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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1) ...by magiclub

정원기 |2008.08.20 23:29
조회 35 |추천 0
빈자리 (1) ...by magiclub


내가 살던 동네 한켠에는
어릴 적 뛰놀던 작은 놀이터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밥 먹으라는 소리도 못 들은 채
아이들과 공놀이나 술래잡기를 하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정든 동네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십 년이라는 시간은 눈앞을 흐릿하게 하더군요
조금씩 더듬던 시선을 반갑게 맞는 가로등이 있었어요
작은 놀이터 입구에 외로이 서있는
내내 조심스럽게 내어밀던 걸음은
고갤 빼꼼히 내는 작은 놀이터의 모습에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갈증을 풀어주는 여름 저녁의 작은 놀이터에는
예전의 고리 그네와 외길 미끄럼틀은 사라지고
복잡하게 우뚝 솟은 두 갈래 미끄럼틀과
와이어로 만든 그네는 잠깐동안 낯설게만 보였어요
새로 만들어진 넓적하고 곧은 나무벤치 목걸이로
치장한 작은 놀이터가 어서 빨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왠지 모를 거부감으로 멈칫멈칫하는 그림자가 겹쳐졌어요
어렵사리 들어선 작은 놀이터의
모랫바닥은 푸근하게 두 발을 감싸주었습니다
작은 놀이터에서 몇 번을 둘러본 뒤에야
반가운 친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 그 자리의 좁다란 벤치였어요
다른 것은 다 새 것으로 바뀌었는데
고것 하나만 남아
머릿속을 온통 담홍빛으로 물들입니다
얼른 다가가 앉아 등을 기대어 보니
거실 소파의 쿠션보다도
여느 침대의 안락함보다도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라보던 작은 놀이터는
금새 동네 아이들이 들이닥칠 듯 한 표정으로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머릿속 한켠을 채우고 있던
무성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그네와 미끄럼틀을 바삐 움직이게 합니다
서울 하늘에 별이 없다고들 하지만
작은 놀이터에는 수많은 작은 별들이
밤하늘을 콕콕 찌르고 있었습니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무거울 때면
이 곳 작은 놀이터가 떠오릅니다
잠시 일상의 더위를 씻어주는
게슴츠레한 반쪽 눈을 맑게 해주는
작은 놀이터가 그립습니다
나 이제는
당신의 작은 놀이터가 되겠습니다
작은 놀이터 한켠에 놓여진 좁다란 벤치가 되겠습니다
그 벤치는 언제나 비워두었던 당신을 위한 빈자리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처럼 다시 당신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을 아직 당신에게 전하지 못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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