힘겨운 생활사와 비극적인 이야기를 표현한다. 엔화가 전 세계 기축통화로 성장할만큼 일본 경제가 성장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낯선 타인들의 이야기. 독특하다.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외된 가상의 인간들의 슬픈 현실을 다룬 이야기.
어쨌거나 이런 알레고리는 경제적 고도 성장의 이면에 자리잡은 슬픈 사회적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사실 은 일본보다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더 호소력이 있었을 것 같다.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은 없지만, 어쨌거나 한국은 최악의 이주노동자 인권을 자랑하는 나라이고, 영화속에 나오는 인간 사냥,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 모두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 말이다.
이 방식은 사실 리얼리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번 쯤 참고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일종의 가상 공간 속에서 오히려 현실의 부조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또 은유적으로 다루면서 그 폭로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영화적인 예술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영화는 오히려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존재할 수 없으며 현실이란 늘 그 현실을 주조해내는 작가 혹은 예술가의 '관점'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닐 바에야,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리얼리즘 예술은 절반의 성공 이상을 거두기는 힘들다. 알레고리의 방식이 아닌 리얼리즘의 방식을 택할 바에야, 이처럼 비판적 메세지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작가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표현방식이 영화의 주제와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역시나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아게하'라는 소녀이고, 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옌타운의 이야기니까. 특히 아게하가 문신을 새기는 장면에서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소녀의 몸에 대한 애착 같은 게 느껴졌다. 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발레신도 그렇고, 이와이 슈운지는 소녀의 하얀 몸에 대한 시선을 포착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위기의 순간에 다 같이 부르는 '마이 웨이' 역시 이와이 슈운지의 음악에 대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가 바주카포로 량카이 일당을 쓸어버린다든지, 암살단이 지하철 승객을 암살하는 등 굉장히 어색한 장면은 전혀 이와이스럽지 않았다. 그의 영화는 항상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짜임새가 있는데, 몇 차례 등장하는 일부 장면들은 오히려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든다.
재미있고 따뜻하고 신선한 영화다. 과연 이와이 슈운지가 지속적으로 이러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