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산타렝의 가장 성스러운 성체의 기적.
포르투갈 산타렝의 마을은 파티마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데, 란치아노 다음으로 교회역사상 두번째로 유명한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 기적은 1247년 2월 16일에 일어났는데 당시 불륜을 빈번하게 저지르는 한 남자와 결혼한 한 여성이 절망에 처하여 해결책을 찾으려고 유대인 여자주술사를 찾아간 때였다. 주술사는 그녀에게 마법약을 주는 대신에 대가로 성변화(聖變化)한 성체를 요구했다. 여자는 지시 받은 대로, 당시 미사는 일요일에만 봉헌되었으므로 주중에 영성체를 영하기 위해 병을 않고 있는 체 했다. 그녀는 성 스테파노 교구성당으로 가서, 영성체를 받아 모시고는 교회를 벗어날 무렵 입에서 성체를 꺼내어 머리를 가리는 베일에 매듭을 지어 묶었다.
갑자기 성체에서 피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 피가 심하게 넘쳐 흘러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픈지를 물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집으로 달려가 깨끗한 아마포를 보관하는 나무트렁크에 베일에 싼 채로 성체를 두었다. 그녀의 남편이 그 비밀을 발견한 때는 밤중에 기적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 상자로부터 온 집안을 밝게 비추는 눈부신 빛이 나왔다. 성체는 그 매듭에서 나와 거룩한 찬송을 노래하는 천사들이 거양하고 있었다. 신부님을 불러 그 고동치는 성체를 성 스테파노 성당에 행렬을 지어 모셔 갔으며, 그곳에서 성직자들이 피가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 밀랍을 녹여 공처럼 만들어 그것을 봉인하도록 결정하였다.
19년이 지나 1266년에 교회법에 의거한 조사가 열렸을 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성체는 밀랍공에서 빠져 나와 작은 크리스탈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수세기에 걸쳐 왕들과 여왕들과 성인들은 경이로움과 국가적 추앙의 대상으로 ‘그 기적의 피 흘리는 성체의 성보(聖寶)’를 경배하였다.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교황들이 그 제례에 대사(大赦)를 내렸고 성 프란치스코 사비에르는 인도의 대 사도가 되기 전에 성지순례차 방문하였다.
수세기에 걸쳐 발생했던 동일한 ‘기적의 성체형상’에 관련된 기적의 현상들이 목격되었고 새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 북미인 순례자들이 그 감실을 매우 자주 방문하여 기적의 성체를 함부로 다루기 시작한 직후였다. 이 시기에 유품으로 가져가기 위해 성체병에 묵주나 기타 종교용 물품을 갖다 대는 신성을 더럽히는 관행으로 인해 크리스탈 유리병이 깨졌다. 1970년대 중반까지 유리병의 유리가 부서지고 은으로 된 병마개는 떼어내어 유품으로 가져갔다. 그에 따라 성체는 공기 중에 노출되어 부패되었으며 오늘날 극소량의 피와 딱딱해진 살점이 남아있는 유리병의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1997년 기적이 발생한 7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잔여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는데, 그것은 진짜이며 불가사의한 (근육신경의) 착점(着點)이다고 증명하였다. 그리고 밀랍에 스며든 성체와 혈흔의 잔여물은 봉인되어 주 제단 위 성체를 모시는 곳 맨 위에 방탄상자에 안치되었다.
1997년 거룩한 기적의 성 스테파노 교회는 가장 거룩한 기적의 감실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