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자살
김선미
|2008.08.28 07:32
조회 88 |추천 0
신경정신과 전문의, 故이은주에 보낸 편지 눈길
[마이데일리 2005-02-25 15:14]
청초한 미소와 차분한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이은주는 하늘의 별이 됐다. 그 별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대중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며 우리 곁을 떠난 이은주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절함, 그리고 그녀의 아픔과 언론보도에 대한 애정어린 단상과 아쉬움이 실린 한 의사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씨의 ‘그녀를 보내며’라는 제목의 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문씨가 마이데일리에 보내온 편지를 소개한다. 다음은 문씨가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문씨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태릉정신과병원 원장을 거쳐 현재 아산정신병원 진료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를 보내며
영화배우 고(故) 이 은주씨의 자살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다. 탄탄한 연기력과 독특한 색감으로 한국영화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탁월한 배우를 우리는 잃었다. 그 슬픔이 큰 만큼 아쉬움도 크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자살하는 사람의 70~80%가 우울증이 있다는 국내외 보고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그녀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정황이 공개되었다.
우울증으로 치료받는데 대한 연예인으로서의 부담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았던 부분이 너무나 아쉽다. 우울증은 약물치료와 상담으로 대부분 치료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직접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며 성급히 소문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신문이나 방송매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추측성 기사를 보도한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만한 이유는 없다. 언론매체는 특히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보도에 대해 각별히 신중해야 한다. 유명인 자살의 대대적인 보도 후에 예비 자살자들의 모방자살이 크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살 방법에 대한 세세한 묘사, 마치 탐정이 된 듯한 추측성 기사, 애도의 차원을 넘어 자살에 동조하는듯한 태도, 삶에 회의를 부추기는 점 등은 반드시 배격돼야한다. OECD 국가 중 자살증가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녀가 남긴 글들을 보며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게 돼버렸는데. 인정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아니고서야 이 힘듦을 어떻게 알겠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일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맨날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램이었지. 일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이야.’
그녀의 글속에는 이해받지 못한 상실감이 가득하다.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지만 죽음까지 고민할 정도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말하지 않더라도 연예인의 화려한 명성과 조명 뒤에 그녀에게 따르는 고독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그들의 삶은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와 상업적 시스템이 요구하는 컨셉에 지배돼 자신의 내면과 철저히 유리된 채 살아간다. 그들에게 향하는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은 체온으로 느껴지는 친밀감이 아닌 만져서도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일지 모른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있으면서 높은 곳에 머물기만을 바라며 내면의 나는 외면하고 남들에게 비추어지는 나에게만 집착한다. 이럴때 우리 속의 자신은 분열되고 실종된다. 외로움이란 사람들로부터 내가 멀어졌다고 느낄 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외로움이란 분열된 내가 한없이 멀어져 서로 만날 수 없을 때 느낀다.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은 자신을 주저앉히고 만다.
그녀의 육신은 한줌 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의 넋은 가고 싶어 했던 1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머물기를 기원한다. 영화 하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던 곳! 부디 그 곳으로 돌아가서 남아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를 바란다.
그녀는 갔다.
하지만 그녀가 가고 없는 이 땅에는 오늘도 기사화되지 않는 하루 20건 이상의 자살이 계속될 것이다.
2005년 2월 25일
문요한 (아산정신병원 진료과장,신경정신과 전문의)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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