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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 관광하러 온 것도 아닌데 처음 올리는 글이 박물관에 대한 글이라니... 나도 참.
하지만 토론토에 와서 처음 사진기를 꺼내 든 게 박물관인걸 어떡해.-_-
그래서 시작하는
<Bata Shoe Museum 탐방기>
박물관 외관에 걸린 포스터(위) 박물관 이름이 새겨진 벽면(아래)
Bata shoe museum은 말 그대로 신발에 관한 자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전화기 사랴, 기숙사 정리하고 건물들 위치 파악하랴 정신없던 토론토에서의 첫 주,
그래도 개강 전에 시간이 조금이나마 있을 때 토론토라는 도시의
명소 몇 군데는 돌아봐야 할 것 같아서 검색하다가
학교 근처에 신발에 관한 자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이 곳.
게다가 매주 목요일 5시 30분부터 8시까지는 무료 입장이다.
가까운데다가, 공짜.
토론토에서의 첫 관광?지로 Bata shoe museum을 선정한 것은 이런 단순한 이유였다.
5:30. 무료 입장 시간이 되어 지하에 있는 전시실로 입장하니
역시, 사람이 많다. 그래봤자 루브르나 다른 유명 박물관들의 평소 붐비는 정도에도 못 미치니
그냥 관람하는 데 그럭저럭 사람들이 거슬리지 않을 정도다.
인류가 초기에 고안해 낸 신발의 모양은 이러했단다.
지금의 신발과 그럭 저럭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신발에 대한 기록은 이집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는데,
이집트에서는 신발이 자신의 신분이나 자존심 같은 걸 나타내는 징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복종, 존경 등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단다.
(이걸 보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왜 신을 벗으라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집트 상형 문자에서 "삶"을 나타내는 글자는 샌달 끈의 형상을 본따서 만들었다는데...
어떻게 생긴 문자인지는 나와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무려 은으로 만든 신발이다...
인도의 상류 계급에서는 전통적으로 신부에게 주었던 결혼 선물이 바로 이 "은 신발."
-_-... 이거 보니까 한국에서 명품족들이 쓴다는
은 딸랑이 생각 난다...;;;
신지도 못할 걸 왜 주냐? 라고 생각하던 찰나....
헉!!-_-!!
이게 뭬야...
굽이 8센티는 되어 보이는 통굽 은 신발이다.
설명을 읽어 보니 상류층 여인들은 이걸 실제로 신었었단다. 결혼식 같은 중요한 행사에...
세상에나.. 이걸 신고 한 발짝이라도 뗄 수나 있었을까?
더구나 결혼식 날이면 신부는 편한 신발을 신고 있어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긴장되서 다리가 후들거렸을 텐데;;
내가 프롬에 신고 갔던 10센티 하이힐은 이거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
숫제 고문 도구 같이 생긴 이것은...
인도 상류 계급이 찼던 발찌란다. 자그마치 은발찌...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안은 비웠다지만 그래도 그 무게가-_-;
진짜 걸어다니기 힘들었겠다.
생각 해 보면 가마를 타고 다녀서 거의 걸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발찌를 찰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발목에 이런 거 차고 있으면 피가 안 통하지 않을까?-_-;
인도에서 물고기는 풍요와 부의 상징이었단다.
그래서 부자님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차고 다녔던 것이 바로
이 물고기 모양의 발가락 반지!!!
그 의도야 음흉하지마는
너무 귀엽지 않은가
ㅎㅎㅎ
살이 뒤룩뒤룩한 아저씨 발가락에 차기엔 너무 깜찍하다.
그래도 무게가 ㅎㄷㄷ;; 발가락 부러지겠다.
앗! 이런 귀여운 아이템들.
이것들은 반지인데,
샌드 위에 거북이가 올라가 있는 모양이다.
신발이 존귀함, 신분 이런 걸 뜻하고 거북이는 장수를 뜻할테니까
뭐 좋은 거 위에 좋은거다.
귀엽다~
그 아래에 놓여 있던 완소 반지ㅜ_ㅜ
샌들 한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는 디자인이다.
앤틱샵같은데서 지금 팔면 당장 살것같다.
아 완전 갖고싶어ㅜ_ㅜ
중국 여성들이 신었던 신발들.
전족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가슴 아픈 신발들이다...
도대체 이렇게 작은 발을 만들어 놓고 예쁘다고 생각했다니,
남자들의 잔인함에 치가 떨린다.
우측 하단에 있는 정상 크기의 신발과 비교해 보면 저 신발들이 얼마나 작은지 볼 수 있다.
완전히 애기 신발들이다.
여성의 몸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기 위해서
거들이며, 브래지어며, 하이힐이며, 전족용 신발이며... 인류는 참 다양한 것들을 고안 해 냈다.
개미 허리를 만들겠다고 허리를 숨 막히도록 조였던 중세 서양 여자들이나
피가 안통하도록 발을 꽁꽁 동여 맸던 중국 여자들이나... 한숨이 난다.
하긴 후세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21세기 선조들의 생활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불편한 걸
사춘기 때 부터 평생 가슴에 동여매고 살았는지 혀를 찰 수도 있겠지?
종아리 좀 가늘고 길게 보이겠다고 신는 하이힐의 고통은 또 어떻고...에휴...
이 전족용 가죽신은 꽤나 현대적이다.
전족의 역사를 찾아 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디자인이 나올 만큼 근대에 와서도 여전히 전족이 남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자들이 충분히 수난을 당했나 했더니,
이제는 남자들 차례다.
이 거대한 철제 신발은 팔뚝 길이 정도 되는데,
갑옷을 입은 기사가 신는 신발이었단다.
온몸에 이런 걸 두르고 제대로 싸울 수나 있었겠는가?;;
중세의 기사 싸움은 싸움의 기술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겁고 덥고 바람도 안 통하는 답답한 갑옷 안에서
누가 더 오래 기절하지 않고 버티냐의 승부였다는 말이 십분 이해된다.
영국이 튜더 왕조에 접어 들면서, 둥글 둥글한 체형이었던 헨리 8세 때문에
"오리 주둥이," "소의 입"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런 모양의 신발들이 나왔다고 한다.
뾰족한 신발이 유행일 땐 언제고~ 헨리 8세가 둥글 넙적한 신발을 신기 시작하자
곧 핫 아이템이 되어서 유행 혁신이 일어났다고 한다.
세로 길이랑 가로 길이랑 똑같은 정사각형 신발도 나왔었다고 하니;
헨리 8세가 확실히 인기가 많은 왕이긴 했나보다.
만능 스포츠맨에, 미남에, 패션 리더에.... 결정적으로 바람둥이!!
이 남자의 파란만장한 로맨스가 영국 역사에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오지 않았던가...
헨리8세...뾰족한 신발을 신고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바람 피기가 힘들었나보지?=_-흥.
아가씨, 당신은 '쇼핀'의 높이 덕분에 제가 지난번에 뵈었을 때보다 하늘나라에 더 가까워 지셨군요.
-셰익스피어, 햄릿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도 등장하는 이 엄청난 신발...은 쇼핀이라고 불리는데,
오스만 제국에서 애용되었던 굽 높은 목욕탕용 샌들(이런걸 욕실에서?-_-;)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탈리아에서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단다.
역시 상류층 여인들이 애용했던 소품.
16세기 후반, 처음으로 등장한 하이힐!!
앞에 신발들을 보다 보니까 무척 편해보인다;
처음에 하이힐이 등장했을 때에는 신분의 높음을 상징하는 구두였기 때문에
상류 계급이면 남녀 상관 없이 신었었다고 한다.
1730년대에 들어 오면서 여성들만 하이힐을 신는 문화로 바뀌었고,
그 문화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발을 괴롭히고 있다.ㅜ_ㅜ
여기에 아주아주 흥미로운 신발이 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 법에는, 결혼한 여자의 남편이 죽으면
그 남편의 남동생이나 형이 그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당시 과부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에
죽은 남편의 가족들이 과부를 거두어 보살피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결혼을 과부도, 죽은 남편의 형제들도 원치 않을 경우에는
Haliza라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마을에서 한켤레정도 공동으로 보관해 두는 이 가죽신을
부양의 의무를 떠안게 된 죽은 남편의 형제의 발에 신기고,
증인이 보는 앞에서 과부가 직접 신발 끈을 풀어 주면 된다.
그러면 죽은 남편의 형제는 형수 혹은 제수와 결혼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고,
과부의 경우에는 다른 아무 남자랑 결혼할 수 있게 된다.
현대에 와서는 이 법이 강제성을 잃어버렸지만,
전통적인 유대교 풍습을 따르는 몇몇 지역에서는
아직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인도로 돌아와서....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왼쪽 신발도 재밌지만,
설명을 읽어 보니 오른쪽 신발이 더 재미있다.
오른쪽 신발의 위로 불룩 솟아나온 부분, 그러니까 엄지 발가락이랑 둘째 발가락 사이에 끼는
부분은 원래 연꽃 조각 장식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조각에는 연꽃 향수가 들어 있어서, 걸음을 옮길 때 마다 향수가 나왔다고 한다.
걸을때마다 연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신발의 주인이 무슨 득도라도 한 고귀한 분인양 생각했겠지?
역사 속에서 흥미로운 신발들 섹션을 지나면
신발이 우리의 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나온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신발을 주는 건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전통인듯 하다.
이 체리색의 비단 아기 신발은 1835년 벨기에의 왕 레오폴드 2세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받았던 선물이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레오폴드 2세이다...
저 예쁜 신발을 받은 귀여운 아기가 커서...-_-
신발은 유희의 도구로도 쓰였다. 초기의 롤러 스케이트 모습.
이건.. 아까 봤던 유럽 중세의 쇼핀_에 영향을 준
오스만 제국의 욕실용 신발이다.
-_-...;
공중 목욕탕 같은 데서 바닥의 물기와 열기에서 발을 보호하는 목적이었다고 하는데,
높은 신분의 여자들만 신었단다.
도대체 이런 걸 신고 걸으면 얼마나 허우적 거렸을까? 그것도 알몸으로...ㅋㅋㅋ
게다가 헛 디디는 순간 뇌진탕..@_@..
목욕 한 번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건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네덜란드 밀수꾼들이
벨기에로부터 밀수를 해 오면서 신었던 신발이다. 왜냐고?
바로 굽이 앞에 달렸기 때문에 발자국이 반대로 찍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자국 모양만 보면 네덜란드에서 벨기에로 간 것 처럼 보이도록(그건 허용이 되었나보지?)
...-_-; 먹고 살기 힘들다.
고문도구처럼 으시시하게 생긴 이 신발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땅콩이나 호두 같은 것들을 다량으로 깨 부술 때
사용했던 신발이란다ㅎㅎㅎ
뭔가 무시무시하게 생겨서 봤는데 용도를 알고 나니 매우 귀엽다.
인형 신발들도 빼 놓을 수 없다.
이것들은 바비와 그 남자친구인 켄의 신발들인데,
바비의 신발은 흥미롭게도 모두 하이힐이다.
(가지고 놀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비 인형 발바닥 자체가 하이힐 밖에 신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굉장히 디테일하고 유행을 잘 타는 바비의 신발들과 달리
켄의 신발들은 좀 더 보수적이고 무난한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자 이제 지하층 구경을 끝내고~
예쁜 계단을 타고 윗층으로 올라 갈 시간이다.
계단 옆의 유리 장식칸에는 이런 작은 피규어들이 장식되어 있다.
대부분은 구두공의 모습이고, 몇개는 미니어쳐 신발들인데
그 중 가장 귀여운 걸 찍어 봤다.
아마 이런 시츄에이션?...ㅋㅋㅋㅋ
이층에는 발레 슈즈만 따로 전시하는 작은 방이 있었다.
부인할 수 없는 소녀 취향으로 또 발레 슈즈에 혹한 나
ㅋㅋㅋ
발레 슈즈에는 오른 발 왼 발이 구분이 없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오른발 왼발 구분이 없다는 것은 신발이 어떤 방향으로 굽지 않고
직선으로 만들어졌다는 건데, 이 것이 발레 슈즈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발레에 발 끝으로 서서 추는 동작이 도입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인데,
마리 타글리오니라는 발레리나가 안무가였던 자기 아버지의 안무에 들어 있는
발끝으로 서는 동작을 더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서
발레슈즈의 양 옆에 천을 덧대어 단단하게 지지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 볼 수 있는 포인트 슈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발 끝으로 서는 동작도 없고, 의상의 화려함이 발레를 보는 데 있어서
큰 즐거움을 제공했던 중세 시대에는, 발레 슈즈가 아예 이런 하이힐이었단다.
이 당시에는 의상도 무겁고 화려했고, 동작도 지금에 비하면 단순했다.
하지만 점점 현대로 와서 발레 동작들이 복잡해지고,
인간의 몸을 보는 데 발레 관람의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의상도 지금처럼 단순해지고 신발도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발레 슈즈에는
최소한의 무게로 발레리나를 최대한 지지해주기 위해서
온갖 아이디어와 과학이 들어 가 있다.
신발의 각 부분에는 명칭이 따로 있고, 부분마다 가장 적절한 소재와
적절한 바느질법을 사용해서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한 층 더 올라가니 역시 갖가지 신발들...
아래층에서 너무 열심히 봤더니 피곤하기도 하고-_-;
눈에 띄는 것들만 보면서 휙휙 지나가다가 발견한 재밌는 사진.
이스탄불에서 신부들이 결혼할 때 입었던 복장이란다...
저 굽 봐라...아이고.
게다가 저게 은으로 만든 신발이란다.
그림에 나오는 신발이 실제로 옆에 전시되어 있다.
저거 신다가 삐끗하면 발목 부러지겠다;;
이건 발바닥 부분은 흑단으로, 위에 장식은 금으로 만든 신발이다.
물론 무지무지 무거웠겠지만 이런 신발을 신는 사람은
가마에서 내려와서 걸을 일이 없었단다. 그럼 그렇지...
ㅋㅋㅋ 하도 엽기 신발들을 많이 봐서 이것도 신발인 줄 알았더니
이건 술잔이다.
신발모양 은 술잔... 여기에 술을 마시면 진짜 ㅎㄷㄷ;;
중세의 구두공들은 작업장에서 새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작업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구두공을 묘사하는 조각이나 그림에는
새나 새장이 같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맨 위층까지 관람을 휘리릭-마치고
로비로 다시 내려와서,
박물관에 들어 올 때부터 가장 눈을 잡았던 조각을 찍었다.
즐겁게 일하고 있는 어린 구두공의 모습.
일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것이라고 보일 정도로 신나 있다.
옆에 있는 도구들이나 복장을 무시하고
표정과 몸짓만 보면 스케이트라도 타는 것 같다.
구두를 고치다가 음악에 맞춰 춤이라도 추는 걸까?
아니면 한참 일을 하다가 누가 찾아와서 네- 하고 대답하는 장면일까.
대답하는 장면이라면, 이렇게 신난 표정으로 봐서는
여자친구라도 찾아 온걸까?
어떤 일을 하든지,
이 어린 구두공처럼 신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직업을 찾기를, 그리고 그 직업을 가지고
행복해 하고 만족해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마지막으로 로비를 걸어 나오면서 찍은 사진.
박물관의 설립자인 Sonja Bata여사와 그녀의 남편 Thomas John Bata씨의 다정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08년 9월 1일에 운명하신 Thomas Bata씨를 그리워하며.. 라는 설명문과 함께.
남편 Bata씨는 부인 Bata씨가 이 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지원자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단다.
이런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서 Bata여사는 얼마나 슬플까...
생판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지만 마음이 아파온다.
Bata Museum 탐방 끝-








































