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up Trend
History of Blue Blood, Pale White Make-up
화장의 역사에서 결코 변치 않았던 하나의 유행은 바로 ‘미백’에 대한 집착이었다. 창백한 흰 피부에 대한 열망은 흡사 마녀들이 행한 온갖 미신적인 주술행위와 닮아 있었고 목숨을 담보로 독약을 들이키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게 했다. 귀족 가문의 자손임을 뜻하는 ‘푸른 피(Blue Blood)’, 2008/09 F/W 메이크업 트렌드로도 주목 받고 있는 페일 화이트닝의 역사를 돌아본다.
2008/09 F/W 메이크업 트렌드에서 화이트닝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새하얗게 탈색된 피부톤과 화이트 컬러를 중심으로 한 메이크업 컬러들, 눈가의 칙칙함을 메워 줄 화이트 아이새도, 펄감이 첨가된 화이트 아이라이너, 눈 앞쪽을 화이트컬러로 덧칠해 반사된 느낌으로 눈을 크게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피부톤을 환하게 만드는 파우더도 필수품목. 고딕적인 미니멀리즘에서 뿐 아니라 스포티한 사이버 메이크업을 연출할 때도, 강렬한 컬러 컴비네이션의 팝아트적 감성을 더할 때도 백지장처럼 흰 피부톤이 동반된다.
미백은 푸른 피(Blue Blood)의 역사
백옥처럼 하얀 얼굴, 푸른 정맥이 비쳐 보이는 투명한 피부는 모든 여성들의 희망사항이었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흰 피부의 적인 햇빛을 피해 다녔고 잡티 없이 맑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금전과 시간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미백은 모든 화장술의 기초였다.
외모를 가꾸는데 눈뜬 여성들은 납과 수은이 섞인 회반죽을 바르고 막 벗겨내 핏기가 가시지 않은 동물의 가죽을 마스크 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납이나 수은을 주성분인 유독한 분 때문에 타 들어가는 듯 따가운 고통을 인내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뿐 아니라 가축의 털을 뽑는데 쓰인 비소성분도 그 유해성에도 불구하고 수세기 동안 사용되었다.
흰 피부를 가꾸기 위한 처방으로 깃털을 뽑지 않은 제비를 통째로 우려낸 물과 남자 아이를 키운 유모의 젓을 권하는 다소 미신적인 행위가 유행했다. 이와 함께 미백 성분의 액체를 얻기 위해 비둘기, 뱀, 악어의 배설물까지 귀하게 쓰였다. 희고 맑은 피부를 갖기 위해 연금술을 응용하기도 했다.
특히 창백한 피부로 명문가의 자손임을 표시하기 위해 관자놀이와 목, 가슴, 어깨 부분에 혈관이 두드러져 보이도록 푸른색을 칠하는 화장술이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귀족 가문의 자손임을 뜻하는 ‘푸른 피(Blue Blood)’는 이러한 화장술의 역사와 관련된 단어다.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은 백연(염기성 탄산납), 석고, 백묵 등으로 얼굴을 치장했다.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르스광장에서 훈련 받듯 운동에 여념이 없었던 남성들 사이에서 연애를 시작한 남성들은 창백하고 수척해 보여야 했다. 창녀였으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두뇌로 소크라테스와 친분을 쌓았던 아스파시아는 화장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특수한 직업의 특성상 아기피부처럼 하얀 피부를 만드는 분 제조법을 소개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쇠퇴기에 와서는 짙은 화장법이 만연해 백연의 과도한 사용으로 얼굴빛이 변색되고, 치아가 검어지고, 신경이 둔해지는 전신 쇠약에 걸린 귀족들이 제국의 몰락과 동반했다.
이러한 화장술의 집착에 중세종교계에서는 결혼 적령기의 처녀들에게 어느 정도의 치장은 허용했지만 그 이상의 화장은 악마와의 공모라며 근절하려고 애썼다. 이 시대 미의 기준은 부드러운 머리결과 백합처럼, 눈처럼 빛을 내는 흰 얼굴과 목과 손을 지닌 25세 이하의 청춘기를 가리켰다. 중세의 아름다움은 천사처럼 순수한 처녀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비밀리에 미용의 연금술을 애용했다. 납이 든 백연을 과도하게 사용한 여성들은 얼굴이 검게 변색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종교계에서는 화장은 곧 죽음과 연결되는 육체의 부패를 가져온다고 몰아붙였지만 소용없었다. 
-「아스파시아(Aspasia)」, 마리에 보리아르(Marie-Geneviève Bouliard), 1794
-「젊은 여인의 초상」,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60
-「더 돈나 트리티크(The Donne Triptych)」부분, 한스 멤링(hans Memling), 1475
예언가의 마술이 지배한 화장법 -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 인간을 향한 문화와 예술이 도래하자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바뀌게 된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여인들을 선두로 연금술에 의한 초자연적인 힘을 믿었던 여성들은 그 효과는 제쳐두고 동물과 보석, 광물 등 다양한 재료를 화장품의 재료로 선택한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에게 실험했다.
1552년 노스트라다무스는 에서 은, 수은, 백랍 등을 빻은 가루로 만든 화장품을 소개하고 고래의 정액, 박쥐의 피, 달팽이의 점액, 살모사 가루 등 흑마술에나 쓰일 법한 마법사의 제조법도 첨부했다. 주근깨를 없애기 위해 우유에 살모사를 갈아 넣고 황산염을 섞은 로션을 발랐고 곡류와 동물성 비계를 혼합해 만든 팩을 애용했다.
베네치아에서는 포도주를 마실 때 목으로 포도주의 색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피부여야 미인이라는 믿음 때문에 노출되는 모든 피부에 분을 발랐고 이도 모자라 온몸에 분을 바르기도 했다. 손을 하얗게 만들기 위한 비법도 유행해 겨자, 꿀을 섞은 장갑을 끼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젊은 여인의 초상」, 로기르 반 더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 1460
-「데스트레 자매(Gabrielle d'Estrées)」, 슐츠 반 퐁텐느블르(Schule von Fontainebleau), 1595경
순백을 찬양하라 - 바로크, 로코코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바로크 시대에는 개인주의와 넘치는 향락주의로 과장된 장식과 메이크업이 유행한다. 이탈리아의 최신 미용법이 프랑스로 건너왔고, 16세기 말에는 도회지의 유복한 계층에서 화장과 염색 등이 성행했다. 특별한 패션취향을 지녔던 앙리 3세 때부터 궁정 귀족들을 중심으로 ‘트렌드’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이는 루이 14세 때 최고조에 달한다. 어느 시대보다 진한 메이크업을 했는데 백랍으로 만든 인형처럼 보이는 흰 피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화장의 시작이었다. 백분을 온몸에 뿌리는 회전하는 기구를 사용할 정도로 치장에 시간을 허비했다. 유럽 패션의 유행을 주도했던 귀족들은 남녀 모두 염색을 즐겼는데 그 당시 착용했던 흰 가발은 머리끝까지 순백을 찬양하려는 행위였다.
17세기 로코코시대 여인들 또한 흰 피부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송아지 육수로 목욕하고 백합꽃 증류수를 바르고, 귀부인들은 산책을 나갈 때 피부가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얼굴 위에 고정하는 가면-에 ‘이 아름다운 얼굴의 방패’는 ‘얼굴의 눈이 녹는 것’(늙는 것)을 막아준다고 적혀 있었다-을 쓰고 다녔지만 이도 성에 차지 않아 갈수록 두터운 수은성분의 분을 발라댔다. 유독한 분 때문에 오히려 피부가 나빠졌고 이를 감추려고 볼연지에 집착했다. 영국의 여류 시인 몬테규 부인이 볼연지로 붉게 물든 프랑스 여인들을 향해 ‘이제 막 가죽을 벗겨낸 양떼처럼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라고 비아냥거린 것도 괜한 비난이 아니었다. 
-「두 자매(The Two Sisters)」,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770
-「앵무새와 젊은 숙녀(Young Lady with a Parrot)」,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730
-「루이 15세의 딸 앙리에트(Anne-Henriette)」, 장 마크 나티에(J. M. Nattier), 1754
창백한 고딕의 아름다움, 모르비데차(Morbidezza) - 19세기
18세기 말, 고딕풍 소설의 유행으로 문인들은 폐결핵 환자들이 지닌 예술가적인 병약함을 사랑했다. 프랑스의 바이런이라 불린 뮈세의 뮤즈였던 ‘벨지오조소(Cristina di Belgiojoso) 공주’를 대표적인 창백한 미모의 소유자로 꼽을 수 있다.
이에 19세기는 침울한 분위기가 유행함과 동시에 창백함에 대한 극도의 집착이 시작됐다. 바로 질병을 모방한 것. 멋쟁이라면 당연한 듯 불행한, 병든 모습이어야 했다. 처럼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번뇌하는 모습을 외모로 표현했다. (1841)에서 “죽어가는 이처럼 창백하고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납빛 안색에 움푹 들어간 볼을 지니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런 모습이 품위 있는,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라고 ‘질병 화장법’에 대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나폴레옹 제정시대의 트렌드세터 조세핀 왕후도 고딕풍에 반해 나폴레옹이 ‘꼭 송장처럼 보이는 구려!’라고 걱정함에도 불구하고 폐결핵 환자처럼 꾸미고 다녔다.
-「벨지오조소 백작부인(Cristina di Belgiojoso)」, 프란체스코 하예츠(Francesco Hayez), 1832
-「부아예의 초상(Christine Boyer)」, A, J, 그로(Baron Antoine-Jean GROS), 1801
-「황후 조제핀(Portrait of Empress Josephine)」, 피에르 폴 프뤼동(Pierre-Paul Prud'hon), 1805
‘질병 화장법’은 붉은 빛과는 상반되는 파란색, 녹색 등을 화장법에 사용했다. 피부는 결핵환자처럼 푸른빛이 돌 정도로 창백하고, 눈은 불면증환자처럼 퀭하고 머리카락은 심연의 어둠처럼 칠흑같이 검었다. 부유한 집에서도 끼니를 굶고 빈속에 식초를 마셔 위를 망가트리는 자학적인 미의식이 팽배했다. 눈가에는 실제 기미와 다크써클이 생기도록 일부러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눈이 풀린 듯 보이기 위해 벨라돈나 풀에서 추출한 독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잘못하면 중독자가 될 수도 있는 마약성분의 아트로핀을 복용해 동공을 크게 보이게 하는 짓도 서슴없었다. 요즘의 서클렌즈를 착용한 듯한 효과를 나타냈겠지만, 약에 취해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이 장애나 마약중독으로 추악하게 변질될 염려까지 막지 못했다.
이처럼 유령처럼 으스스한 창백함, 우물처럼 깊고 어두운 눈, 죽기 직전의 폐결핵 환자처럼 보이는 외모가 이상적인 청순함으로 추앙 받았다. 병들어 맥없어 보이는 모습을 지닌 여성상이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이를 향해 감미롭고 우아한 흰빛의 피부를 뜻하는 말로 ‘모르비데차(Morbidezza)’라 일컬었다. 창백하고 야윈 여인, ‘낭만적 뮤즈’를 뜻하는 모르비데차들은 외모뿐 아니라 눈을 반쯤 지그시 감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려 멍한 표정을 지었다. 꿈꾸는 듯, 쓸쓸한 얼굴까지 연출된 집단 히스테리가 만연했다. 마치 이루지 못한 사랑을 품고 시름시름 앓다 목숨을 잃은 고귀한 태생, 공주나 왕후의 망령과도 같은 모습을 연기했다.
-「케슬러 부인의 초상(Kessler)」,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73
-「책읽는 소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850
-「마리 블랑슈 바스니에의 초상」, 자크 에밀 블랑슈(Jacques Emile Blanche)
1920년대에 와서야 샤넬과 이사도라 던컨이 주장하듯 건강한 신체의 아름다움에 눈뜬 여성들이 야외활동과 선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전까지 몇 세기를 거쳐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미학이 시대를 지배하면서 새하얀 피부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핏줄이 비칠 정도로 창백한 피부의 소유자는 노동이 필요 없는 신분임을 증명하는 증명서였다. 21세기, 여성들이 다시 창백한 흰 피부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고귀한 신분이고 싶다는 ‘블루 블러드’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미백화장품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파괴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향한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