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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아름다움

김선미 |2008.08.19 06:24
조회 33 |추천 0

Learning to fall

 

 

 

 

 


 

필립 시먼스 _

'루게릭 병' 에 걸려,

5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되는데

당시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

'불완전한 삶의 축복'을 깨닫게 되었다.

 

 

 

 

실로 훌륭한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일도 없다.

어리석은 자는 항상 일을 하고 있지만

하지 않고 놓아둔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 도덕경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가장 효과적으로 상실에 대처할 수 있다.

낙법을 배우면, 우리가 평소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ㅡ

우리의 성취, 계획,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자신 ㅡ 을

놓아 버리기만 하면

결국 가장 완전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을 놓아 버리면

좀더 충실하게 우리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그 주제를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다루고 있고, 낙법에 대해

저마다 다른 가르침을 제공해 준다.

 

 

 

 

낙법 배우기 _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떨어짐(falling)을 경험했으며,

앞으로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젊은 꿈의 상실, 체력의 저하, 희망의 좌절,

가깝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림,

그리고 언젠가는 닥쳐올 종말.

우리는 떨어짐을 선택할 수도 없고,

그게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도 알 수 없다.

 

사실 나는

떨어짐으로써 우리의 본질적인 인간성을 표현할

기회를 갖는다고 말하고 싶다.

 

이따금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문젯거리' 로 볼 수 없는

강력하거나 당혹스럽거나 즐겁거나 무서운 경험에 맞닥뜨려,

벼랑가로 내몰리게 된다.

그럴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뒷 걸음질쳐서 다시금 쓰라린 고통이나 혼란 속으로 빠져들거나,

아니면 신비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비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신비는 우리가 신비에 직면하기를,

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완전히 신비에 내맡기기를 요구할 뿐이다.

그게 전부이고, 오직 그것뿐이다.

우리는 해결책을 내버려야만 비로소 신비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내버리기야말로 낙법의 첫번째 가르침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내 이야기는 문제의 실례가 아니라

낙법의 신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떨어짐(falling)을 다시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해 보라.

우리는 체면을 구기고(falling on one's face),

한낱 농담에 사기를 당하고(fall for a joke),

누군가에게 홀딱 반하고(fall for someone),

사랑에 빠진다(fall in love).

떨어짐에는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떨어지는가?

떨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내버리는가?

우리는 에고ego를 내버리고,

애써 쌓아올린 정체성과 평판과 소중한 자아를 내버린다.

야망을 내버리고,

탐욕을 내버리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이성을 내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떨어지는가?

열정 속으로,

공포 속으로,

터무니없는 기쁨 속으로 떨어진다.

겸손 속으로,

연민 속으로,

공허 속으로,

우리 자신보다 훨씬 큰 힘과의 조화 속으로,

우리처럼 떨어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 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성스러운 존재와 직면하게 된다.

신성, 신비, 더 훌륭하고 더 거룩한 우리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신의 은총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은총과 '함께' 은총을 '향해서' 도 추락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자.

우리가 고통과 나약함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즐거움과 강력함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우리가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면,

삶을 향해서도 떨어지자.

 

 

 

 

 

 

아침에 일어나기 _

 

루게릭 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를 유별나게 만들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삶은 어차피 죽음을 앞둔 상태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우리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존재다.

나는 진정코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모두 육신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실패와 상실과 질병에 직면하고,

마지막으로 육신의 종말에 직면하면 이렇게 자문한다.

왜 내가 오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지?

지금 내가 직면해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달라질 건 없잖아?

최근에 나는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

받아들임(acceptance)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아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체념이나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자연계의 질서에서 우리가 놓여 있는 처지를

완전하고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다를 떨 시간이 있거든 책을 읽어라.

책을 읽을 시간이 있거든 산과 사막과 바다로 걸어가라.

걸을 시간이 있거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라.

춤출 시간이 있거든 조용히 앉아 있어라.

행복하고 운 좋은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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