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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기술의 혁신자 채륜

신문섭 |2008.09.05 00:16
조회 114 |추천 1

 

=☆=    제지기술의 혁신자 채륜    =☆=

 

 

종이 발명은 인류역사의 대사변이다.

종이가 있게 된 후 지식의 계승과 전파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제지술(造紙術)은 중국 고대 화학기술의 인 나침반, 제지술, 인쇄술, 화약중의 하나이며 세계문명에 대한 중화민족의 매우 보귀한 기여로서 세계과학문화의 전파와 교류를 촉진하고 세계역사의 행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사대발명중의 그 어느 발명이든지 모두 장기간의 개진과 연변을 경과하였다. 이는 한시대, 또는 한사람의 공로가 아니다.


중국 고대에는 귀갑과 짐승뼈, 죽간, 목판 등으로 사물을 기록하였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골문은 현대한자의 전신이다. 이런 문자는 귀갑과 짐승뼈, 그리고 청동기에 새겨진 것으로 하여 후세에까지 유전되었다. 지금 출토된 갑골문이 씌여있는 귀갑과 짐승뼈는 약 2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후 고대 중국에서 또한 대량의 죽간과 목판 등을 문자의 캐리어로 하였다. 그 작용과 성질을 놓고 볼 때 죽간과 목판은 귀갑과 짐승뼈와 마찬가지이다. 죽간과 목판의 뒤를 이어 견직물도 글을 적는 캐리어로 되여 주로 황실귀족들이 사용하였다.

 


종이는 기원전 100년 전후에 나타났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 중국 한나라에 자카드 판지가 나타났는데 이런 종이는 그 공예가 복잡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서 실용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채륜은 이런 국면을 철저히 개혁하였다.


기원전 61년에 태어난 채륜은 중국 한나라의 과학자이다. 농민가정에서 태어난 채륜은 15살부터 황제의 시종으로 선발되여 황제의 고위급문관을 담당하였었다. 그 당시 채륜은 죽간과 목간이 무겁고 견직이 너무 비싸고 자카드 판자가 대량 생산하지 못한 것을 보고 제지방법을 개진하기 시작하였다.


채륜은 선인들의 제지경험을 총결한 다음 공예가들을 거느리고 나무껍질과 헌 바줄, 헝겊, 헌 그물 등을 원료로 종이를 만들었다. 그들은 먼저 나무껍질과 헌 밧줄, 헝겊, 헌 그물 등을 작게 끊어 물에 담가 때를 씻어 낸 다음 풀 모양으로 만들어 솥에 삶아 돗자리에 엷게 펴가지고 햇빛에 말려 종이로 만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만든 종이는 가볍고 얇아 글을 쓰기 편리해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제지술에 대한 채륜의 개진은 황제의 칭찬을 받았다. 그때부터 전국 각지들에서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종이를 만들었다. 이런 종이는 채후지(蔡侯紙)로 불렸다.


채륜은 황궁에서 전적을 대조하는 사업을 맡았었다. 대조된 후의 전적은 부본을 베껴 각지 관원들에게 나눠주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종이가 필요했다. 사회적 수요가 생산을 격발시키고 생산실천의 부단한 축적은 또한 제지기술수준의 부단한 제고를 가져왔다. 채륜의 힘 있는 추진으로 하여 중국의 제지술은 부단히 완벽화되었다. 채륜이 돌아간 후 약 80년 동안 한나라에 또 한명의 제지의 명수인 좌백(左伯)이 나타났다. 그가 만들어낸 종이는 두께가 고르고 질이 부드러우며 색깔이 선명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종이를 (左伯紙)로 불렀다. 기원 3~4세기에 와서 종이는 기본상 낙후한 간백(簡帛)을 대신하여 중국의 유일한 필기재료로 되였다.


과학자와 창신정신을 가진 고위급 문관으로서 채륜은 제지술을 개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금속제련과 가공, 기계제조공예를 발전시키는데서 커다란 중추적 역할을 했다.


 

● 채륜 (蔡倫  61?∼121?)

 

제지기술의 혁신자 채륜


중국 후한(後漢) 중기의 환관(宦官). 후난성[湖南省(호남성)] 계양(桂陽) 출신. 97년 상방령(尙方令:궁정기물의 제조를 관장하는 관청의 장관)으로 궁중의 검과 도구제작에 재능이 뛰어났다. 105년에는 당시 문서로 쓰이던 목간(木簡)·죽간(竹簡)·견포(絹布) 대신에 톱밥·마(麻)부스러기·헝겊조각·어망 등을 재료로 종이를 만들었고 이를 화제(和帝)에게 헌정하여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114년 용정후(龍亭侯)에 봉해졌고 장악태복(長樂太僕)이 되어서 유학경전(儒學經典)의 교정을 감독하기도 하였으나 과거에 두태후(竇太后)의 내락을 받고 안제(安帝)의 조모인 송귀인(宋貴人)을 모함한 적이 있어 안제가 친정(親政)하게 되자 음독자살하였다. 채륜이 만든 종이를 채후지(蔡侯紙)라 하여 종이의 기원으로 보았으나, 1933년 신장성[新疆省(신강성)] 뤄부[羅布(나포)], 1957년 시안[西安(서안)], 그리고 1973∼1974년 간쑤성[甘肅省(감숙성)] 쥐옌[居延(거연)]에서 전한(前漢)의 것으로 보이는 마를 원료로 한 종이가 발견됨으로써 마지(麻紙)가 이미 전한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채륜은 상방령으로서 마지보다 양질의 수피지제조(俊皮紙製造)를 감독하여 이를 보급시킨 사람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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