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유전자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유전자는 참으로 이기적이다.
인간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유전자가 창조한 기계이며
그 기계의 목적은 유전자를 보존하는 데 있다는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을 유전자 암호에 의해 작동하는 한낱 기계로 격하시킨다.
전쟁의 시대가 있었다. 영토를 차지하고 식량을 차지하기위해
인간끼리 서로 죽이는 시대였다. 이 시대의 유전자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극복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켜왔다. 인간에게 사람을
죽이는데 있어서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그 행위를 쾌감으로
보상해주었다. 이런 유전자를 가진 부류의 인간들은 전쟁에서
승리해 왔고, 이러한 유전자를 가진 자들은 쉽게 후손을 퍼트릴
수 있었다. 이 유전자는 스스로 발현을 억제하는 법도 알았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으므로. 그래서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평화였을 뿐이고
어디서나 살인행위는 끊어지지 않고 발생했다.
인간은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이성이라는 존재가 살인을
막아준 덕택에 살인이라는 행위는 다스려지는 듯 했다. 그러나
살인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인간은 살인자들을 조사한 결과
‘살인의 조건’ 이라는 법칙보다는 가설에 가까운 이론을
만들어 냈다. ‘불우한 어린 시절’, ‘유전적 요인에 의한 뇌질환’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알코올이라는 요소가 첨가 된 경우에
살인이 행해졌다.
2049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과학은 생명을 선별해서 잉태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단순히 유전자의 운송수단일지도
몰랐던 인간이 유전자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수정란을
추출해서 치명적인 유전자를 제거하는 기술은 이제 흔히 행해지는
쉬운 기술이다. 치매유전자, 암유전자와 같은 악질 유전자들은
수정란 상태일 때 모두 제거 된다. 이와 더불어 살인유전자는
필수적인 제거 대상이다. 살인유전자는 특정 DNA 염기 서열을
가지고 있었다.(5‘-AAGATCATCCTG-3’) 각 3개의 염기(A,T,G,C)가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하는데 AAG는 라이신이라는 식이다. 20종의
아미노산은 약어로 쓰는데, 라이신-아이소류신-아이소류신-류신의
약어 조합은 ‘KILL’ 이었다. 마치 자신이 살인유전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듯이. 수정란 상태의 초기에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게 되면
특정 유전자가 완전히 제거되게 된다. 이전에는 진단은 가능했으나
수정란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2세포기, 4세포기, 8세포기를 지나
계속 DNA가 복제되면 모든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는 생명공학의 진보로 유전적 질병 퇴치는 물론이고
살인까지 예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3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30대로 추정되는
남자의 연쇄살인 사건. 20명이 희생되었지만 범인은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아 수사가 힘들었다. 살해방법도 잔인했다. 온 몸을
난도질을 하는가 하면, 목을 잘라서 강에 버리는 등.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 살인마도 인간인지라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다. 잡혀온
그는 죄책감하나 없었고, 오히려 당당했다. 그는 살인을 할 때마다
통제할 수 없는 쾌감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살인마가 잡혔구나하고 안심할 무렵, 그가 간수들을 죽이고 탈주를
했다. 3명의 희생자가 더 발생했고, 한 여자를 살해하려던 그는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그리고 살인에 관한 법령이 엄격해졌고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묻힌 사건은 그가 강간 및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죽이려 했던 그 여성은 이미 강간을 당한 상태였다. 그녀의
부모는 사회에서 명성이 있었는데 타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2개월 뒤 임신사실이 확인 되자 그녀는 집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잘나가는 작가였는데 집에서 원고작업을
하는데 지장이 없어 사회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8개월 뒤
집에서 쌍둥이들을 낳고 그 아기들은 비밀리에 입양되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서 살인유전자를 제거한다고 해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수는 극히 줄어
들었고 젊은 계층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쌍둥이는 단지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30대의 청년들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모습이고 살인유전자의 또 다른 생존전략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 준 것은 2024년에 일어난
인권운동으로 인한 유전자검사의 제제였다. 더 이상의 일상생활 시
혈액채취를 통한 유전자식별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오빠, 요즘 들어 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지 않아?”
“난 잘 모르겠는데?”
“오빤 뉴스도 안 봐?”
사실이었다. 덕분에 경찰들만 사건 사고 조사로 바빠졌다.
‘난 그렇게 많이 안 죽였는데...’ 성현이 중얼거린다.
“신문에서 보니까 유전자검사로 언제 죽을지도 안다더라.
언제 사고 날지는 모르나?”
“사람이 죽고 사는 걸 과학이 어떻게 아냐?” 성현이 대답했다.
전화벨이 울린다.
“네, 제가 조미정인데요.” “오빠. 나 출판사 다녀올게.”
‘요 몇 년째 내가 왜 이러지? 담배도 끊었는데, 이건 도대체...’
자신의 몸에 있는 살인유전자가 발현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성현은 요즘 혼란에 빠져있었다.
‘왜 죄책감이 들지 않지? 그리고 그 짜릿한 쾌감은 뭐고...’
그간 저지른 살인만 해도 열 건이 넘었다. 뒤처리가 완벽해서 사고로
간주되거나 실종으로 처리 되곤 했다.
‘미정이를 만난 것도 일 년이 다되어 가는데.’
사실 미정이를 만난 후 사람 죽이는 것이 뜸했었다. 하지만 본능을
이기지는 못했다. 인터넷에 접속하더니 예전 다이어리를 읽는다.
미정이에게 왠지 끌린다. 처음에는 여성적인 매력보다는 왠지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마냥 좋다. 내 안에 있는 악마도 조용해지는 느낌이다.
‘미정이 돌아왔나 보다.’
컴퓨터를 끄고 거실로 나간다.
“오빠! 오빠가 쓴 소설 이번 주 베스트셀러가 됐대! 그래서 인쇄
더 하자고 계약하고 왔어.”
“그래?”
“반응이 그게 뭐야! 내가 읽기에도 섬뜩하고 오싹한 게 반응이
좋을 줄 알았다니까.”
‘내가 저지른 살인을 글로 옮긴 것뿐인데...’
현실에서 살인이 뜸해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살인에 관한 소설을
즐겨 읽었다. 성현이 글로 옮긴 생생한 그의 느낌은 독자들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같은 시각, 컴퓨터를 하는 성진.
‘이런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형보다 항상 못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성진은 형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형의 웹사이트를 해킹하는 것은 성진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미정이는 내꺼야. 형한테 양보하는 것도 이젠 지쳤어.’
다이어리를 둘러보다가 형도 자신과 같이 살인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 나 같은 놈은 한 명이면 족해...’
그 간의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려는 성진이다.
‘더 이상 어두운 인생은 없어. 나도 주목 받으면서 살 거야.’
다음 날 저녁, 성진은 성현을 기습 공격 한다.
성현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너... 왜....”
“형도 알잖아 나 형 싫어하는 거. 그리고 우리가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겠어?”
“너... 너도...”
“얌전히 있어. 심장마비로 할 거니까 말이야.”
“아 그리고 이유가 있어. 형이 죽어 줘야할 이유.”
“그게.. 뭔데?”
“내가 형이 될 거거든. 미정이도 이젠 내꺼야.”
“그건... 말도 안 돼. 생긴 것만 같다고 내가 되는 건... 윽!”
“자, 심장에 무리가 좀 오나? 그리고 준비는 다 됐어. 형이 될 준비.”
“무...무슨..”
“내가 해킹이 취미잖아? 그래서 지문관리 사이트를 해킹해서
형이랑 나랑 지문 데이터를 바꿨지.”
“커억!”
“기다려. 들어봐. 형이랑 나랑은 일란성 쌍둥이라서 DNA가
100% 일치하거든? 그래서 구별 하는 방법은 지문밖에 없는데
그걸 내가 바꿨다는 얘기지.”
“너...”
“잘 가. 그리고 다이어리 도움 많이 됐어.”
형의 장례가 치러진다. 아니, 형식적으로는 동생의 장례식이다.
“오빠...”
“괜찮아. 잠시 혼자 있게 해줄래?”
장례식은 간단하게 끝이 났다.
본능에 이끌려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른 성진.
‘으, 피가 끓는 것 같군. 마약을 해도 이 같은 쾌감은 가질 수 없을 거야.’
“...오빠.”
‘누구지? 낯이 익는데?! 이 느낌은 또 뭐지...’
목격자는 당연히 죽여 왔고, 그것이 뒤탈도 없는 법. 그러나
성진은 멈칫했고, 미정이는 달아났다.
‘헉!!!’
꿈이었다. 실제 같은 너무나 생생한 꿈. 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잠들었나보다. 뭐 이런 꿈이 다 있지?’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린다.
“흑..흑.. 오빠...”
“미정아, 너 왜 울어?”
“오빠 우리 볼 수 있을까?”
“너 어디야? 내가 그리로 갈게. 기다려.”
“너 왜 울어? 왜 우냐고? 말해봐.”
“흑..오빠 왜 그랬어?”
“뭐?”
“왜 그랬냐구!!!”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 오빠 봤어, 오빠도 나 봤잖아.”
“너 무슨 소릴, 날 봤다니 무슨 소리야?”
“오빠가 저기 안에서 사람 죽이는 거 다 봤다구!”
“난 지금 집에서 오는 길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빠 지금 거짓말 하는 거야? 동생 때문에 그래? 아니면 그 따위
소설 쓰다가 진짜 살인을 해보고 싶어진 거야? 응? 그런 거냐고!!”
“진정해. 난 그런 적 없다고.”
“오빠.. 우리 자수하자.”
“너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할래?”
“오빠 나도 죽일 거야?”
“무슨 소리야? 나 너 사랑해. 그럴 일 없어.
진정하고 집에 가자.”
‘미정이는 울다 쓰러져서 잠들었군. 도대체가 혼란스럽다.
내가 꿈을 꾼 게 맞는 건가?’
‘가만, 내가 정말 그랬나? 그럴 리 없어. 난 분명 집에 있었어.
이것도 꿈인가?’
‘젠장. 미정이가 이러고 있으니 어딜 갈 수도 없고. 내일 거기
확인이나 해봐야겠다.’
“오빠! 일어나봐!”
“으..응?” 깜박 잠들었나보다.
“오빠 신문 좀 봐봐”
“ㅇㅇㅇ씨 간밤에 사무실에서 자살? 이거 어제 거기 아냐?”
“그치만... 나.. 분명히 오빠가 그 사람을 ... 봤단 말이야!”
“내가 안 그랬다고. 정신 좀 차려봐!”
‘요즘 정신이 통 없다. 내가 그런 건지? 아니면 나랑 똑같이
생긴 형이 그런.. 아냐. 말도 안 돼. 형은 분명 죽었어. 내가
형을 죽인 게 맞나? 사건 현장에 한 번 가봐야겠어.’
‘난 분명 기억이 없는데. 이 건물 전혀 와 본 것 같지 않아.
내 꼴이 말이 아니긴 하군, 거울에 비친 모습이 참 아니다 아니야.
위층이 사건이 있었던 곳인가? 아무 단서도 없군.
처음 와 본 것이 분명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시 집으로 가려는데 문득 든 생각.
‘올라 갈 땐 분명 거울이 있었는데 어디 갔지? 분명 여기인데.
거울은 없고 위쪽이 뚫린 문 밖에 없는데?’
‘응?’
성진은 뒤에서 뭔가에 의해 공격당해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의자에 앉아 있고 손발은 묶여있다. 저기 누군가 보인다.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있다.
“거기 뭐하는 놈이냐?”
그 놈이 걸어온다.
‘젠장 형이잖아.’
“너는 누구냐?”
“누구긴 누구야 니 동생이지. 보고도 몰라? 분명 널 죽였는데 어떻게..?”
“니가 내 동생이라고? 그리고 니가 날 죽였다고?”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내가 이대로 죽을 거 같애?”
성진은 줄을 끌러 놓은 다리로 놈을 힘껏 차고 벽난로에 두 손을
밀어 넣는다.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성진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묶여 있던 끈은 다 타 버렸다.
그 때 놈이 달려들어 한 방 먹는다.
‘어떻게든 형을 이번엔 확실히 죽여야 해!’
격렬한 몸싸움 끝에 성진의 심장에는 주사바늘이 박히고,
놈은 허파에 칼을 맞는다.
바닥은 피로 흥건해지고 둘은 쓰러진다.
“조미정씨 맞습니까?”
“네...”
“이 두 분을 아십니까?”
“한 명은 제 애인인데, 한 명은...”
“사체의 신원확인을 위해 유전자검사와 지문검색을 한 결과
‘김성현’씨와 ‘이성준’씨 인걸로 밝혀졌습니다.”
“네. 성현오빠가 제 애인이에요.”
“두 사람은 일란성 쌍둥입니다. 물론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리고 모르셨겠지만 유전자검사 결과 살인유전자가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그리고... 김성현씨 몸에서 조미정씨 DNA가 발견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전자검사가 같이 되었는데.. 두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일치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유전을 합니다. 수정 시에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파괴되고 난자의 미토콘드리아만 유전되기 때문인데,
그 말은 두 분의 어머니가 같은 분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저희 측 조사에 따르면 모친께서 세쌍둥이를 낳으시고 둘은
김영철씨에게 막내는 이명식씨에게로 입양된 것 같습니다. 모친은
분만 당시 기절상태여서 모르셨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미정씨도
검사를 받으셔야 됩니다. 임신 하셨다면 태아유전자검사를 받고
살인유전자가 발견되면 임신중절 호르몬제를 맞으셔야 합니다.”
에필로그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머리도 아프고... 단 하나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에 심하게 부딪혔다는 것이다. 그 때의
충격과 고통은 생생히 남아있다. 난 누구일까?
길거리를 가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혔다. 이 사람 왠지 기분 나쁘다.
... 내가 뭘 한 거지? 이 사람 내가 죽여 버렸다. 신기한 것은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늘 해왔던 일처럼.
시체를 가져다가 산에 묻었다. 어쩌면 이렇게 능숙한지 나도 놀랍다.
벌써 몇 명 째인지 모르겠다. 살인기계가 된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
그 순간의 쾌감이 나를 그만 두지 못하게 했다. 어느 날, 한 사무실에서
사람을 죽이고 돌아서는데, 어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지? 낯이 익는데?! 이 느낌은 또 뭐지...’
그녀를 왜 죽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사무실을 다시 가게 된다.
거기를 가게 되면 살인을 저지를 당시의 짜릿한 쾌감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이 느낌도 얼마가지 않을 테고 또 한 명을 죽여야 할 테지만.
또 다시 그 사무실을 갔을 때, 난 문 너머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계단을 올라간다. 난 쌍둥이였나? 알아보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