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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의 번민

김호진 |2008.09.11 16:51
조회 126 |추천 1

 

 

 

 

테레사 수녀의 고뇌 
 
Time 20070903

 

On Dec. 11, 1979, Mother Teresa, the "Saint of the Gutters," went to Oslo. Dressed in her signature blue-bordered sari and shod in sandals despite below-zero temperatures, the former Agnes Bojaxhiu received that ultimate worldly accolade, the Nobel Peace Prize. In her acceptance lecture, Teresa, whose Missionaries of Charity had grown from a one-woman folly in Calcutta in 1948 into a global beacon of self-abnegating care, delivered the kind of message the world had come to expect from her. "It is not enough for us to say, 'I love God, but I do not love my neighbor,'" she said, since in dying on the Cross, God had "[made] himself the hungry one--the naked one--the homeless one." Jesus' hunger, she said, is what "you and I must find" and alleviate. She condemned abortion and bemoaned youthful drug addiction in the West. Finally, she suggested that the upcoming Christmas holiday should remind the world "that radiating joy is real" because Christ is everywhere--"Christ in our hearts, Christ in the poor we meet, Christ in the smile we give and in the smile that we receive."

 

 

1979년 12월 11일,“빈민굴의 성자”마더 테레사는 오슬로로 갔다. 그녀임을 알게 하는 파란색 테두리가 있는 수녀복을 입고, 영하의 온도에도 불구하고 샌달을 신은, 예전의 아그네스(테레사 수녀의 본명)는 세계 최고의 영예인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테레사 수녀의 선행은, 1948년 켈커타의 한 여성의 작은 자선에서 시작하여, 자기희생적 봉사의 세계적 표상이 되었다. 수상연설에서, 테레사 수녀는 세상 사람들이 그녀에게 바라고 있었던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지만, 이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진정 부족합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 신은 자신을 “헐벗고 굶주린, 집도 없는 사람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굶주림은 “여러분과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덜어 드려야 하는 고통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낙태를 비난하고 서구의 젊은이들이 마약에 중독되는 것을 한탄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리스도는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기쁨의 전파는 위대하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님은 우리 가슴에,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주고 받는 미소 속에 있습니다.”

  

 

Yet less than three months earlier, in a letter to a spiritual confidant, the Rev. Michael van der Peet, that is only now being made public, she wrote with weary familiarity of a different Christ, an absent one. "Jesus has a very special love for you," she assured Van der Peet. "[But] as for me, the silence and the emptiness is so great, that I look and do not see,--Listen and do not hear--the tongue moves [in prayer] but does not speak ... I want you to pray for me--that I let Him have [a] free hand."

 

 

그러나 3개월도 되지 않아, 신앙의 동반자인 마이클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편지는 이제서야 공개되었는데, 그녀는 스스럼없이 예수의 부재에 대해서 썼다.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하게 사랑합니다.”라고 그녀는 마이클 신부에게 확신시켰다. “[그러나] 나에겐 침묵과 공허만이 가득합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를 열고도 듣지 못하고, (기도할 때) 혀는 움직이지만 말하지 못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요. 저로 하여금 예수님이 자유로운 손을 가지실 수 있도록요.”

 

 

The two statements, 11 weeks apart, are extravagantly dissonant. The first is typical of the woman the world thought it knew. The second sounds as though it had wandered in from some 1950s existentialist drama. Together they suggest a startling portrait in self-contradiction--that one of the great human icons of the past 100 years, whose remarkable deeds seemed inextricably connected to her closeness to God and who was routinely observed in silent and seemingly peaceful prayer by her associates as well as the television camera, was living out a very different spiritual reality privately, an arid landscape from which the deity had disappeared.

 

 

11주의 시간차를 두고 한, 이 두 발언은 터무니없이 다르다.

첫 번째 발언은 세상에 알려진 전형적인 테레사 수녀이다.

두 번째 발언은 1950년대 실존주의 드라마 속에서 헤맸었던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둘 모두 자기 모순의 놀라운 모습을 시사한다.

지난 100년간 위대한 인간의 표상중의 하나였던 사람으로서 그녀의 놀라운 행동들은, 신과 절대 떨어질 수 없이 친밀하게 보였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녀의 단체나 텔레비전을 통해 조용하고 평온한 듯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가, 개인적으로는 전혀 다른 영적 실체로 신성이 사라진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And in fact, that appears to be the case. A new, innocuously titled book, 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 (Doubleday), consisting primarily of correspondence between Teresa and her confessors and superiors over a period of 66 years, provides the spiritual counterpoint to a life known mostly through its works. The letters, many of them preserved against her wishes (she had requested that they be destroyed but was overruled by her church), reveal that for the last nearly half-century of her life she felt no presence of God whatsoever--or, as the book's compiler and editor, the Rev. Brian Kolodiejchuk, writes, "neither in her heart or in the eucharist."

 

 

사실, 그럴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악의 없이 이름 붙여진 새 책, ‘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 (테레사 수녀: 나의 빛이 되어라)는 주로, 테레사 수녀와 그녀의 고백자, 그리고 그녀의 상관이 66년이 넘게 주고 받은 편지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 봉사를 하며 보낸 것으로 알려진 삶에 대한 영적인 갈등을 보여준다.

 편지들의 상당수가 테레사 수녀의 요구에 반하여 보존되어 남아있는데 (그녀는 편지를 파기하기를 요구했지만, 교회는 이를 기각했다), 인생 후반부 약 50년 동안 그녀는 어떤 형태로든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저서의 편집자로서 브라이언 신부는 “그녀의 마음속에도 성체에도 신은 없었다”라고 적고 있다.

 

 

That absence seems to have started at almost precisely the time she began tending the poor and dying in Calcutta, and--except for a five-week break in 1959--never abated. Although perpetually cheery in public, the Teresa of the letters lived in a state of deep and abiding spiritual pain. In more than 40 communications, many of which have never before been published, she bemoans the "dryness," "darkness," "loneliness" and "torture" she is undergoing. She compares the experience to hell and at one point says it has driven her to doubt the existence of heaven and even of God. She is acutely aware of the discrepancy between her inner state and her public demeanor. "The smile," she writes, is "a mask" or "a cloak that covers everything." Similarly, she wonders whether she is engaged in verbal deception. "I spoke as if my very heart was in love with God--tender, personal love," she remarks to an adviser. "If you were [there], you would have said, 'What hypocrisy.'" Says the Rev. James Martin, an editor at the Jesuit magazine America and the author of My Life with the Saints, a book that dealt with far briefer reports in 2003 of Teresa's doubts: "I've never read a saint's life where the saint has such an intense spiritual darkness. No one knew she was that tormented." Recalls Kolodiejchuk, Come Be My Light's editor: "I read one letter to the Sisters [of Teresa's Missionaries of Charity], and their mouths just dropped open. It will give a whole new dimension to the way people understand her."

 

 

그러한 신의 부재는 그녀가 켈커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던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맞물려 시작했던 것 같다.

그 후, 1959년 5주간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항상 명랑해 보였지만, 편지 속의 테레사 수녀는 깊고 지속적인 영적 고통상태에서 살았다.

40통이 넘는 편지 속에서, 이중 많은 편지가 전에는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허무”“어두움” “외로움”“고통”을 한탄했다.

그녀는 이 같은 경험을 지옥에 비유하면서, 일면으로 천국이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심지어 하느님이 계시는지조차 의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 상태와 공적인 태도 사이의 모순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미소는 모든 것을 가리는 “가면” 혹은 “망또” 라고 그녀는 적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자신이 말로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의아해한다. “저는 마치 하느님과 매우 부드럽고 인간적인 사랑에 빠진 것처럼 얘기합니다.”라고 그녀는 조언자에게 말한다.

“당신이 만약 거기 있었다면, ‘위선이다’라고 말했을 겁니다.”라고 제임스 마틴 신부는 말한다. 그는 예수회잡지인 ‘America’의 편집자이자, 테레사 수녀의 의문에 관해 2003년 아주 짧게 요약한 보고서를 다룬 책인 ‘My Life with the Saints’의 작가이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나는 그토록 강한 영적 어둠 속에 사는 성인의 얘기를 결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Come Be My Light의 편집자인 콜로디에추크씨는 회상한다.

“저는 테레사 자선회의 수녀들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을 읽었습니다, 그들의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를 이해하는 전반적인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The book is hardly the work of some antireligious investigative reporter who Dumpster-dived for Teresa's correspondence. Kolodiejchuk, a senior Missionaries of Charity member, is her postulator, responsible for petitioning for her sainthood and collecting the supporting materials. (Thus far she has been beatified; the next step is canonization.) The letters in the book were gathered as part of that process.

 

 

이 책은 테레사 수녀의 편지에 달려들어 반종교적인지의 여부를 조사하는 기자의 글은 아니다. 고위급 자선회원인 콜로디에추크씨는 그녀의 조사 청원자이고, 테레사 수녀의 성인 청원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그 근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는 복자(성인이 되기 전 단계)였다. 다음 단계는 시성식이다.) 이 책의 편지는 성인 심사 과정을 위해   수집되었다.

 

 

The church anticipates spiritually fallow periods. Indeed, the Spanish mystic St. John of the Cross in the 16th century coined the term the "dark night" of the soul to describe a characteristic stage in the growth of some spiritual masters. Teresa's may be the most extensive such case on record. (The "dark night" of the 18th century mystic St. Paul of the Cross lasted 45 years; he ultimately recovered.) Yet Kolodiejchuk sees it in St. John's context, as darkness within faith. Teresa found ways, starting in the early 1960s, to live with it and abandoned neither her belief nor her work. Kolodiejchuk produced the book as proof of the faith-filled perseverance that he sees as her most spiritually heroic act.

 

 

교회는 누구든 영적 침체기간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실로, 16세기 그리스도교의 스페인 신비주의자 성 요한은 일부 영적 지도자의 성장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테레사 수녀의 경우는 기록상 가장 심한 경우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18세기 신비주의자 성 폴의 “어두운 밤”은 45년간 지속되었지만, 그는 마침내 이를 극복했다.) 그렇지만 콜로디에추크씨는 성 요한이 만든 문맥의 뜻을 믿음 안에 깃든 어두움으로 본다. 테레사 수녀는 1960년대 초부터 길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앙이나 일도 버리지 않은 채, 고뇌를 지니고 살기로 한 것이다. 콜로디에추크씨는 그녀가 가장 영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보면서, 믿음으로 충만한 은총의 증거로써 그 책을 출간했다.

 

 

The particularly holy are no less prone than the rest of us to misjudge the workings of history--or, if you will, of God's providence. Teresa considered the perceived absence of God in her life as her most shameful secret but eventually learned that it could be seen as a gift abetting her calling. If her worries about publicizing it also turn out to be misplaced--if a book of hasty, troubled notes turns out to ease the spiritual road of thousands of fellow believers, there would be no shame in having been wrong--but happily, even wonderfully wrong--twice.

 

 

특별히 신성한 사람이라 하여도 일반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원동력을 오인하기 쉽다. 신의 섭리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부재를 인식한 것을 가장 수치스런 비밀로 여겼지만, 궁극에는 자신의 소명을 일깨워주는 선물로 보여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발표하는 데 대한 그녀의 염려도 또한 오해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성급히 써 내려간 문제의 구절들이 담긴 이 책이 결국 수천의 동료 신앙인들의 영적인 행로를 편안하게 해 준다면, 잘못되었던 것이 수치스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두 번 잘못된 것이 심지어 행운이며 훌륭한 오해가 될 것이다.

 

 

 

 

 

 

 

타임 "테레사 수녀, '신의 부재'로 번민"

 


 
▲ '반지의 성녀' 테레사 수녀 /연합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가 겉보기와 달리 내면 세계에서는 ’신의 부재’로 고심하며 내적 갈등을 겪었음을 보여주는 서한들이 책으로 출간, 공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은 23일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곤 했던 신부 등과 주고받은 서한을 중심으로 구성된 ’마더 테레사 : 내게 빛이 되어주소서’라는 책이 출간돼 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고 보도했다.

 

테레사 수녀의 시복 명분을 조사했던 브라이언 콜로디에이추크 신부가 편저한 이 책에 담긴 서한은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집됐다.

타임에 따르면 테레사 수녀는 지난 1979년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에서 “예수는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만나는 빈자들 안에도 있고, 우리가 주고 받는 미소 안에도 있다”면서 세상이 그에게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전인 같은 해 9월 테레사 수녀가 자신의 정신적 동지인 마이클 반 데어 피트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 연설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예수는 당신을 매우 특별히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 커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입을 움직여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벨상 수상식 연설이 세상이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 피트 신부에게 보낸 서한의 글은 신의 부재로 고통스러워 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둘만 놓고 보면 자기 모순적 모습이 드러난다.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폐기되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존된 40여점의 서한들은 그가 죽기 전까지 50년 가까운 세월 내내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그에게 신의 부재는 빈민을 돌보는 삶을 시작한 1948년부터 죽을 때까지 거의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48년 하반기에 쓰인 한 글에서 테레사 수녀는 외로움의 고통을 얘기하면서 “얼마나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번민을 나타냈다.

이런 불평이 그 뒤 이어지지 않았다면 고독과 어려움에 따른 초기 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테레사 수녀는 그 이후에도 자신이 벌이는 일이 성과를 거둘수록 더 고통이 커짐을 토로했다.

 

1953년 페르디난드 페리에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는 “마치 모든 게 죽은 것처럼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다”면서 신의 일을 망치지 않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서한에서 테레사 수녀는 ’어둠’과 ’외로움’, ’고뇌’를 겪는 것을 한탄했고 이런 경험을 지옥에 비유하면서 어떤 때는 이것이 천국은 물론 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게 자신을 이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59년 8월 로런스 피카키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내 영혼에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얘기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테레사 신부는 자신의 내면 상태와 공적으로 보이는 모습의 불일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미소는 모든 것을 감추는 가면이거나 외투”라고 적기도 했다.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신의 부재를 일생의 가장 부끄러운 비밀로 여겼지만 콜로디에이추크 신부 등은 이를 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든 성스러운 선물의 하나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어둠 냉담 공허가 너무도 커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나의 선교는 위선” 표현도

 

 

 


“주께서 제 안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냉담,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평생을 빈자와 병자를 돌보며 사랑을 실천한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쓴 편지의 일부다. 믿음을 전하는 수녀로서 겪는 신앙의 번뇌와 함께 위기마저 느껴진다.

 


다음 달 5일 10주기를 맞는 테레사 수녀의 편지 40여 편을 모은 책 ‘마더 테레사: 다가와 저의 빛이 되어 주소서(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가 곧 발간된다. 미국 CBS방송, 시사주간 타임 등 외신은 이 책 속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이 책의 편저자는 테레사 수녀의 시복(諡福) 절차를 담당했던 브라이언 콜로디에이추크 신부. 편지 내용의 일부는 2001년 공개됐고 몇 편은 2003년 책으로 짧게 소개돼 당시에도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테레사 수녀가 40여 년간 신앙의 반려자인 몇몇 신부에게 보낸 이들 편지에는 어둠, 고통, 외로움 등의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CBS는 ‘나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주께서 계신다면 부디 용서해 주소서’ 등의 구절에서 신앙심을 잃고 고민한 흔적을 엿보게 한다고 전했다.

 


1979년 마이클 반 데어 피트 신부에게 보낸 글에는 “저는 너무 큰 침묵과 공허함으로 보아도 보이지가 않고 들어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기도를 할 때) 혀는 움직이지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씌어 있다.

 


1959년 로런스 파카키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는 절규하듯 “내 영혼에 왜 이토록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적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는 또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까? 만약 주께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영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없다면, 예수님이시여, 당신도 진실이 아닐 것입니다”라며 신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는 이러한 번뇌로 한동안 기도를 하지 않은 적도 있다고 CBS는 전했다. 테레사 수녀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지옥에 비유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아울러 테레사 수녀의 자애롭고 따뜻한 미소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전했지만 정작 자신은 “웃음은 모든 것을 감추려는 가면”이라고 표현했다고 타임은 전했다. 그는 또 선교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리켜 “위선”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타임은 테레사 수녀가 신앙의 위기를 부끄러워하며 편지들이 폐기처분되기를 원했지만 콜로디에이추크 신부 등은 오히려 반평생에 가까운 그의 번뇌를 성스러운 선물로 본다고 전했다. 끊임없는 고민과 의문이 이를 극복하고 큰 업적을 이루게 만든 발판이 됐다는 것. CBS는 그러나 테레사 수녀가 죽는 순간까지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끝내 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바티칸은 올해 안에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할 계획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4일 보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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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심이 없고 또는 카톨릭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테레사 수녀는 다 익히 알고 또 선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누가 봐도 하나님의 자녀였어야 할 그녀는 오히려 신의 존재조차도 확신하고 있지를 못했다.

테레사 수녀는 거의 평생을 육신적인 욕심을 절제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으로 평가된다.

어려운 빈민들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에게 희망을 준 테레사 수녀.

그러나 그 자신의 마음은 평안하지 못했던 것 같다.

 

 

 

 

 

카톨릭은 평신도는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스리스도의 어머니를 통해 간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예수 스리스도께서도 모친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실꺼야." 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요한복음 2 :3~4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마가복음 3:31~35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의인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청도 거절하시고 육신의 혈육도 거절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만 따라 이 땅에 사셨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간구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 사이에 다른 그 어떤 것이라고 우리와 주를 하나로 묶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 죄인이다.

그러면 정말 카톨릭의 가르침대로 우리에게 과연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권한이 없는가????

 

히브리서 9:24~26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를 가지고 가시기 위함이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1년에 1차씩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 있다.

그 1년의 제사로 유대인의 1년의 죄가 사라지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법이었다.

사람은 죄를 짓게 마련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죄 가운데에 거하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1년에 1차씩 죄를 정결함을 받아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죄의 정결의식에는 어린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잡아 피를 드렸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예표로 주신 것이다.

 

히브리서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처음 명령하신 명령은 그리스도의 예표이므로 1년에 1차씩 매번 제사를 드려 유대인들의 죄만 정결케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자신)께서는 세상죄를 지고가시려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곧 정결케 하는 거룩한 제물인것이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유대인들은 매년 1번씩 제사를 드려 1년에 한번 제사를 드렸어야 했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동물의 피와 질적으로 다르다.

 

히브리서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피조된 동물들의 피로도 육체를 1년간 정결하다 칭하도록 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하나님자신)의 피라면 영원히 인류의 죄를 씻어갈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히브리서 10:16~22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

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죽으사 우리와 하나님사이의 큰 구렁을 없애주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옛 율법으로는 일반인(지금으로 치면 평신도)들이 성소에 들어가면 바로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때문에 제사장과 대 제사장이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후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구렁이 열려 온전히 누구나 주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리아도 모세도 아브라함도 아니고 우리 개개인 자신이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죄를 없게 해주셨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

그 죄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다시 살으심을 믿지 않아 그 사랑을 무시한대에 따른 댓가이다.

인류는 이제 단한가지 죄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신다.

교황도 추기경도 목사도 전도사도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지 않으면 태어난 후로부터 지금까지 달려가는

지옥행 열차에서 내릴 수 없다.

 

누군가가 "당신은 죄가 많은 사람이니 신의 대리인인 나를 통해 기도하게 하십시요" 라고 한다면

"당신은 성경을 읽습니까?" 라고 반문하면 되겠다.

 

 

테레사 수녀가 주님앞으로 갔는지 음부에서 고통 받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죽을때까지도 주님을 알고 믿지 못하고 죽은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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