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5일 오토바이 사고로 고인이 되신 김정숙씨 아들 박진태입니다..
도저히 이 억울한 심정을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간 속이 다 썩어들어가는것만 같아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사고 당일 아침에 저희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일찍일어나셔
서 아버지 출근준비를 하시고 현재 상근예비역으로 복무중인 저를 깨우시고 도시락까지
챙겨주시고 칠칠맞은 아들이 깜박하고 챙기지 않은 안경까지 챙겨서 보내주시고는
아파트 아주머니들과 함께 아파트 뒤 산책로로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뒤에서부터 환경사업소를 통해 영릉으로 넘어가는 길로 ‘걷고싶은거
리’ 라는 산책로가 생겼었습니다. ‘걷고싶은거리’...그길로 저희 어머니는 영원히 우리 가족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저희 엄마가 서울 병원으로 이송이 된후에 어머니 사고 소식
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싸주신 밥을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에 말입니다...
정신없이 터미널로 뛰어가는데 거리에 있는 모든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형에게 또 전화가 왔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될것 같다고
저는 정신이 반쯤 나가서 어딜 다치셨냐고 형에게 물어봤습니다. 머릿속으로 그곳만은
다치면 안되는데 하고 수없이 기도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머리를 다치셔서 ...다치면
절대 안되는 곳을 다치셔서 수술조차도 불가능하고 오늘을 넘기기 힘들거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조그만 기대마저도 조그만...희망마저도 없이 그렇게 어머니가 계신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만 있을법한 일이 눈앞에 있으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
니다. 막상 병원에 가서도 엄마에게 아무것도...정말 아무것도 해줄수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면회시간이 아님에도 어머니 혈압이 또 떨어져서 가족면회가 허용이 됬고 그렇게 우리 엄마
얼굴을 볼수 있었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배웅을 해주신 우리엄마
사고가 난 시점부터 이미 뇌사상태가 되셔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우리 엄마가 조용히
누워계셨습니다. 호흡기에 의지해 그저 숨만 쉬시고 있는 우리 엄마의 입으로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고 우리 이쁜 엄마 머리카락도 삭발이 되어서 붕대에 칭칭 감겨있었습니다.
그저 넋이 나가서 엄마를 부르며 우리 엄마 손을 만져봤는데 손이 너무 싸늘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그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위에 붕떠버리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22년동안 날 지탱해주시던 우리 엄마가 산책로에서...그것도
‘걷고싶은거리’라는 여주군에서 군민의 생활수준을 높여 주기위해 만들어놓은 산책로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를 낸 가해자는 여주읍사무소 소속으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희어머니는 환경사업소 근처에서 사고가 나셨는데 사고현장을 찾아보니
그곳은 도저히 사고가 날수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직선길로 150m 이상 정도는 되어보이
는 길 저희 엄마는 그 길의 끝쯤에서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사고지점은 산책로로 만들어진
1차선 도로 였는데 저희 엄마는 오토바이에 치여서 5m가량 날라가서 머리부터 떨어지셔서
비명횡사를 하게됬습니다. 아버지와 차를 타고 사고현장을 찾았을때 앞에서 차가 왔는데도
무리없이 그것도 겔로포 정도의 중형 차가 무리없이 빗겨지나갈수 있는 그런 길에서 정말
말도 않되게 돌아가셨습니다. 얼마나 세게 달렸으면 그 조그만 오토바이로 우리 엄마를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곁을 떠나게 만든건지...사고당시 우리 엄마가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 너무도 착하고 예쁘신 분이었습니
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사셨고 아빠와 형 그리고 제 일이라면 앞뒤 안가리
고 덤벼드시는 헌신적인 어머니 셨습니다. 부디 저희 어머니의 억울한 사연을 널리 알려주
시고 얼굴한번 본적없는 저희 어머니지만 부디 좋은 곳으로 가게 빌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