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20년전 어땠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역시 강준만 교수님의 '한국현대사산책'이 좋은 자료였습니다.
자료를 그대로 부분적으로 옮겨놓습니다.
교수님께는 죄송합니다.
1.
"국운 융성의 위대한 민족사를 창조해 가는 오늘의 우리들이 각계각층의 힘과 정성을 한데 모아 막바지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면 서울올림픽은 조국을 선진대열에 진입시키는 결정적인 전기를 이룰 것이 틀림없으며 그것은 우리 민족이 2000년대 세계사의 주역으로 도약하기 위한 튼튼한 발판이 될 것이다."
(고흥길, , 중앙일보 1987년 10월 16일, 24면에서 재인용.)
2.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장의 반미열풍은 놀라운 것이었다. 미국 선수단의 무질서함, 미국의 육상 영웅 칼 루이스의 오만불손함, 미국 NBC 방송의 편파보도, 올림픽 직전에 발생한 미군 병사의 택시 운전사 폭행사건, 미국 수영선수단의 절도 혐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 국민적인 반미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조선일보사, 조선일보 칠십년사 제3권(1990), 1946년)
3.
신문들의 증면 경쟁은 전체 지면에서 차지하는 광고지면의 비율을 증가시켰고 매출액 대비 광고 의존도를 심화시켰다. 광고지면 비율이 가장 높은 조선일보의 경우 83년 38.4%에서 89년 5월 49.6%로 50%에 육박하였다. 또 이 신문의 전체 매출액 대비 광고매출액 비율은 88년 63.4%, 89년 67.5%로 올라갔다.
(이상철, , 광고연구 제9호(1990년 겨울), 45~46쪽)
4.
또 변정일의 권투판정 사건에서는 이성적인 코스모폴리탄이 돼 공격의 화살을 동족에게 겨눴고 곧이어 그 화살을 편파적인 NBC로 돌려 반미의 제스처를 취했다가 마지막날 권투의 박시헌 '사건' 때에는 다시 동포애를 강조하는 쇼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고종석, , 한겨레신문, 1988년 10월 11일, 9면)
5.
한 외국인의 증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발을 땅에 딛자마자 뚜쟁이가 달려들어요. 세계의 여러 공항깨나 출입해봤습니다만, 내가 알기로는 뚜쟁이가 공항에서부터 일하는 곳은 김포 밖에 없습니다. 설마 이런 일들이 정부의 인정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하시지 않겠죠?"
(강견실, , 샘이 깊은 물 1988년 11월, 70쪽에서 재인용)
6.
9대 국회 보사위원회에서 나온 국회의원들의 매춘관광 관련 발언을 보자.
"요새 말하자면 관광꺼리란 것이 있어요. 왜 그 가치가 세계적으로 제일 얕습니까? 내가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한국 여성이 세계에서 제일 미인이야. 그런데 가장 미인인 한국 여성의 값이 세계에서 제일 싸다. 우선 그 여성지위 향상보다는 여성의 그 몸값을 올려주는 것이 결국 지위향상이 아니겠어요?"(안건수)
"일본이 명치유신 이래 해외로 진출한 창녀나 미군상대 창녀를 애국자로 미화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윤락여성을 미화해 여성전사처럼 부각시키는 것이......"(박형배)
(, 한겨레신문 1990년 4월 25일, 8면)
7.
정부와 국회가 사실상 매춘관광을 묵인 또는 육성하면서 에이즈 감염자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최혜운, 한국일보 1990년 3월 30일, 16면)
8.
이른바 '올림픽 잉여금' 논란도 있었다. 여성잡지 88년 7월호는 이라는 제목 아래 88 서울올림픽 중계권료 문제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했다.
(강준만, 3권, 307면)
9.
올림픽 폐막 직후인 10월 4일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서울올림픽에 대한 여론조사'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인의 95.4%가 올림픽을 잘 치렀다고 응답했다.
(홍순호, , 한국일보, 1999년 11월 22일,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